[창] 교육 교부금과 사교육비
[창] 교육교부금과 사교육비
신준섭 경제부 기자
입력 : 2023-02-25 04:06

한국 부모 중 사교육비 걱정을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을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고액 컨설팅까지는 못 받더라도 최소 수준의 사교육은 필수가 됐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요람에서 고등학교까지는 피해갈 수가 없다.
예체능 계열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국어 영어 수학처럼 정규 교육과정에 있는 과목들조차 누구나 사교육을 받는다.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다. 정부가 정한 정찰 가격도 없는 사교육 시장은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나 마찬가지다. 주변에 물어보면 중고등학생쯤 되면 일반적으로 아이 한 명당 월 100만~150만원가량 든다고 한다. 최소한도 수준을 기준으로 한 가격표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300인 미만 사업체 종사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29만원이다. 중고등학생 두 명을 키우면 사교육비로 부모 중 한 명의 월급이 대부분 소요된다고 봐야 하는 셈이다.
이제 만 3살이 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는 다가올 현실이다. 하지만 이 현실을 날씨마냥 체념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이유가 있다. 국가가 만들어 낸 ‘공교육’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쏟아붓는 세금 때문이다. 매년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 가운데 20.79%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자동 할당된다. 우리가 내는 모든 세금의 5분의 1 정도가 공교육을 위해 투자된다. 여기에 부가가치세처럼 특정 품목에 붙는 교육세가 별도로 있다. 이를 합쳐서 교육교부금이라고 부른다. 우리 자식들 교육을 위해 내는 세금 명세서라고 보면 된다.
금액이 얼마나 될까. 지난해 기준으로는 81조원가량이 교육교부금으로 배정됐다. 지난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예산이 76조원이었고 올해가 77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도 교육교부금 규모는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4대강 사업을 4번은 할 법한 돈을 우리는 매년 공교육에 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매달 사교육비를 사비로 지출해야만 한다. 교육 공무원들조차 자녀 교육에서 사교육을 빼놓은 이들을 찾기가 힘든 수준이다.
세금도 내고 사교육비도 내는 ‘이중 지출 구조’를 정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사교육 투자를 통해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을 바꾸기는 이제는 불가능해진 듯하다”고 말했다.
공무원들 인식조차 이렇다면 입시 전선에서 공교육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치러진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자로 나선 이들 중에는 “당선 시 사교육비를 지원하겠다”고 공약한 이들도 있다.
사교육을 없애면 간단하지만, 국내 사교육 종사자가 많고 수요도 많아 아예 없애기는 힘들다는 핑계가 있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차라리 세금을 덜 걷든지 해서 공교육에 들이는 돈이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나 싶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데는 자녀 교육에 등골이 휘는 현실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2019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43.2%에 달한다. 노인 10명 중 4명은 가난하다는 소리다.
OECD 15개 주요 회원국 중 빈곤율이 가장 높다. 익명을 요구한 A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쳇말로 “아이 교육에 돈 들이는 일은 가난한 노년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비꼬았다.
이런 인식을 과대해석이라고 보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인구 문제다.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 함정에 빠졌다.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0.81명으로 1명을 밑돌았다. 지난해에는 더 악화돼 이 수치가 0.78명까지 떨어졌다. 열심히 일만 해서는 매입할 수 없는 부동산도 문제지만 지속적으로 내야 하는 사교육비는 아이 낳기를 꺼리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영국 옥스퍼드 인구문제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소멸할 것 같은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인구 소멸 원인 중 하나가 사교육이라면 이 분석은 곱씹어 봐야 하는 지표다.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나 모두 쉽지 않은 길이다. 때문에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누군가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특단’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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