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19. 09:29ㆍ카테고리 없음
이명박 정부의 세제개편안은 21조원짜리 치즈 덩어리를 하늘에서 납세자들에게 굴려 내린 것이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9월 3일자에서 "영국 마거릿 대처, 미국 로널드 레이건 영혼이 서울에서 부활했다. 일본 후쿠다 총리는 꿈도 꾸지 못할 그런 멋진 발상을…"이라고 해설했다. 미국 보수언론이 MB정책을 이처럼 치켜세우다니 가슴뭉클하기만 하다.
세금을 결정하는 일은 어떻게 하면 내 형량을 줄일까 연구한 '죄수의 딜레마'와는 종류가 다르다. 사회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루소의 사슴사냥꾼 논리, 무임승차론을 다룬 윈스탠리의 등대건설 이론과 일부 겹치지만 근본은 차이가 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등을 맞대고 거꾸로 된 정책을 펴는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일 것이다.
돈을 별로 못 벌고 걸핏하면 실직하는 인간도 프랑스에서 태어나면 애들 대학 보내는 것까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반면 성공한 사업가라면 프랑스에서 사는 게 아마 강탈당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일 것이다.
한국 세제 개편 모델은 아서 래퍼 교수의 공급경제학이 원천인 것 같은데 이를 원용한 모 장관이 국회에서 아주 혼이 났다. 사실 래퍼 이론 같은 게 과연 존재 이유가 있는지 증명된 바 없었기 때문이다.
자, 보자. 한국인은 GDP 대비 22.7%(세금부담률)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낸다. 약 200조원 규모다. 그런데 미국(20.6%)이나 일본(17.3%)은 한국인보다 덜 낸다.
아니, 더 잘사는 사람들이 더 적게 낸다는데 한국이 왜 이래? 그러니까 깎아주겠다는거 아녀?(한나라당 민주당) 그럼 누구 세금을 깎아줄 건데? 세금별로 보면 덩어리가 큰 법인세(35조원)는 미국 기업들이 최고 35%를 내고 일본 기업은 30%를 낸다. 한국 기업들은 25%에서 MB 정부가 20%까지 낮춰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기업은 일단 미국 일본보다 덜 낸다. 개인사업자 혹은 월급쟁이들이 대상인 소득세(39조원)는 어떨까. 한국은 이번에 최고세율을 35%에서 33%로 낮췄다. 미국은 최고세율이 여전히 35%, 일본은 40%다. 개인 부자도 미ㆍ일보다 덜 낸다.
부자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상속ㆍ증여(2조8000억원) 세율은? 이번에 한국이 50%에서 33%로 아주 인심을 후하게 썼다. 일본은 50%인데 곧 60%로 올린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미국은 45%다. 그러니까 한국인은 상속ㆍ증여세도 국회 관문만 넘으면 미ㆍ일보다 덜 내게 돼 있다.(한편 상속ㆍ증여세가 제로인 나라, 호주 캐나다 스웨덴도 있다)
아니, 다 덜 낸다는데 누구에게 바가지를 씌우기에 한국은 GDP 대비 세부담이 미ㆍ일보다 높은 거야? 누가 더 내고 있지?
나는 그 원인이 41조원(2007년)이나 되는 부가세 때문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부가세는 소비단계마다 10%씩 부자든 가난하든 똑같이 내야 한다.
소비가 많은 부자가 좀 더 혜택을 본다는 말도 맞고, 능력에 비해 생필품을 어쩔 수 없이 구입해야 하므로 서민 가랑이가 더 찢어질 것이란 주장도 그럴 듯하다.
혹은 부동산세(양도ㆍ보유ㆍ취득세)가 다른 나라보다 더 걷혔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가장 큰 혜택을 본 계층은 가업(家業)인 중소기업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기업주다. 종전 30억원을 제외하고 계산하던 기초 공제폭을 100억원까지로 늘렸다.
기업할 의욕을 높이고자 세율도 낮춰, 가령 300억원짜리 가업을 상속할 때 전에는 128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했는데 앞으로는 60억원으로 확 줄어든다.
다음으로 대치동 아이파크 같은 고가 아파트 한 채만을 소유한 사람. 일단 10년 이상 보유한 후 팔면 차익의 80%는 과표에서 빼주고 1주택 특별공제도 제외해 사실상 양도세를 의식 안 해도 OK다. 미국에서는 부부 합쳐 5억원(50만달러)을 제외하고는 차익 대비 20%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데 비해서도 크게 유리하다.
그러니까 사업을 하면서 아주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은 'MB 치즈이동 전략'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한 것 같다.
필자가 문헌에서 읽기에 역사상 가장 이상한 세금은 수염세였던 것 같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게으른 백성 엉덩이를 걷어차기 위해 수염을 안 깎은 국민에게 가혹하게 매긴 세금이다. 이렇듯 세금엔 목적과 국가 운영 철학이 있어야 한다. 몇 년 후부터 큰 적자를 낼 공식을 만들어 차기 정권 이후 적자 구덩이로 내몰아서도 절대 안 된다. 중산층을 키울 정신을 담았는지도 신중하게 살펴야 옳다.
가령 소득세는 미국에서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층의 소득이 2억원은 넘는 걸로 알고 있으나 한국은 8800만원이다.
10년째 그 자리로 중산층 소득을 말라붙게 하는 공식은 정말이지 고쳐야 한다. 한 가지 더, 야당은 이번 세제개혁으로 혜택의 60%가 소득상위 4%에 집중되고 있다는데 그 말이 맞는가. 연구가 잘 진행되게 정보공개에 만전을 기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