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9. 21:36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게 마련이다. 자칫 예기치 못한 범죄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어느 순간 가계가 파탄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살기도 팍팍한 형편에 민간보험에 의지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성급히 절망하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소 성기긴 하지만 법을 몰라서, 혹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충분히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 사회가 갖춰놓은 복지망이 있는 덕분이다. 몰라서 못 받는 사회 구제 제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
◆억울한 피해를 당했을 때
최근 대구에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자해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부인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부모도, 보호자도 없는 집에 남은 아이들이 문제였다. A(27·여)씨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우선 엄마, 아빠의 피가 흥건하게 남아있던 안방부터 청소해달라고 부탁했다. 피범벅이 된 집안이 무서워 도무지 집에 들어갈 엄두도 못 냈다는 것. 청소업체들도 손을 내저을 정도로 현장은 참혹했다. 센터 측은 직원들을 동원해 직접 청소에 나섰다. 또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A씨의 남동생이 신경정신과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강력 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무료로 치료와 법률 상담, 경제적 지원 등을 해준다. 법정 동행 등 현장지원은 물론이고 의료지원과 생계비, 학자금, 장례비 등 긴급구호에서부터 재산범죄, 명예훼손, 임금 체납 등 각종 고소 사건의 합의를 도와주기도 한다. 올해 300여 건의 상담이 접수돼 40명이 지원을 받았고, 지원액은 7천만원에 이른다.
지난 7월에는 외국인범죄피해자지원센터도 문을 열어 한국에서 범죄 피해를 본 외국인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중국인 동료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중국인 이주 노동자 두모(26)씨의 경우 시신 수습과 사건 처리를 위해 한국을 찾은 두씨의 아버지의 체류비를 부담하고 법률 상담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김동근 대구경북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강력범죄뿐만 아니라 절도, 강도 등으로 생계에 곤란을 겪을 때에도 심의를 통해 생계비를 지원한다"며 "성범죄 피해 여성 등 보복 범죄 우려가 있는 피해자들은 경호 요원으로 신변보호와 법정 동행도 돕고 있다"고 했다.
노점상을 하다가 자릿세를 뜯기거나 선급금, 물품 강매 등 금품착취, 과다한 취업 소개료, 취업 사기, 임금 체납, 성매매 강요, 불법 사금융, 불공정약관 등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범죄로 피해를 봤다면 '생계침해형 부조리사범 통합신고센터'에 도움을 청하면 된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하면 법률상담, 소송대리, 형사 변호 등 다양한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국번없이 '132'를 누르면 콜센터로 연결된다.
농·어민과 생활보장수급자,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국가보훈 대상자, 한 부모 가정,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여성, 임금 체납 피해 근로자 등은 무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일상 생활 속에서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궁금증이나 불편한 점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면 대구시에서 운영하는 '시민생활상담실'을 이용해도 좋다. 법적 갈등 상담이나 세무 상담, 소비자 상담 등을 할 수 있으며 역시 무료다.
◆뺑소니에 당했다면
늦은 밤 길을 건너다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면 어떻게 할까. 도로변에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봤자 큰 도움이 안 되고, 당장 치료비를 대기도 막막하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뺑소니나 무보험차로 인한 사고로 피해를 입었을 경우 정부가 '정부보장사업'으로 최고 1억원까지 보상을 해준다. 피해액이 1억원을 넘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가입한 자동차보험의 무보험차상해 담보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무보험차 상해는 전체 차량의 92% 정도가 가입돼 있고 보험료는 월 7천~8천원 수준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뺑소니·무보험차 사고 피해자 1만1천656명이 611억원을 보상받았으며 피해 유자녀 등 1만9천412명이 330억원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아직 약 20%는 '몰라서' 보장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산된다.
2006년에 미검거된 뺑소니사고의 피해자 5천862명 중 78%는 정부보장사업의 혜택을 받았지만 1천300명은 청구하지 않았다. 책임보험만 가입된 차량이거나 무면허운전 등으로 종합보험 보상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피해금액 중 1억원까지는 가해자의 책임보험으로 보상하고 초과분은 피해자가 가입한 무보험차상해 담보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면
다들 어렵다며 아우성이지만 B(43·여)씨는 그래도 살맛이 난다. 한 달 전 문을 연 김밥가게로 벌이가 꽤 쏠쏠한 덕분이다. B씨가 희망을 되찾게 된 건 사회연대은행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식당종업원으로 전전하며 한 달 90만원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던 B씨는 사회연대은행에서 창업자금을 지원해준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B씨는 사업계획서를 써서 지원을 신청했고, 2천만원의 지원금과 모아뒀던 1천만원을 더해 김밥 프렌차이즈 가게를 냈다.
사회연대은행은 점포 선정 과정부터 가게 인테리어, 영업 전략까지 세밀하게 조언했고, 가게 문을 연 뒤로도 매달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방문해 사후 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다. B씨는 "사회연대은행에서 '처음 오는 손님들을 사로잡아라', '가족끼리 찾는 손님에게 덤을 줘라는 식의 단골 만들기 비법까지 가르쳐줬다"며 "요즘은 하루 매출이 25만원 정도여서 한 달 평균 순이익이 250만원이나 된다"고 전했다.
사회연대은행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담보, 무보증으로 창업자금과 경영·기술 자문을 제공하는 비영리 대안금융(마이크로 크레디트) 기관이다. 삼성생명, LG전자 등 대기업과 산은 기금, 휴면예금재단 등 정부와 공기업에서 기금을 받아 운영한다. 특히 은행에서 찾아가지 않는 휴면예금 1천800억원에서 나오는 이자 200여억원을 '소액서민금융지원재단'에서 모아 복지기금으로 활용한다.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 조합'에서 저소득층 가정의 생계형 창업 지원을 맡고 있다.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의 180% 이내 소득을 올리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면 신청이 가능하다.
사업신청서를 제출하면 4단계에 걸친 심사를 거쳐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연 2~6% 이내의 이자로 대개 4년 이내에 상환을 해야하지만, 삼성생명기금 등 상환 의무가 없는 기금도 있다. 김형군 사회연대은행 대구사무소장은 "심사과정에서는 주로 신청한 업종 별로 사업 계획과 창업 준비 상태 등을 중점적으로 본다"며 "우선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참고해 신청에 필요한 서류나 자격 요건 등을 유심히 살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은행이나 보험, 신용카드, 유사수신, 대부업체 등 각종 금융과 관련된 갈등이나 문제가 생겼다면 금융감독위원회가 운영하는 금융민원센터(국번없이 1332, 휴대폰은 02-1332)에 상담을 신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개인회생이나 파산, 면책 등이 궁금하다면 법률구조공단 파산지원센터에 의뢰하면 된다.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무료이고, 유료대상자라 하더라도 인지대와 송달료, 변호사 비용 등 30만~40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인권운동연대가 운영하는 '금융피해자 파산학교' (053-290-7474)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파산 및 면책 신청 방법, 법 절차 등을 가르치는 파산·면책 상담소를 연다. 파산학교의 도움을 받아 법원에 '파산 및 면책'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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