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7. 09:16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불황 여파로 중고품 매매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중고품 매장을 찾아본 이들은 알겠지만 비싸게 주고 산 물건도 팔 때는 '똥값'을 못 면하기 일쑤다. 그런 이들에게 유용한 것이 물물교환이다.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21세기에까지 통용되는 '통 큰 거래'이자 '윈윈거래' 방식이다. 찌그러진 냄비부터 아파트까지 '아내만 빼고 모두 바꾸는' 물물교환이 새로운 '장외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던 박민호(59·가명)씨는 얼마전 자신의 점포를 경북 청송의 과수원과 맞바꿨다. 불황으로 꼬박꼬박 임대료 내기도 버겁던 차에 마땅히 인수하려는 이도 없어 권리금마저 포기하고 식당을 접으려고 마음먹었던 박씨는 마침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과수원을 처분하려던 이성규(34·가명)씨를 만나게 된 것. 둘 사이에 '부동산 스와핑'이 이뤄졌고 이씨에게 점포를 넘겨준 박씨는 사과 농사를 지으며 제2의 인생을 일구고 있다.
물물교환이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돈맥경화'로 자금난에 빠진 소규모 자영업자들 사이에 부동산 맞교환이 늘고 있는 것. 부동산 물물교환은 서로 필요한 부동산을 주고받으며 차액만 현금으로 결제하는 거래방식. 교환 매물은 불황기 때 잘 팔리지 않는 '애물단지'들이 주류를 이루나 간혹 절세용이나 증여나 상속 받은 부동산, 대출이 많이 낀 매물들이 시중에 나온다. 많은 현금 없이도 거래할 수 있어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를 타고 거래가 늘어나는 추세다.
보유 부동산을 판 뒤 다른 부동산을 매입하는 절차를 한 번에 해결하는 장점이 있고 파고 살 때 내야 하는 중개수수료도 한 번만 내면 된다. 게다가 거래 시 공시가격 기준으로 세금을 내게 돼 절세에도 큰 도움이 된다.
첨단을 달리는 항공물류업계에서도 전통적인 형태의 물물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항공사 간의 코드 셰어(좌석 공유)가 그 대표적인 사례. 부산에서 도쿄로 하루 한 편 비행기를 띄우는 대한항공은 이 항로를 하루 두 편 운항하는 일본항공과 좌석을 공유하고 있다. 대한항공에서 발권한 승객이라도 편의에 따라 일본항공의 비행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 항공사 입장에서는 해당 노선에 3편을 띄우는 효과와 함께 항공기 좌석을 비워서 운항하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승객 입장에서도 다양한 스케줄과 요금, 서비스 간에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항만물류업계의 슬롯 익스체인지(선박 교환 협정)도 유사한 물물교환 방식. 동일 항로에 대한 과잉 운항을 막기 위해 협정을 맺은 해운사들끼리는 선복을 교환,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기업들이 각사에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나 물품 등을 직접 교환하는 바터(barter) 거래도 불황 극복의 주요 방편이다.
봉생물물교환센터에서 한 주부가 맞바꿀 물품을 고르고 있는 모습. |
매매 어려운 중고품 물물교환센터로
마땅히 팔 데는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중고품 매매 시장에서도 처분이 어려운 '애물단지'들이 빛을 보는 곳이 있다. 바로 물물교환센터다. 자유로움과 낭만으로 대변되는 유럽의 벼룩시장 전통이 한 푼이 아쉬운 한국 주부들의 알뜰함과 만나 국내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것.
지난 1999년 문을 연 부산 동구 초량동의 봉생물물교환센터(051-465-5151~3)에는 최근 주부들은 물론 남성들의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가정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면 물건 상태를 살펴서 점수를 매긴 뒤 적립된 포인트만큼 다른 물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의류와 신발, 가방 등을 주축으로 생활용품과 가전제품 등 1천여점의 물품이 새 주인을 찾고 있다.
주부 박경희(50·부산 동구 범일동)씨는 "비싸게 주고 산건데 버리기는 아깝고 입자니 잘 안 맞는 옷이 있어 몇 벌 가져왔다. 잘 고르면 괜찮은 옷들이 많아 한 달에 두어 번 찾는다"며 가져 온 스웨터를 스커트로 맞바꿔 갔다.
센터의 김종우 부장은 "교환센터의 이용 추이가 곧 경기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며 "IMF 구제금융 이후 이용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였다가 최근 경기 침체를 타고 찾는 이들이 다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물물교환 전문 사이트들도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아무래도 품질의 검증이 쉽고 가격대가 비슷한 책이나 DVD, 음반, 게임 타이틀 등이 물물교환의 주요 대상. 도서 교환 사이트 '북스프리'는 자신에게 불필요한 책을 등록해 기증하고, 필요한 책은 신청해 가져갈 수 있는 '열린 장터'다. '알라딘', '돌북', '고구마' 등도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온라인 헌책방'이다.
중고품 거래 사이트 '미니섬'의 경우 회원들 간에 의류와 핸드백, 패션 소품의 맞교환이 활발하고 명품끼리도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이 사이트 거래량의 10% 가량이 물물교환 방식. 별도의 중개 수수료가 들지 않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다자간 교환 전문 중개 사이트를 표방하는 '완두콩 닷컴'은 물품은 물론 한발 더 나아가 지식, 경험까지도 맞교환할 수 있다. 마음만 맞는다면 설문 조사나 리포트 등의 문서 자료, 지식과 경험이 담긴 동영상 UCC 등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해놓은 것.
대학가도 물물교환의 주요 시장이다. 각 대학의 교내 게시판에는 전공서적부터 피자 교환 쿠폰, '알바 자리'까지 맞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스펙 관리'에 목숨을 건 학생들 간에는 '과외 교환'도 이뤄지고 있다.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김진희(21·여)씨는 취약한 수학을 보강하기 위해 매주 4시간씩 수학과 학생에게 토익 과외를 해주고 수학을 배우고 있다. 김씨는 "과외 자리 구하기는 어려운데다 학원 수강료도 비싸져서 조건이 맞는 학생들 사이에 '과외 스와핑'이 '학내 재테크'로 인기다"고 말했다.
물물교환은 전문 수집가들에게 특 히 유용한 수집 방식이다. 미리벌민 속박물관의 성재정 관장이 소장 중 인 다양한 민속공예품들. |
매매 꺼리는 전문 수집가들 "그럼 바꿔!"
원하는 것을 내 목록에 넣기 위해 전국 구석구석은 물론, 세계 곳곳까지 마다하지 않는 전문 수집가들. 물물교환은 수집의 달인들에게 가장 유용한 방식이다. 전통 민속 공예품과 고문서 등 1만점을 전시하고 있는 경남 밀양시 미리벌민속박물관의 성재정(65)관장도 물물교환을 통해 상당한 수집품을 모았다. 성씨는 "소장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수집가들은 많은 돈을 줘도 자신의 물품을 팔지 않지만 서로 욕심을 내는 물품이 있는 경우 교환이 성사된다"며 "아무하고나 바꾸지는 않고 서로의 '내공'을 확인한 뒤 '선수'끼리만 교환한다"고 설명했다.
상업주의로 치닫는 예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예술품을 물물 거래하는 이들도 있다. 문화기획단체 '종합선물세트'는 매년 한차례씩 부산에서 소장하고 있는 예술작품이나 생활용품을 다른 예술품으로 교환하는 '스와핑 아트 마켓'을 열고 있다. 이 단체 이은호 대표는 "돈이 오가는 미술 시장이 아닌 관객과 작품 간에 감성과 감성이 교환되는 새로운 유통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moon-051@hanmail.net
'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인 창조기업, 최대 1억 지원 (0) | 2009.03.27 |
---|---|
한승수총리,2년간 규제효력 중지 추진 (0) | 2009.03.27 |
야생동물 전력피해 555억 (0) | 2009.03.27 |
첫눈에 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8.2초 (0) | 2009.03.26 |
백합나무 =‘돈’나무 (0) | 2009.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