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조 단기 부동자금 어디로?

2009. 4. 12. 11:30C.E.O 경영 자료

800조 단기 부동자금 어디로?
강남 PB들이 말한다
단기 부동자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기부동자금이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았다. 갈 곳을 잃고 시중에서 헤매는 단기부동자금이 무려 800조원에 달한다.

그 단기부동자금이 최근 슬슬 갈 곳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초저금리 시대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드니 리스크가 있더라도 보다 고수익을 향해 움직이겠다는 모양새다.

실제 은행에서 VIP 고객을 담당하는 PB들에게서 이 같은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들을 수 있다. PB들 대부분이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VIP 고객들이 여윳돈을 움직이려 한다”고 전한다. PB들 스스로도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생각한다. 은행금리가 턱없이 낮은 만큼 새로운 투자처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 자산시장은 경기에 선행해 움직이기 때문에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주식·부동산시장 ‘기웃’

상황을 관망하며 꼭꼭 숨어있던 돈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3%대로 떨어지는 등 초저금리가 계속되면서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좀 더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상품이 있다면 들어가겠다 생각하는 분위기다. 결과적으로 주식, 채권, 부동산 쪽으로 조금씩 돈이 이동하고 있다.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1~3개월 정기예금 등에 몸을 담그고 대기하던 자금이 슬슬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나서는 모양새다.

외국인·기관투자가들이 몰리면서 국내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주식
개인 ‘조심’, 기관·외국인 ‘사자’

“요즘 살 만한 주식 없나요?”

유진경 동양종금증권 골드센터강남점 차장은 고객들로부터 요즘 이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일선 창구 분위기를 전했다. 유 차장은 “워낙 금리가 낮아서 그런가 최근 투자자들이 서서히 주식 쪽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코스피지수가 1300포인트를 바라보면서 부쩍 주식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증시 예비자금의 지표인 고객예탁금이 증가하는 게 이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3월 한 달 동안 고객예탁금은 2조6407억원 늘어났다.

코스피지수가 1200선을 회복한 3월 24일 이후 고객예탁금은 3000억원 이상 증가해 4월 초 13조원을 넘었다.

펀드도 주식만큼은 아니지만 서서히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상장지수펀드 포함)은 약 1조3000억원(주식형 펀드 300억원, 채권형 펀드 1조원) 늘어나 85조원을 넘었다.

결국 지난 한 달간 국내 증시로 유입된 자금규모는 약 4조원에 이르는 셈이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증시로 자금이 들어오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뚜렷하게 움직인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 순수예탁금을 들었다. 고객예탁금에서 주식 매도액을 뺀 순수예탁금으로만 보면 3월 한 달간 324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개인들 자금 유입이 증가하고 있지만, 선뜻 투자에 나선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사실 최근의 주식 자금 움직임 주체는 개인보다는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다. 최근의 주가 상승도 이들이 이끌고 있다. 지난 4월 2일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며 1276선을 돌파한 날 개인들은 8000억원 넘게 매도했지만,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3300억원과 4700억원을 사들였다.

채권
고금리 회사채에 개인 대거 몰려

대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김태선 씨(58)는 최근 MMF에 넣어뒀던 여유자금 1억원을 인출해 채권형 펀드에 가입했다. 전체 채권형 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3월 30일 기준)이 7.34%로 1년 전인 3%대와 비교했을 때 무려 2배 이상 높아졌다는 기사를 본 때문이다. 채권수익률이 좋다는 얘기에 직접 채권투자를 해볼까도 싶었지만 엄두가 안 나 그냥 채권형 펀드 가입으로 방향을 돌렸다.

올 들어 채권시장은 그야말로 빅뱅이다. 올해 1분기 회사채 발행규모가 26조562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의 12조8421억원보다 106.4% 증가했다. 회사채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순발행규모는 19조2445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순발행 기조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채권시장이 활성화된 것은 은행 대출 문이 꽉 막히면서 자금이 필요한 대기업들이 은행 예금의 3배에 가까운 고금리 회사채를 발행한 덕분이다.

기업들이 고금리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회사채 투자를 고민하는 개인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올해 장외 채권시장에서 개인의 회사채 순매수규모는 지난 3월 36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배 가까이 증가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일정한 가격으로 발행 회사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채권)에도 돈이 몰리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3월 17일 4000억원 규모로 발행한 기아자동차의 BW에는 약 8조원이 몰려 경쟁률만 20 대 1을 기록했다. 한 달 전인 2월 23일 마감된 코오롱의 1000억원어치 BW 청약은 경쟁률이 기관 2.2 대 1 개인은 1.3 대 1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난 셈이다.

채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권형 펀드 인기도 덩달아 상한가다. 한동안 주식형 펀드에 밀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던 채권형 펀드로 부동자금이 몰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27일 기준 채권형 펀드 수탁액은 32조5094억원으로 3월 들어 무려 1조50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채권형 펀드로 돈이 몰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채권형 펀드 수익률이 높아졌기 때문. 지난 1년간 채권형 펀드 전체 수익률은 7.34%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계속 떨어지면서 현재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3%대 중반에 불과하다. 채권형 펀드에 투자자들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제2롯데월드 개발이 허용되면서 잠실 일대 부동산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부동산
제2롯데월드 호재로 강남 ‘회복 중’

정부의 제2롯데월드 신축 허용 결정이 난 지난 3월 31일. 잠실 주변 부동산 일대는 적잖이 술렁였다. 오래전 등장한 호재인 데다 어느 정도 허용을 예견하고 있었지만 정부의 공식 발표 파워는 생각보다 컸다. 가격을 낮춘 급매물이 속속 사라지면서 부동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는 분위기까지 엿보인다. 잠실 주공5단지 매물 가격을 살펴보던 50대 중반의 한 주부는 “역시 결론은 부동산”이라며 확신에 찬 표정을 내비쳤다.

“강남 집값이 많이 떨어졌지만 결국 경기가 살아나면 또 오르지 않겠어요? 주식, 펀드도 모두 죽 쓰는 마당에 역시 부동산만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잠실 주공5단지는 지난해 말부터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잠실 주공5단지 112㎡의 경우 지난 2월 11억2000만원에 거래된 물건도 나왔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1억원을 넘기기 어려웠지만 어느새 상승세가 완연해졌다. 잠실 주변 아파트들이 대부분 지난해 9월 금융위기 전 가격대를 회복한 분위기다.

잠실역 주변 T공인 관계자는 “투자할 곳을 찾던 부유층들이 서서히 부동산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매수 문의가 늘고 있다. 막상 거래도 없고 가격도 보합세지만 최소한 더 떨어지진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 투자자들이 많아졌다”고 조심스레 털어놓는다.

부동산시장 바로미터인 강남 재건축시장도 회복되는 분위기가 완연하다. 1~2달 만에 3000만~5000만원까지 가격이 뛰는 단지도 나타났다. 개포주공1단지 36㎡는 5억5000만~6억원 선에 매물이 나와 있다. 개포동 K공인 관계자는 “얼마 전부터 규제 완화 기대감이 가격에 반영돼 집주인들이 너도나도 매물을 거둬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때 집값이 반토막 났던 분당, 용인 등 수도권 버블세븐 지역 집값도 부동산 규제 완화 효과로 조심스레 바닥을 치는 분위기다. 정부가 최근 양도세 한시면제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참에 값싸게 급매물을 사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용인 성복동 A중개업소 관계자는 “꼭지에서 집을 구입한 사람들이 집값 하락폭이 크자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내놓으려는 분위기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경기 바닥시점을 눈여겨보자는 심리가 완연하다”고 밝힌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사장은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데다 금리가 하향 추세라 단기부동자금이 부동산시장으로 쏠리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하지만 미분양 가구가 워낙 많고 수요자 구매심리가 회복되지 않아 단기자금의 부동산시장 유입이 얼마나 활성화될진 의문”이라고 밝힌다.

[김경민 기자 / 김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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