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경영, 철학이 있어야 한다.
2009. 5. 22. 18:07ㆍC.E.O 경영 자료
위기의 기업, 철학에서 배운다 |
2009-05-22 오전 11:46:26 |
철학은 시원에 대한 반성 끝에 발전 … 기업에겐 무궁한 지혜와 사유의 보고 마르크스주의의 한계, 현대철학의 출발점 … 합리적 예측도 불확실성 전제해야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불황이 되면 출발점으로 돌아가 뜻을 바로잡는다”고 말했다. 뜻은 철학이고, 철학은 세계에 대한 질문이자 자신에 대한 질문이다. 기업은 시장이라는 세계에 질문을 던지고 경영이라는 행동으로 자신에게 질문한다. 이 점에서 기업은 철학이라는 좀 더 넓고 오래 된 질문으로 애써 답을 구할 필요가 있다. 자각으로 이끄는 지혜, 근본으로 이끄는 원리, 반성으로 이끄는 문장, 이처럼 무궁한 사유의 저장고가 철학이다. 시원의 탐구, 사유의 방법 동서양에 공통된 초기의 철학적 질문은 만물의 근원을 찾는 일이었다. 역사상 가장 앞선 철학적 기록을 남긴 이오니아인들은 식민지라는 위기 상황에서 이 물음을 추구하여 신이 아닌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근원 즉 아르케를 추구했다. 그들의 방법은 사물을 쪼개고 또 쪼개는 일이었는데, 그 결과 공기, 물, 불, 흙이 최종 후보로 남았다. 노자와 동시대인인 탈레스가 물이 만물의 일차적인 본성이라 주장한 이오니아 최초의 철학자임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탈레스의 답은 황당한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에 세계의 상호연관성을 확신한 철학적 관점이 시작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오니아식 방법론은 지금까지도 서양의 주류 철학자들에게 이어지고 있어, 최초의 관점이 지닌 막대한 영향력을 헤아릴 수 있다. 이오니아 철학자들이 다양한 근원을 주장한 가운데, 헤라클레이토스에 이르러 철학은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그가 불을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만물을 변화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이처럼 모든 것은 변한다. 변증법이라 불리게 된 이 관점은 사물의 변화를 분석하는 탁월한 방법론으로 철학사에 길이 남게 됐다. 문제는 이 명쾌한 관점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망하는 기업은 흔히 단기적 어려움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 것처럼 기업인들은 종종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매몰된다. 호황이 오면 호황이 이어지고, 불황이 오면 불황이 이어지리라는 착각은 대표적인 반 변증법적 사고다. 이처럼 주관적인 사고는 현실 전개에 역행하는 경영으로 기업을 사지에 내몰아 간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랬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이 변하지 않는 수적 조화로 이루어진다고 믿었지만, 이런 믿음은 조화되지 않는 수 즉 나누어지지 않는 무리수가 발견되면서 자신의 당대에 무너졌다. 철학은 사고 훈련의 재료 철학적 사유는 복잡하기만 할 뿐 실생활에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철학사의 뿌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아리송한 말과 ‘악법도 법이다’는 엉뚱한 신념 말고 이렇다 할 글 한 줄 남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저자 거리에 나 앉은 소년에게 오로지 ‘예, 아니오’만 답하게 하는 질문을 던져 기하학 문제를 풀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범인들과 공유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데 있다. 그로써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낳았고, 플라톤은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를 낳았다. 이들의 논리는 기독교의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며 서양사상의 기둥이 됐다.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있다. 동굴에 불이 있고 그 안쪽에서 죄수들이 사슬에 묶여 동굴 벽을 바라본다. 그들은 처음에는 벽에 비친 그림자가 자신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허상을 보는 추측의 단계다. 시간이 흐르면 그림자가 자신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감각을 통한 신념의 단계다. 그러다 사슬에서 풀려나 밖으로 탈출한 죄수는 세상을 익히기 시작한다. 이것은 개념을 축적하는 오성의 단계다. 마침내 그는 동굴 안은 가짜이며, 바깥이 진짜 세계임을 깨닫는다. 이것은 플라톤이 이데아의 인식이라 부른 이성의 단계다.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도 원리적으로 이와 유사하다. 기업은 우선 눈에 보이는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에도 바쁘다. 그러다 경험이 쌓이면 이번에는 자신이 아는 시장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로 인해 다가온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다. 마침내 기업은 초기의 허상을 깨고 거대한 글로벌 시장경쟁에 눈을 뜬다. 비슷한 경우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도토리와 참나무 비유’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수많은 철학서들에게서 얼마든지 사고 훈련의 재료를 찾을 수 있다. 난세에 꽃핀 노장 사상 기업은 위기를 맞아 발상의 전환을 모색하는데, 일부 기업은 그 결과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이런 반전은 철학사에 흔한 일이다. 철학사상 중대한 주제인 삶의 가치라는 문제는 흔히 위기의 시대에 발전했다. 기원전 4세기 경 알렉산더가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아테네는 몰락하고 마케도니아가 융성했지만 곧이어 제국은 분열되고 그리스 세계도 혼란에 빠졌다. 에피쿠로스는 그 속에서 삶의 가치기준이 쾌락에 있음을 주장했다. 쾌락은 선이요, 축복받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가 말한 쾌락은 단순한 육체적 즐거움을 넘어서는 정신적 평정 상태, 즉 아타락시아를 뜻한다. 그에 앞서 디오게네스는 세상을 냉소하며 고통을 묵묵히 참는 행복을 추구해 견유학파라 불렸는데, 같은 시기에 중국에서는 장자가 이와 비슷한 생활을 했다. 장자는 춘추시대 마이너 중의 마이너 국가인 송나라 사람이다. 나라의 삶도 백성의 삶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초연한 생활을 즐기며 10여 만자에 이르는 심오한 문장을 남겼다. 노자와 장자는 공자와 시기적으로 선후를 이루며 함께 도가를 대표한다. 양자의 연속성은 노자의 무위자연 개념을 장자가 수용한 데서 잘 나타나며, 사마천은 사기에서 “장자의 학문은 노자의 말에 귀착한다” 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실 세계를 보는 엄연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도덕경에서는 천지만물의 근원으로 돌아가 사유하려는 입장이 주된 반면 장자에서는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난 절대자유가 중심축을 이룬다. 시대적 위기가 장자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 셈이다. 장자는 “감정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감정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이나 감정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를 잊는다. 마찬가지로 난세를 만난 기업이 온갖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자기혁신에서 먼저 찾지 않는다면 백 가지 진단이 무의미할 것이다. 동사무소 직원, 검은 백조 탁월한 사유는 종종 시대를 뛰어넘고 경계를 뛰어넘어 변주된다. 천동설이 지배하던 중세 과학의 암흑기에 코페르니쿠스는 사후 출간을 통해 지동설의 불씨를 살렸다. 같은 시기에 프란시스 베이컨은 르네상스 철학의 위대한 성과라 할 귀납법을 완성했다. 베이컨의 귀납법은 인류의 논리적 사고력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사유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토록 하는데 기여했다. 여기 ‘동사무소 직원’이 있다. 그의 업무는 마을 세대주의 성을 기록하는 일이다.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성씨를 묻기 시작했는데 마침 그 마을은 집성촌이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같은 성을 말하자, 그는 결국 마을 사람은 모두 같은 성씨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그가 미처 만나지 않은 마을 사람 중 하나는 다른 성씨를 가졌고, 그의 보고는 틀렸다. 베이컨은 이 경우를 들면서 귀납적 사유가 빠질 수 있는 오류를 차례로 정리했는데 그로써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근대철학이 시작됐다. 베이컨의 예시는 최근 레바논 출신의 미국 비평가 탈레브를 통해 경영학적 관점으로 재구성됐다. 여기 ‘조류학자’가 있다. 이전까지 수백, 수천년간 모든 조류학자들은 백조가 흰 새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백조를 조사했지만 이 사실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딱 한 마리의 검은 백조가 그의 눈앞에 출현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백조가 흰 새라는 수천년 동안의 확신은 물거품이 됐다. 탈레브는 이 사례를 통해 경제 위기가 근본적으로 예측불가능함을, 그것도 ‘검은 백조’처럼 들이닥침을 논증한다. 우리는 일견 평범의 왕국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0.1%의 가능성으로 모든 것이 바뀌는 극단의 왕국에 살고 있다. 최대한의 합리적 예측도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는 없다. 기업 경영이 이러한 관점을 지니지 못한다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마르크스와 근대의 종말 서양 근대철학은 시민혁명에 근거를 제공했고 다시 시민혁명은 그리스 시대에 비견할 만한 철학의 부흥을 이끌었다. 이는 근대철학이 근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해석하고 발견하는 도구로 널리 쓰였음을 뜻한다. 근대 인식론의 출발점을 제공한 데카르트에 이어 홉스와 로크의 정치철학, 버클리와 흄의 경험론,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실체론, 볼테르와 루소의 계몽주의 등으로 꽃핀 유럽 철학은 키에르케고르의 신학과 쇼펜하우어의 무신론, 칸트의 인식론과 헤겔의 변증법에 이르러 절정에 이른 듯했다. 프랑스혁명을 거친 19세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서양 철학이 시민사회의 영원성을 전제하게 됐다. 바로 그 시점부터 유럽은 종전에 없던 형태의 균열을 노정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경제활동의 물질적 토대를 토지에서 공장으로, 생산활동의 중심축을 농민에서 노동자로 전변시켰다. 이후에 자본주의라 규정된 이러한 시스템은 계층 분화와 빈부격차의 급격한 진행으로 도처에서 분쟁을 초래했다. 유럽 각국에서 기층민들의 봉기가 일어나던 1848년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내놓으며 “철학자의 임무는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라 주장했다. 마르크스에게서 철학은 변증법을 방법론 삼아 유물론을 철저하게 개진하고, 이를 역사에 적용하여 현실의 변혁을 이끌도록 고안된 지적 도구다. 그의 사상은 러시아 혁명에 이어 소련 연방을 출현시켜 칭기즈칸을 능가하는 역사상 최대의 단일 지배체제를 낳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그 논리의 정합성, 관점의 일관성은 가히 근대사상의 정수를 모은 것으로 보였고 그로 인해 수많은 지식인들이 마르크스를 따랐다. 마르크스는 성숙한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의 폭발로 해체될 것이며, 통제불가능한 시장경제도 과학이 지배하는 계획경제로 대체되리라 믿었다. 문제는 마르크스의 희망과 달리 사회주의 혁명이 자본주의가 성숙한 유럽이 아닌 후진국 러시아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들뢰즈의 반성과 현대기업 최근 김세걸 교수는 흥미로운 논지를 폈다. 마르크스는 한편 역사가 합법칙적으로 발전한다고 외치면서 다른 한편 혁명이라는 실천적 필요에 순응하는 이중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필연은 수많은 우회를 통해 관철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당위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곧바로 실천될 수 있다. 때문에 시간을 압축하면 인민의 고통을 덜 수 있다. 레닌은 이를 간파하고 “모두들 자본주의의 졸업장을 따기 위해 정문에서 줄서서 기다릴 때, 뒷문으로 들어가 (먼저 사회주의를) 출생신고해버렸다.” 이렇게 탄생한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자유의지의 억압과 빈곤의 악순환을 노정하며 무너진 과정은 익히 알려진 바다. 더불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마르크스의 뉴튼역학적 토대, 즉 세계의 인식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렸다. 과학적 방법론과 근대철학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애초 계몽주의의 정점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시장경제는 마르크스-레닌의 실험을 반면교사 삼아 인간 이성과 진보의 한계를 생생하게 체험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더불어 시장에 대한 예측의 한계와 시대 변화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기업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도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질 들뢰즈가 “현대는 시뮬라르크, 곧 허상의 세계”라 주장하며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심원한 역지사지의 결과다. 들뢰즈는 자신의 난해한 글을 공상과학소설과 같다고 말했는데 기실 이는 위기에 직면한 인간 사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몸부림 끝에 거둔 결실이다. 비록 그가 니체의 재해석에 심혈을 기울여 고전 형이상학을 새롭게 부활시켰다지만, 기존 철학자들의 문제의식과 실패에 대한 통찰이 없었다면 새로운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글로벌 경기불황으로 초유의 경영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에게도 들뢰즈식 반성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는 “지워진 것들의 윤곽이 슬픔으로 명징해질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선태 구본홍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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