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하효과(trick down effect)서민피해

2009. 7. 9. 10:16이슈 뉴스스크랩

부자 감세로 빈 곳간 빈자 증세로 메운다

시사IN | 이종태 기자 | 입력 2009.07.09 09:53

감세 때문에 난리다. 정부가 쓸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이 없다. 그래서 지난 6월29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예정된 소득·법인세 2차 인하(소득세는 35%에서 33%로, 법인세는 22%에서 20%로)의 유보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감세, 특히 '부자 감세'를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이명박 정부에게 감세는 원칙이고 이상이며, 이른바 전임 '좌파 정부'로부터 자기 세력을 차별화하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장치'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감세의 1차적 효과는 소외층(위)에 대한 복지 혜택 폐지이다.

↑ 감세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연단을 점거한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이데올로그들에게 김대중-노무현 10년은 '좌파 정권'이 '세금 폭탄'을 무차별 투하해 경제를 죽인 '오욕의 세월'이었다. 소득세로 억압받는 노동자는 노동 공급을 꺼리고, 법인세로 고통받은 자본은 투자를 기피했다. 이 때문에 저투자-저성장-고실업의 악순환이 한반도 남단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대안은 우스우리만큼 명쾌하다. 개인에게는 소득세를, 자본에게는 법인세를 줄여주라! 그러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고 한국 경제는 7% 성장할 것이다.

감세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연단을 점거한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집권 1년차인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각종 계획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웠다. 우선 조세부담률(조세수입 금액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것)을 OECD 최저 수준으로 낮춘다. 또한 재정지출을 잘 관리해서(감축해서) 2012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한다. 이렇게 되면 적은 세금 덕분에 신바람 난 개인과 기업이 경제를 성장시켜 오히려 정부 수입(세수)이 늘어날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 채무는 오히려 줄어든다. 그래서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을 2008년의 32.5%에서 2012년에는 30%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이 '이명박 이데올로그'들의 꿈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꿈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높은 경제성장률이다. 그래서 집권 초기 이명박 정부는 2009년의 실질 경제성장률을 4.8~5.2%, 2012년에는 6.6~7.0%까지 희망했다. 그러나 좋은 일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 법인가. 세계 금융 위기 발발 이후 한국의 2009년 경제성장률은 7%는커녕 -4%~-1% 수준으로 예측되었다. 불황으로 국가 지출은 급격히 불어날 전망인데, 안 그래도 부족한 국가 수입(세수)을 감세로 더욱 줄여놓은 것이다. 그래도 이명박 정부는 감세만은 포기하지 못했다. 정권 차원의 '신앙'이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엄청난 규모의 적자재정을 감수하기를 선택했다. 차라리 국채를 발행해서 국가 채무를 크게 늘리려고 했다.

지난해 말 편성된 2009년 수정 예산안에서 재정 적자 규모는 24조8000억원이었다. 그러나 2009년 들어 정부 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3월에는 유례 없는 규모인 28조9000억원을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한다. 이에 따라 2009년의 재정적자(관리대상수지 기준) 규모는 무려 51조6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감세로 인한 빈약한 지갑을 국채 발행으로 메우다보니 국가 채무는 349조7000억원(GDP 대비 34.1%)에서 366조9000억원(38.5%)으로 늘어났다. 그래도 부자 감세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부자와 대기업부터 돈을 벌어야 그 돈이 밑으로 흘러내려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공식(적하 효과-trickle down effect)에 대한 신앙 때문인지 혹은 다른 '계급적·연고적 이해관계'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소득세 경감액의 77%가 상위 20%에게

결국 '우파 정권' 아래서 한국의 재정 상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지난 6월 초 출간된 IMF 자료( < fiscalImplications of the Global Economic and Financial Crisis > )에 따르면, 한국의 정부 부채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으로 급격히 증가하다가 급기야 2014년에는 GDP의 절반을 초과할 전망이다. 2006년 26.5%였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07~2008년에는 33% 수준에서 정체된다. 그러나 2009년부터 급등해 GDP의 40.0%로 치솟더니 2010년 46.3%, 2014년에는 52%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22쪽 도표 참조).

이런 재정 위기의 주된 원인은 물론 감세다. '국가재정운용계획 총괄총량 작업반'에 따르면, 국세 수입 규모는 2008년 6조6000억이 줄어드는 데 이어 2009년에는 12조원, 2010년 24조1700억원,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28조원 등 5년(2008~2012년) 사이에 98조9000억원이 감소한다. 이렇게 지갑이 가벼워지는 데 재정 위기가 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더욱이 감세를 만병통치약으로 고집할 만큼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높았던 것도 아니다(23쪽 도표 참조). 2008년 출간된 OECD 자료( < revenueStatistics > )에 따르면, 2006년 현재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30개국 중 24위로 21.1%이다. 이에 비해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각각 48.1%, 36.6%이고, 영국이나 프랑스도 각각 30.3%, 27.8%에 이른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도 21.3%이며 OECD 평균은 26.8%이다. 한국보다 낮은 6개국은 멕시코·슬로바키아·터키·그리스·체코·일본이다.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 신흥발전국이다.

더욱이 지난해의 경우, 지니계수가 0.325, 소득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수치)이 6.20배로 소득 불평등 지표들이 사상 최고 수치를 경신하고 있는 시점에서 부자 감세가 이루어졌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오른쪽 하단 도표 참조).

"1335만명(2007년 기준)의 근로소득자 중 소득세율 인하 혜택이 없는 면세자가 50.4%인 673만명에 이른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의 경우 소득세 경감액의 77%가 상위 20% 계층에 집중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6월15일 라디오 연설에서 '감세의 약 70%에 가까운 혜택이 서민과 중소기업에 돌아가고 있다'고 했지만, 그 혜택을 입은 것은 서민이 아니라 상류층이다."

부자의 돈 지켜주며 빈자에겐 '립서비스'만

지난 세월, 신자유주의의 선도 국가였던 미국과 영국에서는 부자 증세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 부문에서만은 굳건한 자주성을 보여준다. 지난 6월, 정부 측 인사들이 제안한 재정건전화 방안은, 부자 감세에 대한 유동적인 입장 바꾸기를 빼면 대충 다음과 같다.

첫째, 비과세·감면 조항을 축소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근로자·농어민 지원, 경차·화물차 유류세 환급, 사회개발 지원 등이 포함되는데, 2008년 현재 29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근로자·농어민 지원이 13조2000억원으로 44.6%를 차지하는데 이 부분을 축소하자는 내용이다.

둘째, 윤증현 장관의 표현대로 하면 "외부 불경제 항목에 대한 증세"이다. 술과 담배 등 '외부 불경제'를 일으키는 상품에 간접세를 부과하면 국민 건강도 좋아지고 세수도 채울 수 있으니 '형님 좋고 아우 좋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한국재정학회가 최근 재정기획부 용역으로 만든 보고서도 부가가치세 등 소비세율을 높이자고 제안한다. 말하자면 간접세 인상으로 재정을 건전화하자는 것. 재정부는 "부가세 인상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용역 보고서란 것이 '여론 떠보기'로 이용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결국 부자 감세로 줄어든 국가 수입을 불특정 다수가 내는 간접세로 메우면서 국민 건강을 챙기는 시늉까지 내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6월26일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건강권을 이야기하면서 '흡연 금지운동 같은 캠페인'을 감동적으로 거론한다. 부자 감세를 빈자 증세로 메운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한나라당이 부자를 위한 정당이 아니라 서민을 부자로 만드는 정당이다. 서민의 눈물이 그치는 날이 바로 우리 경제가 살아나는 날이다"라고 '진정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부자들의 돈'을 지켜주고 다른 편으로는 시민의 건강권과 '눈물'이라는 '립서비스'로 재정을 건전화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노력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