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받아 "집사자"…쓸 돈이 없다

2009. 9. 21. 08:41이슈 뉴스스크랩

너도나도 대출받아 "집사자"…쓸 돈이 없다

매일경제 09/15 17:44



◆新 내수시장을 찾아라 ① / 부동산 덫에 걸린 소비◆

# 1. 김상수 씨(가명)는 최근 노량진에 있는 3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직장생활 8년간 부부가 모은 2억원에 은행 대출 1억5000만원을 받아 어렵사리 집 장만에 성공했다. 매달 은행 이자로 나가는 돈은 약 65만원. 다섯 살짜리 쌍둥이 키우는 데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아 마음 놓고 돈을 쓴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다.

# 2.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정지만 씨(가명)는 부동산 부자다. 현재 살고 있는 37평 아파트와 반포에 있는 22평형 아파트 등을 포함해 그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자산은 약 25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부동산 구입의 절반가량은 은행에서 빌린 돈이다. 은행 이자에 대한 부담으로 매달 생활비는 넉넉지 않은 그야말로 '속빈 강정'이다.

한국 사람들은 부동산에 울고 웃는다. 평생 돈을 모아 집 한 채를 사는 즐거움에 살고 집값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면 허탈함에 빠진다. 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집에 살기 위해 돈을 번다는 말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소비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총 자산 중 부동산 비중(2006년 기준)은 76.8%에 달한다. 영국(54%), 일본(39%), 미국(33.2%) 등 선진(주가,차트)국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부동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빚으로 이어지고, 가계의 소비여력을 갉아먹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 거미줄처럼 얽힌 대출
= 올해 2분기 기준 가계 부채는 697조원에 달했다. 3년 전에 비해 100조원 이상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가 지고 있는 금융 부채는 가처분 소득보다 1.4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비율은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 있어 지난해에는 주택 대출 부실에 빠진 미국(1.34배)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는 스페인(1.35배), 일본(1.06배)보다도 높다.

소득증가율은 정체되고 빚만 쌓이니 소비여력은 계속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일부 부동산 부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소비 규모나 수준이 그들이 보유한 자산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부동산 대출로 인해 막상 쓸 수 있는 돈은 없는 것. 앞으로 부동산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은 이들의 돈을 부동산에 꽁꽁 묶어놓고 있다.

◆ 내집 마련할 여력조차 없어
= 저소득층일수록 문제가 심각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소득층인 1~3분위 계층의 '부채/가처분소득 배율'은 1.3~3.2배(2007년 기준)로 고소득층인 4~5분위 계층(1.2배)보다 높다. 적자의 덫에 빠진 저소득층에게는 내집 마련할 여력조차 없다.

이처럼 평생 부채의 짐을 안고 사는 가계 처지에서는 '소비를 확대하라'는 말은 사치처럼 들릴 뿐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다시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는 시중 금리로 가계의 부담은 다시 늘어날 위기에 처해 있다.

◆ 부동산 상승 기대감 줄여야
= 가계의 과도한 부동산 비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부동산시장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향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다면 부동산 투자 가치가 떨어져 가계의 부동산 비중은 낮아질 수 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돈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부동산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것"이라며 "부동산 가격이 연착륙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자연스레 부동산 비중을 줄여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 본부장은 "부동산은 정책의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부동산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공급 확대도 빼놓을 수 없는 대책"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저소득층의 내집 마련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한 지원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별기획팀 = 이진우 차장(팀장) / 강계만 기자 / 안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