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총리, 과외단속 주문한 이유

2009. 11. 21. 18:46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鄭총리, 과외단속 주문한 이유..가계빚 때문 "사교육비가 가계부채 급증의 한 이유"
"가계부채 늘어나면 미래자본 축적 어려워"
입력 : 2009.11.20 15:12

 
[이데일리 정원석기자] `경제학자` 출신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운찬 총리는 20일 열린 `제1차 사교육비 경감 민관 협의회`에서 “수능 이후 논술대비 등 단기 고액과외가 성행하고 있다”며 관계부처 합동으로 강력하게 단속할 것을 지시했다.

올해부터 도입되는 입학사정관제로 인해 사교육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일부 지역에서 성행하고 있는 입학 사정관제 고액 컨설팅에 대해서 유관 기관 공조를 통해 지도 단속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이 같은 발언은 평소 정운찬 총리의 언행과는 거리가 있다. 시장기능을 중요시하는 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던 그가 시장 밖 공권력의 힘을 빌려서라도 사교육 수요를 억누르려고 했기 때문이다. 정 총리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태도의 이유는 이날 회의 모두 발언에서 나온다.

그는 발언 첫 마디에 “가계부채가 660조를 넘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가계부채는 주로 주택비, 또 하나는 교육비, 특히 사교육비에서 나온다”며 “이처럼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사교육비 절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말 가계대출 잔액은 661조5000억원에 이른다. 최근 5년 동안 가계대출 잔액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 2004년 1분기 425조7000억원에서 5년 사이에 24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경제위기가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해 4분기와 1분기 사이 소폭 감소(648조원→647조원)했지만,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에 힘입어 신용경색이 완화되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정운찬 총리는 사교육비 증가로 인한 경제적 폐해에 대해 “미래 인적자원 육성이 어려워지고, 또 소득의 상당부분을 교육비에 투자하느라고 저축을 못하게 된다”며 “가계가 저축을 못한다고 하는 것은 미래 자본축적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 총리의 `고액 과외 단속 지시`에는 “부채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위험요인이 된다”는 평소 지론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접근은 최근 한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논리다.

이성태 총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당히 낮은 정책금리를 가져갈 때 그것이 너무 많은 빚을 지도록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부채가 많이 늘어나면 이자비용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어 소비가 위축되는 등 경기회복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중앙은행맨`들은 태생적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시중 유동성이 과잉 공급될 때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지나치게 공급되면 부동산 등 자산 버블이 일어나고,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어쩌면 `고액과외 단속`을 지시하면서 가계부채 급증을 그 이유로 제시한 정운찬 총리의 사고 방식 역시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한국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중앙은행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한 화폐금융론 전공의 경제학자다. 한은 총재 하마평에 꾸준히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했다.

정 총리는 최근 세종시 수정 계획을 이끌며 정국 주도권을 상당부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종시 수정이 그의 의중대로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만으로도 최소한 청문회 이후 추락했던 위상은 어느 정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출구전략 등 산적한 국정과제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