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의 금융반란 운동

2010. 12. 9. 09:07지구촌 소식

 

[특파원 칼럼] 유럽인들의 금융반란 운동

김홍수 파리특파원

국가 부도 사태 취재차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을 찾았던 지난달, 다른 나라와 다른 풍경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빌딩 하나 건너마다 있는 은행 지점들이었다. 인구 400만 나라에 웬 은행이 이렇게 많나 싶었다. 또 하나, 걸인들이 하나같이 은행 앞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 걸인에게 "왜 비 맞아가며 은행 앞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야 사람들이 돈을 찾는 곳이니까…. 나름 (국가부도 사태에 대한) 시위도 되고, (은행들은) 지은 죄가 있으니 내쫓지도 못해"라고 답했다.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한때 유럽 내 최고 고도성장국이었던 아일랜드는 은행의 무분별한 부동산 대출 투기 탓에 한순간에 몰락했다. 긴축정책 여파로 공무원·공기업 직원 급여는 10% 이상 깎였는데, 정부가 500억 유로(약 77조원)를 쏟아부은 덕에 은행들은 문을 닫은 곳이 한 곳도 없다. 사정이 이러니 은행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아일랜드 시위대가 거리에서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는 "은행가들은 구제하지 말라"였다. 앵글로아이리시뱅크의 전 은행장은 자기 은행으로부터 850만 유로(130억원)를 대출받아 개인 사업자금으로 유용한 것도 모자라, 주택 압류를 모면하기 위해 방 6개, 화장실 5개짜리 호화주택을 아내 명의로 바꾸기도 했다.

보통 기업은 경영이 부실해지면 문을 닫지만, 은행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면 경제가 붕괴되는 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로 압축되는 은행 업종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위기 후 국제적으로 새 금융규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은 없다.

이런 현실이 답답한지 최근 유럽에선 시민들이 직접 은행을 응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전(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 축구 선수였던 프랑스인 에릭 캉토나(배우이자 사회 운동가로 활동 중)가 선봉에 섰다. 그가 선택한 전술은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운동이다. 그의 이론은 간단하다. "은행을 파괴하면 사회 시스템은 자동 붕괴된다. (프랑스의 경우) 2000만명이 한꺼번에 자기 예금을 인출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조용히 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

그의 선동은 유튜브·페이스북 등 인터넷 매체를 통해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시민들은 '찻잔 속의 폭풍'에 그칠 줄 알면서도 열광하고 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금융 반란(D데이 12월 7일)에 참여하겠다고 서명한 유럽인이 5만명을 넘어섰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부실대출 탓에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스페인 시민들은 비슷한 조직까지 만들어 가세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프랑스에선 주무 장관이 시민들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서야 했다. 은행을 도산시키자는 것은 '초가삼간 태우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선동이 호응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지금 유럽인들의 분노가 크다. 우리도 남의 일로만 볼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