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악취 없고… 배출물 오염도 줄었다

[박은호 환경팀장의 현장 리포트] 집안에 악취 없고… 배출물 오염도 줄었다

서울의 한 아파트서'음식물 쓰레기 분쇄기' 1년 써 본 결과

조선일보 | 박은호 환경팀장 | 입력 2011.02.28 03:13 | 수정 2011.02.28 17:19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앞서가는 것 중 하나가 '쓰레기 배출'이다. 1995년 일반 생활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아 버리도록 한 '쓰레기 종량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고, 2005년부터 시행된 음식쓰레기와 일반쓰레기의 '분리 배출제' 역시 세계 처음이었다. 주부들이 정부 정책에 호응해 거의 매일 음식쓰레기를 집 밖에 내다버리는 불편을 7년째 감수해 온 것은 '분리 배출이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 [조선일보]

↑ [조선일보]서울 영등포구의 당산 푸르지오아파트 주방 싱크대에 설치된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 잘게 부서진 음식물 쓰레기가 곧바로 정화조를 거쳐 하수관거를 통해 배출된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 [조선일보]

그러나 이런 통념을 깨는 뜻밖의 실험결과가 나왔다. 작년 3월부터 1년간 서울 영등포구 '당산 푸르지오아파트'에선 음식쓰레기를 주방 싱크대에 설치한 분쇄기로 갈아 화장실 분뇨와 함께 하수관거(管渠)를 통해 배출했다. 분쇄기 사용은 현행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환경부 허가를 얻어 이 아파트에서 현장 실험을 한 서울시는 "분쇄기 사용이 분리수거보다 환경적·경제적으로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24일 이 아파트를 찾아갔다. "집안에 악취도 없고 더럽지도 않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주민 김혜경씨)거나 "아파트 전체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관리소장 김정한씨)는 반응이 많았다.

서울시는 분쇄기 실험을 위해 이 아파트에 총 5억2000여만원을 투입했다. 9개동 538가구에 대당 45만원씩 하는 음식쓰레기 분쇄기를 공급하고, 분쇄된 음식쓰레기를 아파트 지하 정화조로 배출하는 배수관 및 오수(汚水) 정화시설 등을 설치한 뒤 이전의 분리 배출 방식과 비교·분석했다.

우선 하수도로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농도가 대폭 줄었다. 분쇄기를 사용하기 전, 주방 오수(汚水)의 오염물질 농도는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 기준으로 약 145ppm(피피엠·100만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 분뇨 처리수는 190ppm이었는데 분쇄기 설치 이후 평균 68ppm으로 대폭 낮아진 것이다. 서울시 김영진 주무관은 "주방 오수와 화장실 분뇨를 병합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화시설을 추가 설치한 효과 덕분"이라고 말했다. 다른 아파트도 가구당 96만원 정도만 들이면 새로운 방식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 효과도 있었다. 그동안 음식쓰레기 수거·운반비로 구청에 매달 1500원씩(가구당)을 냈지만 분쇄기 설치 후엔 전기·물 사용량으로 한 달에 가구당 평균 556원의 비용이 든다.

분쇄기 사용이 분리 배출보다 환경·경제적으로 더 낫다는 사실은 환경부가 외부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작년에 발간한 '주방용 오물분쇄기 도입 타당성 조사 연구' 보고서에서도 확인됐다. 분쇄기를 사용하면 음식쓰레기 운반·수거 차량 운용 등이 필요 없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대폭 줄어든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하수도법을 개정해 지역 여건에 따라 분쇄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했다. 현재 서울시내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약 85%에 정화조가 설치돼 있기 때문에 분쇄기 방식을 언제든지 적용할 수 있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하지만 환경부는 "아직 실험을 더 해봐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분쇄기를 사용하면 가정집 배수관이 막히는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음식쓰레기를 사료나 퇴비로 재활용한다는 기존 정책을 수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검토를 더 한 뒤에 분쇄기 설치 허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