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생존, 미래예측에 달렸다

2011. 5. 11. 17:52C.E.O 경영 자료

월스트리트 기업들 '오라클 비즈니스'로 富 축적
美ㆍ日ㆍ獨 등 정부기관도 미래 트렌드 예측에 사활

"자칫하면 삼성도 10년 뒤에는 구멍가게가 된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던진 말이다. 삼성전자가 요즘 갤럭시S와 갤럭시탭 등 스마트폰 및 태블릿PC 분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계속 발전을 거듭해 새 수요를 창출하고 한국경제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회장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 것이다. 이 회장은 삼성이 휴대폰 부문에만 치중한다면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이 회장의 이러한 직관적인 깨달음을 바로 오라클(oracle · 신탁)이라고 한다. 이 회장처럼 세계적인 기업인들은 모두가 결정적인 시점에서 미래를 앞서 예측하는 오라클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갑부인 미국의 워런 버핏도 마찬가지다. 그가 현재처럼 갑부가 된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남들보다 '미래예측'을 잘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조업체를 직접 경영하지도 않았고,무역업에 뛰어든 적도 없다. 단지 그가 한 일은 어떤 회사가 앞으로 수익을 낼 것인지를 판단해서 그 회사의 '미래가치'에 과감히 투자한 것이었다.

이 회장이나 버핏처럼 '미래예측을 잘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현상'을 '오라클 이펙트(oracle effect)'라고 한다. 사실 오라클 이펙트는 고대사회에서부터 존속했지만 그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오늘날에는 드디어 하나의 회사나 국가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법칙이 됐다. 예측에 따라 세계 경제 전체가 왔다갔다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08년 뉴욕발 세계 금융위기에 이어 지난해 그리스에서 시작된 남유럽발 재정위기를 넘기기도 전에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으로 이어지는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본 대지진과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 시리아로 이어지는 재스민혁명은 미래예측이 얼마나 큰 폭발력을 행사하는지를 절감케 하고 있다.

이제 정확한 예측 없이는 지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이나 금융자산마저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됐다. 그야말로 우리는 '예측=돈'인 시대에 살고 있다.

오라클이 국가와 개인의 흥망성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기원전 4세기에 소크라테스가 지적했다. 플라톤의 저서 국가론과 아폴로기 등에서 소크라테스는 국가와 개인의 성패가 오라클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라클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델피는 험준한 산비탈에 신전을 짓고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은 인근 도시국가의 왕이나 귀족들이 찾아오면 이를 예측해 주는 오라클을 내렸다. 일종의 '오라클 비즈니스'였다. 그 덕분에 델피는 교역에 유리한 지리적 이점도,비옥한 농지도 없었지만 800년 가까이 번성했다.

분쟁이 잦고 상거래가 위험했던 이 시기에 정확한 미래예측은 큰돈을 가져다주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도시국가들끼리의 충돌이 자주 일어나던 당시 델피는 미래를 예측해 주는 것만으로 부국을 유지했다. 예측은 정확성이 높았고,덕택에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오라클 비즈니스는 뭘까. 무디스 골드만삭스 아서앤더슨 같은 회사들이 미래예측의 대가로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판 오라클 비즈니스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 오라클 효과는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지표가 됐다"고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은 그의 저서 '오라클 이펙트'에서 밝히고 있다.

현대에 와서 오라클의 바통을 이어받은 곳은 미국의 랜드연구소다. 이 연구소를 설립한 사람들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숨은 주역으로 활동한 바 있었다. 이들이 델피의 오라클을 연상해 새로 개발한 것이 바로 '델파이기법'이었다. 그 후로 델파이기법 또한 역사를 바꾸는 미래예측 방법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됐다.

최근 들어 미국 일본 독일을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오라클 기관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에선 국가정보위원회(NIC)가 미래예측을 주도한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는 1973년 설립됐으며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구촌의 미래 트렌드 파악을 하고 대응전략을 짠다. 영국은 미래전략처가 미래예측을 맡고 있다. 2002년 설립됐으며 영국 총리 직속기관이다. 호주는 2008년 경제 · 사회 · 환경 분야에 대한 국가 장기전략 수립을 위해 미래최고회의를 설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국제미래프로그램을 세웠다. 이같이 선진국들은 미래예측기관을 설립하기에 바쁘다.

가트너 같은 오라클 기업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여기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되면서 오라클 시장(oracle market)도 급속도로 팽창하는 추세다.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오라클의 힘이 드디어 세계경제를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정월석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 차장 mich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