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활성화된 'CT 부검' 억울한 죽음도 해결해 준다

2011. 7. 16. 20:57세계 아이디어 상품

일본서 활성화된 'CT 부검' 억울한 죽음도 해결해 준다

해부로 못 찾아낸 증거 발견, 스위스·호주 등도 많이 사용
부검 꺼리는 경우에 효과적… 한국 국과수 내년 도입 계획

이달 중순, 유명 백화점이 밀집한 일본 도쿄 긴자(銀座) 거리. 쇼핑객이 붐비는 이 지역에 죽음을 맞은 시신(屍身)을 찍은 영상이 매일 컴퓨터 모니터를 가득 채우는 곳이 있었다. 'Ai 부검영상(Autopsy imaging) 센터'. 시신을 CT(컴퓨터 단층촬영), 엑스레이 등으로 찍은 영상을 보고 사망원인을 판독하는 곳이다. 일본 전역 20개 병원에서 촬영된 시신 영상이 원격 전송 시스템을 통해 이곳에 모인다.

'의료영상 부검(剖檢)'은 사망원인이 불명확해 그 원인을 밝혀내야 할 필요성이 있으나 유족들이 해부를 통한 부검을 기피하거나, 시신을 훼손하지 않은 채 가장 의심 가는 사망원인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쓰는 방법이다. CT 등 의료영상이 산 자의 질병 진단에서 죽은 자의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법의학과 영상의학의 만남

지난해 일본에서 생후 8개월 된 아기가 호흡곤란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왔다가 곧 사망했다. 엄마는 아기가 우유를 먹다가 토하면서 갑자기 생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법의학팀은 아기 몸에 난 조그만 멍 자국을 보고, 아기 시신을 CT로 찍었다. 그 결과, 두개골과 팔뼈에 미세 골절이 발견됐다. 극심한 육아 스트레스를 느낀 엄마가 아기를 학대한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Ai 영상센터' 야마모토 세이지(山本正二·영상의학과 전문의) 대표는 "미세 골절은 해부를 통한 부검으로 찾아내기 어렵지만, CT로는 쉽게 알아낸다"며 "현재 일본에서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14세 이전 소아 사망에서는 모두 CT를 찍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CT 부검은 의료사고 규명에도 쓰인다. 50대 중반 여성 환자가 왼쪽 신장(腎臟)에 생긴 종양 때문에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다. 바늘로 찔러서 신장 조직을 일부 떼어내는 검사다. 그러나 환자는 3일 후 새벽 병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조직검사 자리에 과다 출혈이 생겨 발생한 의료사고라고 했다. CT 부검을 한 결과, 조직검사 자리에는 출혈이 적었고, 반면 광범위한 뇌출혈이 발견됐다. 뇌동맥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혈관 기형이 환자에게 있다가 이것이 우연히 터져 죽음에 이른 것이다. 부검 없이도 사망원인을 알아낸 셈이다. 일본에서는 이 같은 CT 부검의 '위력'이 속속 밝혀지면서 아예 시신 전용 CT를 운영하는 병원도 생겼다. 스위스·호주 등에서도 CT 부검이 활발하다.

일본에서는 시신을 CT나 엑스레이로 찍어서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부검(剖檢)의료 영상 시스템을 운영한다. 도쿄에 있는 부검 영상센터 야마모토 세이지(영상의학과 전문의) 대표가 시신 영상을 설명하고 있다. 모니터 왼쪽 사진은 시신 엑스레이, 오른쪽 상단은 CT 사진이다. /도쿄=김철중 기자

억울한 죽음 밝히는 보조 수단

부검을 두 번 죽이는 것으로 인식하는 동양 문화 탓에 일본과 한국의 부검률은 4%대로, 서구 나라의 30~40%대보다 낮다. 이 때문에 타살이 자연사로 위장됐거나, 폭력에 의한 죽음이 사고사로 포장된 사례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과수는 내년부터 CT 부검을 사망원인 분석에 본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CT 부검 비용은 50만원 정도다. 유족의 요청으로 부검을 하게 되면 유족이 비용을 부담한다.

국과수 양경무 법의관은 "CT는 대량 재해 발생 시 치아나 골격, 몸에 부착된 유류품 분석 등을 통해 신원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법의학 지식과 영상의학 기술이 접목돼 새로운 부검 기법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