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구룡마을엔 공무원이 안보였다

2011. 8. 3. 09:08이슈 뉴스스크랩

부자동네에만 수해복구 지원 ‘북새통’…판자촌 구룡마을엔 공무원이 안보였다<세계일보>
  • 입력 2011.08.02 (화) 18:35, 수정 2011.08.03 (수) 08:42
1200가구중 절반 침수…정부·구청선 ‘나몰라라’
“힘 없다고 찬밥” 눈물
  • “돈 많고 힘 있는 동네가 아니라서 그런가요.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구청은 관심도 없더라고요….”

    2일 오랜만에 하늘은 맑았지만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들 표정은 어두웠다. 그럴 만도 했다. 마을 입구를 지나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도로는 여기저기 움푹 파여 있었다. 곳곳에 토사와 쓰레기더미가 쌓여 너저분했다. 주민 김모(51·여)씨는 “폭우와 산사태로 동네가 만신창이가 됐어요. 그런데 정부와 구청 어디서도 도와주지 않아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수마가 할퀴고 갔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구호가 끊긴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2일 자원봉사자들이 배수로를 막고 있는 토사를 삽으로 퍼내고 있다.
    남제현 기자
    지난주 서초구 우면산 일대를 할퀴고 간 ‘수마’는 구룡마을도 비켜가지 않았다. 대모산에서 밀려온 토사와 흙탕물로 전체 1200여 가구 중 500여 가구가 침수되거나 무너졌다. 무허가 판자촌인 탓에 하수구 시설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다른 지역보다 침수 피해가 컸다. 집집마다 판자 지붕 위에 덮인 천조각들은 곰팡이가 슬었고,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장롱과 냉장고 등 가재도구가 나뒹굴었다. 대낮인데도 비좁은 골목 사이사이 자리한 집들은 음습했다. 이순연(84·여)씨 집은 마루바닥이 무너지면서 마루 아래로 물이 흘렀다. 집이 물에 잠겼던 최영임(64·여)씨는 감전 위험 탓에 일주일 만인 이날에야 가재도구를 정리했다.

    서초구 형촌마을이나 방배동 아파트단지, 강남구 대치동 등 인근 수해현장과 달리 이 지역은 관 주도의 복구작업에서 소외됐다. 우면산 자락을 비롯한 다른 지역은 지난달 27일부터 구청 직원과 군인, 경찰 등 수많은 공무원과 중장비가 투입됐지만 이곳은 ‘찬밥 신세’였다.

    지난달 31일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마을을 방문해 “빠른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말뿐이었다. 강남구는 이날 구청직원과 용역 등 310여명을 대치동 상가 등 관내 수해복구 현장에 투입했지만 구룡마을은 빠졌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구룡마을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김성한 숙명여대 교수는 “이곳은 복구 인력이 많이 모자란다. 중장비 지원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주민 이모(53·여)씨는 “각자 집은 그렇다쳐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큰길이나 배수로 공사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강남구청 구룡마을 담당자는 “이 지역은 물이 들어와도 금방 빠진다. 대부분 복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에 인력지원도 요청하지 않았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복구에 필요한 시멘트와 모래 등을 지원했다”고 해명했다.

    서초구도 고급 주택가 지역 복구에만 신경쓰고 비닐하우스 가옥 등 빈민촌 피해지역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고급 전원주택 200여 가구가 있는 방배동 전원마을 윗쪽의 무허가 주택 10여동은 폭격을 맞은 것같이 처참한 몰골 그대로였다. 방배동 전원마을의 한 무허가 주택 주민은 “공무원들이 아래 (고급)주택을 복구한 뒤 우리에게도 올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가 지난달 31일 여당 유력 정치인의 요청을 받자 구청의 태도가 달라졌다. 한 주민은 “그 사람이 아니면 (구청에서) 거들떠 보기라도 했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김유나·조병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