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조선족, 일자리가 진화하고 있다

2011. 9. 18. 11:25이슈 뉴스스크랩

[Why] 50만 조선족, 일자리가 진화하고 있다

식당 종업원·공사장 인부에서 미용사·대리기사·대기업 직원으로…
외모에서 차이 없고 의사소통 문제 없어 "웬만한 실력 되면 채용"
가리봉동·대림동 등 중국 교포 밀집지역 '조선족 경제권' 활발

조선일보 | 신동흔 기자 | 입력 2011.09.17 20:41 | 수정 2011.09.18 09:17

 

서울 잠실에 사는 홍기훈(38)씨는 얼마 전 집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다가 중국 '연변 말씨'를 쓰는 남자 헤어 디자이너를 만났다. 중국 교포였다. 홍씨는 '다른 업체보다 머리 깎는 가격이 싸더니 인건비를 줄이려고 조선족을 고용한 것인가' 혼자 생각했다.

↑ [조선일보]지난달 말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중국인 거리 풍경.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어 간판과 중국어 간판 숫자가 엇비슷했으나, 요즘은 중국어 일색이다. 국내에 진출한 중국 동포의 일자리가 다양해짐에 따라‘조선족 경제권’인 이 지역에서 중국인 간의 부동산 거래와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미용실뿐만이 아니다. '말투가 다른' 사람들은 대리운전,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남성전문 체인 미용실 S사 관계자는 "채용 공고를 내면 미용 기술을 가진 조선족들이 찾아오곤 한다"며 "테스트를 해보고 어느 정도 실력이 된다 싶으면 채용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학생이나 20대 젊은이들이 단골로 일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에도 이제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광화문 등 시내 사무실 밀집 지역과 대학가의 편의점에는 조선족뿐 아니라 한족 유학생들까지 진출해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다. 용산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양모 사장은 "한국 학생들은 며칠 일하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중국 유학생만 7명을 파트타임으로 채용하고 있다"며 "한족이지만 한국어 구사도 가능하고 무척 성실한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중국 동포의 수는 '한국계 중국인'으로 등록된 외국인 39만6000명(2011년 6월 기준)과 귀화자 등을 포함해 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중국 내 조선족 인구(200만명)의 20% 이상이 한국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선호하는 일자리도 단순 노무직을 벗어난 지 오래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중국 동포 전문 사이트에 들어가면 미용학원에서 중장비 학원, 운전면허 등보다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자격증 취득을 안내하는 광고가 쏟아지고 있다. 한중동포신문 문현택 편집국장은 "중국 교포들은 다른 외국인과 달리 외모에서 차이가 없고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데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기술과 전문성을 갖추면 좀 더 나은 일자리에 진출할 수 있다"며 "1990년대 한약재 보따리상으로 시작한 조선족 경제가 토착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고, 전문직에 진출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초창기 한국에 들어온 중국 동포들의 자녀 세대에 해당하는 젊은이들은 학력 수준이 높고 문화적으로도 개방적이다. 최근 지상파 가요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백청강의 경우가 상징적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일반 대기업이나 학계, 법조계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 법무팀에도 중국인(조선족) 변호사들이 채용돼 대 중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국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판사와 변호사 등으로 법조 경력을 쌓은 뒤 한국으로 유학 왔다가 국내 로펌에 취직하는 경우도 많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 동포 인력들은 한·중 양국 언어에 능하고 양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으며, 한국식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아 앞으로 대 중국 관련 업무 수행에 있어서 필수적인 인력"이라며 "현재 계약서 검토와 투자자문 등 다양한 법무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우리나라 대기업의 중국 사업 비중이 확대될수록 조선족 엘리트 인력에 대한 수요는 매년 증가할 전망이다. 서울 가리봉동이나 대림동 등 중국 동포 밀집 지역에선 부동산 거래도 활발하다. 이들 지역에 형성된 '조선족 상권'은 중국인들의 투자도 활발하고, 점차 지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 조선족들의 진출 분야가 확대되면서 일부 불만도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대리운전 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사장은 "어떤 경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약 6~7개월 전부터 중국동포 출신 대리 운전기사들이 연결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서울 지리를 잘 몰라 1시간이면 갈 거리를 2시간 걸려 운행하는 등 한국 물정에 어두워 항의하는 고객도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