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19. 09:16ㆍC.E.O 경영 자료
[Why] 웬만해선 문자하는 사람들… 전화통화의 종말 오나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소통법
문자시대의 전화 예절 - '밤 10시 이후 전화하지 말라'가 '아무에게나 불쑥 전화 말라' 돼
통화 가능한지 문자 먼저 보내
새 통화수단 스마트폰 앱 - 가입자 2000만 돌파 카카오톡, 하루 5억건 문자 주고 받아
피자·치킨 주문도 앱으로
스마트폰족, 고개 좀 드세요 - 그 자리에서 궁금증 해소
정보 조급증 확산… 10분마다 이메일·앱 확인
얼마 전 광고회사 오리콤 직원 몇 명이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 그 중 한 명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술이 달아"라는 네 글자를 올렸고, 그의 '페북 친구'인 나머지 멤버들은 이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이후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이들은 '댓글 놀이'에 푹 빠져,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댓글로만 대화했다. 자리가 파할 때쯤 댓글은 127개를 헤아렸다.
'통화(通話)의 종말(終末)'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 스마트폰 가입자 1500만명 시대에 스마트폰은 더 이상 '폰(phone)'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신 문자 메시지와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대화한다. 1876년 3월 10일 알렉산더 벨이 조수인 토머스 왓슨에게 전화를 걸어 "왓슨, 이리로 와 주게"라고 말했던 세계 최초의 통화 이후 135년, 전화(電話)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의 소멸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 대 사람 간 의사소통의 행태와 예절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음성통화보다 많은 문자메시지
"전화하지 마세요. 저도 전화하지 않을게요(Don't call me, I won't call you)." 지난 3월 18일자 뉴욕타임스 칼럼 제목이다. 이 칼럼을 쓴 파멜라 폴은 "모든 의사소통이 이메일과 문자로 이뤄지는 요즘, 전화벨이 울리면 '무슨 일이 생겼나?' 또는 '뭔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엔 '이렇게 다짜고짜 전화를 해도 되나?' 하게 된다"고 했다. 또 "예전에는 '밤 10시 넘어서는 전화하지 말라'고 배웠으나 요즘엔 '아무에게도 불쑥 전화하지 말라'가 예절이 됐다"며 "이제 전화를 걸려면 먼저 '전화해도 되나요?'라는 문자를 보내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썼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의 43%는 통화가 아닌 문자 메시지를 위해 휴대폰을 구매한다고 한다.
스마트폰과 일반 휴대폰은 물론, 인터넷 전화의 폭발적 증가로 문자메시지 사용액이 통화 매출을 넘어섰다. 9월 현재 1500만대에 육박한 스마트폰을 포함해 총 5000만대에 이르는 휴대폰은 물론, 가정에서 쓰는 인터넷 전화 역시 문자 메시지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작년 3분기에 이미 문자를 비롯한 데이터 매출이 음성통화 매출을 앞질렀다. 당시 무선데이터 매출액은 7680억원, 음성통화 매출은 6170억원이었다. 이것은 미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3대 이동통신사가 나란히 올해 2분기에 고객 1인당 데이터 매출이 음성 매출을 앞질렀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07년, 영국은 2006년부터 문자 사용 건수가 음성통화 건수를 추월해왔다. 한국 이동통신사들은 통화와 문자 건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나, 이동통신업계는 이미 오래전 문자가 통화 건수를 넘어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자메시지 양이 음성통화량을 추월한 이후,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무선데이터 서비스로 급속히 이동했다. 카카오톡을 비롯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새로운 '통화의 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작년 3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무료 메시징 서비스 카카오톡은 1년4개월 만인 지난 7월 가입자 2000만명을 돌파했다. 카카오톡으로 오가는 문자메시지는 하루 5억 건에 달해 3대 이동통신사 전체의 문자메시지보다도 많다. 이런 현상을 두고 미국 통신연구기관인 '퓨(PEW) 리서치센터'는 "어제는 통화했으나 오늘은 문자를 보내고, 내일은 앱으로 대화한다"고 표현했다. 이동통신사들도 음성통화 외의 다른 서비스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안재호 커뮤니케이션본부장은 "앞으로는 모바일 메시징 서비스와 이를 통한 새로운 플랫폼 개발에 이동통신의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멸종위기에 처한 유선전화
올 10월 결혼을 앞둔 이모(여·27)씨는 혼수 목록에서 일찌감치 유선전화를 제외시켰다. 자신과 신랑 둘 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어 굳이 '집전화'를 놓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 가정을 꾸미거나 이사를 하는 경우 유선전화를 포기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2007년 2313만명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국내 유선전화 가입자 수는 작년 12월 1927만명으로 감소했다. 그나마 인터넷 전화가 기존 유선전화를 대체하고 있다. 이것은 인터넷 서비스와 TV, 전화 묶음상품을 구매하기 때문이거나, 문자와 카카오톡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집 전화가 등장한 덕분으로 분석된다.
유선전화는 소비자 물가 목록에서도 빠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 개편 내역을 밝히면서 유선전화기와 공중전화 통화료를 물가지수에서 빼고, 대신 스마트폰 이용료를 추가하기로 했다.
세계 최초로 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AT&T사는 지난 2009년 12월 유선전화 서비스 포기를 선언했다. 유선전화 사업으로는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018년에 이르면 미국인의 8%만이 유선전화를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가 작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24.5%가 오로지 휴대폰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1명이 통신수단으로 휴대폰만을 쓰는 셈이다.
음성을 텍스트가 대체하면서 커뮤니케이션 행태도 급변하고 있다. 회사원 김모(30)씨는 사무실 간식으로 피자와 치킨을 주문할 때 스마트폰 앱을 사용한다. 앱을 통해 원하는 상품을 주문한 뒤 카드 결제하면, 저장돼 있던 주소로 간식이 배달된다. 유료 서비스인 '114'의 고객이 급감하는 대신 각종 앱으로 전화번호를 찾는 것 역시 스마트폰 이후의 풍속도다. 음성통화로만 가능했던 119 신고 역시 이제 문자로 가능하게 됐다. 소방방재청은 지난 7월 '119 다매체 신고서비스'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올해 11월까지 3G 영상과 문자로 119 에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앞으로 '사물과 대화하는 통신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연구소는 지난 8월에 내놓은 보고서 '음성통화의 소멸과 그 이후의 통신미래'에서 "집 안의 불을 끄고 나왔는지, 집에 누가 있는지 알기 위해 음성통화를 하는 대신 가스레인지와 CCTV에 문자를 보내면, 가스레인지가 답문자를 보내고 CCTV가 영상을 보여주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지털 스트레스 vs. 패러다임의 전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화기에는 '용건만 간단히'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요즘 스마트폰에는 '가끔 고개를 드시오'라는 스티커가 붙을 만하다.
중소기업 부장인 조모(50)씨는 회의시간에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보는 부하직원들에게 몇번 "회의에 집중하라"고 주의를 줬으나,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거 뭐더라?" 하고 혼잣말을 하면 어느샌가 부하직원이 스마트폰으로 '정답'을 찾아내 줬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문화는 이처럼 궁금증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해결해 준다는 장점과, 회의든 회식이든 단체 모임에서 '고개숙인 사람들'을 양산하는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동시에 수십 수백명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스마트폰 시대엔 '문자 씹기(답장 안 하기)'가 새로운 '무례'로 등장했고, 수십통씩 들어오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같은 문자에 답장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새로운 스트레스 요인으로 등장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 7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직장인 4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0.9%가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생각한 적 있다"고 답했다. 42.6%는 "스마트폰 때문에 대화에 집중을 못 해 다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 3월 '스마트폰이 연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조사해 보니, 응답자의 절반인 50.4%가 "스마트폰 때문에 연인과 싸운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37.7%는 "스마트폰 때문에 대화와 스킨십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인텔이 미국 내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휴대기기의 사용예절과 에티켓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결과 90%의 응답자가 "휴대기기의 사용예절이 바르지 않다"고 답했다. 88%의 응답자는 "휴대기기에 몰입해 타인을 배려하는 의식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음성통화 전용기기인 유선전화 시대에서 '손안의 컴퓨터' 스마트폰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사람들의 '정보 조급증'도 확산 일로에 있다.
지난 7월 미국 학술지 '퍼스널 유비쿼터스 컴퓨팅'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습관이나 강박처럼 10분마다 이메일이나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확인습관'이 된 것이다. 휴대폰이 진동하지 않아도 문자가 왔다는 착각 때문에 자주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유령진동 증후군'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이러한 현상을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 김현경 연구원은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유선전화는 물론 휴대전화에서도 음성 통화 감소 경향이 뚜렷하다"며 "앞으로 음성 통화는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국한되고, 나머지 커뮤니케이션은 문자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또 "음성 통화의 감소를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봐야 한다"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1대 1 커뮤니케이션 대신 1대 다(多) 또는 다대 다 커뮤니케이션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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