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포어 “창의적 생각은 ‘기억’에서 나오죠”

2011. 9. 25. 11:08C.E.O 경영 자료

[j Focus] 조슈아 포어 “창의적 생각은 ‘기억’에서 나오죠”

미국 기억력 대회 챔피언 조슈아 포어
카드 52장 순서 100초에 외웠죠

중앙일보 | 이소아 | 입력 2011.09.24 01:32 | 수정 2011.09.24 07:59 |

흥미가 있다고 모두가 그 분야의 달인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되는 사람도 있다. 조슈아 포어(28)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젊은 미국 기자는 2005년 뉴욕에서 열리는 '전미 기억력 대회(U.S. Memory Championship)'를 취재하러 갔다. 참가자들은 한 시간 동안 무작위로 1000자리 이상의 숫자를 순서대로 암기하고 원주율 값을 5만 자리까지 외워냈다. 눈이 휘둥그래진 포어는 한 출전자에게 "자신이 천재란 걸 언제 알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심드렁한 대답. "저 천재 아닌데요? 매일 한 시간씩만 연습하면 누구나 다 해요." 정말?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가 취할 행동은 하나다. 포어는 직접 기억력 대회에 출전하기로 한다. 그리고 1년 뒤, 우승한다. 정말? 기자도 즉시 포어에게 전화했다.

글=이소아 기자 < lsajoongang.co.kr >

●기억력 대회에서 미국 신기록을 세웠다던데.

 "뒤섞인 포커 카드 한 벌(52장)의 순서를 1분40초 만에 정확히 외웠다. 세계기록을 깨려면 1분30초대는 돼야 한다."

●원래 기억력이 좋았나.

 "절대 아니다. 평범하다 못해 형편없다. 솔직히 기억력 자체는 대회 전후로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기념일을 까먹고 차 키를 어디다 뒀는지 헷갈린다."

●그런데 어떻게 우승까지 했는지.

 "'기억의 궁전'이라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2500년 전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가 발견한 기억술이다. 쉽게 말해 기억할 내용을 '익숙한' 가상의 공간에 '쇼킹한' 이미지로 바꿔 저장해 놓고 떠올리는 거다."

●예를 들면.

 "피클·치즈·훈제연어·훌라후프를 사야 한다고 치자. 우선 익숙한 자기 집을 상상하고 현관 앞에 피클이 담긴 유리병을 놔 둔다. 거실에 놓인 그랜드피아노 줄 위에선 훈제 연어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익고 있다. 욕조 안에선 발가벗은 클라우디아 시퍼(독일 모델)가 치즈 범벅이 돼 목욕하고 있다. 식탁 위에선 여자들이 단체로 올라가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다(물론 온몸이 흔들리겠지?). 이제 집 안을 따라 걷기만 해도 저장된 내용이 떠오른다."

●그런 장면들을 상상해 내는 것도 일이겠다.

 "바로 그거다. 기억은 창조의 원천이다. 창조성은 어디서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다. 기억하고 있는 사실과 생각이 많아야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기억력 대회 역시 기억력이 아니라 창의성을 겨루는 대회다. 얼마나 과감하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얼마나 재빠르게 떠올리고 활용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거다."

●꼭 기발하고 쇼킹한 이미지여야 하는지.

 "당연하다. 어제 먹은 점심메뉴는 잊어버려도 10년 전 9·11 테러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뭘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않나. 일상적인 것보다 비열하고 치욕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것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 뇌는 성(性)에 대한 농담을 좋아하도록 진화했다."

●상상한 것 중에 가장 쇼킹한 이미지는.

 "마이클 잭슨이 연어 버거 위에 큰 일을 본다든지, 인기 시트콤의 작고 귀여운 여주인공이 수단 출신 농구스타(키 2m31cm)와 마주서서 키 차이 때문에 불가능할 텐데도 ○○를…. 잠깐 이거 가족들이 다 보는 일간지 아닌가? 그만 하겠다."

●기억력 대회 출전으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결과보다는 준비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다. 물론 우리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기억력이 어떻게 증진되는지도 알게 됐다. 하지만 매일 꾸준히 훈련하면서 힘든 일, 부지런함이 가진 가치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1년 동안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거다. 시간을 들여 연습하고 노력하면 뭐든지 가능하다."

●기억력 향상에 좋은 음식이나 습관이 있을까.

 "그런 마법의 음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먹어서 머리가 확 좋아지는 음식은 없는 것 같다. 대신 머리에 좋은 습관은 분명히 있다. 뭔가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의미를 파악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효과적이다.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은 기억술(Art of memory)이란 곧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 왜 그럴까.

 "시간에 대한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경험은 사건에 대한 일련의 기억으로 짜인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단조로워지고 그마저도 줄어든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에 남을 새로운 것이 없다. 단조로움은 시간을 줄인다."

●체감 시간을 늘리려면.

 "매일 운동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오래 살아도 하는 일 없이 방에서 TV만 보면서 하루를 지내다 보면 기억에 남는 것 없이 한 해가 저물어 버린다. 틀에 박힌 일상을 바꾸고 여행을 떠나고 기억에 남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라.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내면 체감 시간도 늘어나고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도 바뀐다. 예를 들어 나는 지난주에 멕시코 해변에서 열린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보기술(IT) 기기들 덕에 따로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됐다. 우리는 바보가 돼 가는 걸까.

 "실제로 바보가 되진 않겠지만 고도로 발달한 IT 기술은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 기억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바꾸고 있다. 컴퓨터나 외장하드, USB, 스마트폰 등은 매우 편리한 보조기억 장치지만 분명 우리가 잃는 것도 있다."

●기억력 대회에서 배운 기억술을 유용하게 쓰고 있나.

 "음… 별다른 메모나 노트 없이 강연할 수 있다. 기억할 수 있는 숫자도 9개에서 18개 정도로 늘었다. 그래도 건망증은 여전하다."

●프리랜서 기자 직업에 만족하나.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걸 즐긴다. 최근에 낸 책도 질문에서 시작했고(그는 기억 훈련 과정과 기억에 대한 각종 취재를 엮어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이란 책을 냈다). 내 호기심을 자유롭게 좇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직업이라면 뭐든 좋을 것 같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인생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사는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은 새로 기억할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에요.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생을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일 아닌가요? 아내와 함께 삶을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가득 채우려고요."

j 칵테일 > > "단순 암기는 의미 없어요"

조슈아 포어는 기억력을 경시하는 교육 논리에 불만을 나타냈다. 기억력이 결코 창의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

●암기가 학습이나 교육에서 중요한가.

 "단순 암기는 의미 없고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오래 기억에 남는 지식을 전해 줄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테마가 될 수 있다. 진정 무언가를 '안다(Know)'는 것은 세상을 헤쳐나가고 그 안에서 배우고,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이다. 그냥 외우기만 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인간의 두뇌가 어떤 것을 어째서 더 쉽게, 오래 기억하는지 그 생리를 공부해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는 그런 기억력 말이다."

●기억력이 좋으면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렇다. 기억이 모이면 경험이 되고, 경험이 모이면 지혜가 된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이 세상과 나 자신을 훨씬 잘 안다는 뜻이다."

●한국에선 암기력을 비판하고 창의성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큰데.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를 하나 들어보자. 세계 체스 챔피언들은 체스 판을 보여주자마자 말을 휘리릭 움직인다. 어떻게 가능할까. 그들이 천재라서? 아니다. 그들은 그동안 고도로 집중해서 너무나 많은 게임을 치러왔기 때문에 체스 판 유형을 대충 다 기억하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기반으로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체스 판을 빠르게 지각하고 구성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기억이 지식이 되고 창의성으로 이어지는 거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