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보다 무거운 '한달살이 인생'

2011. 9. 30. 08:35부동산 정보 자료실

집값보다 무거운 '한달살이 인생'

[머니위크 커버]내몰리는 서민경제/‘백약이 무효’ 전셋값 폭등

 

'전세 1억, 100-30/50-33에 큰 방 하메 구함. 공과금 1/n, 사생활 침해 없음, 애완동물 불가, 비흡연자.'

최근 전세가격 급등의 여파로 월세가격이 상승하면서 룸메와 하메를 찾는 이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118만명의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는 포털의 한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에는 룸메와 하메를 찾는 글이 하루에도 100건이 넘게 올라온다. 룸메는 방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 하메는 한 집에서 살되 방을 각자 쓰는 하우스메이트의 준말이다.

글의 목적은 전세 시세가 1억원인 집에 큰 방 쓸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100-30/ 50-33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거나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33만원이라는 의미다. 함께 살 사람들이 방의 넓이에 따라 월세를 나눠 내는 식이다. 같이 살 사람의 자격을 두는 것도 룸메·하메 구하기의 필수요소다.

이들이 룸메나 하메를 찾는 이유는 금전적 부담이 점차 크게 느껴져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의 월세가격 평균상승률이 1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에 비해 2.8% 상승해 1996년 10월 2.9% 상승한 이래 최고치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4.8%로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뒤를 이어 제주(3.7%), 서울(3.2%), 대전(3.1%) 순으로 나타났다.

한달 사는 것도 빠듯한 이들에게 생면부지의 사람과의 동거는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베이비부머, 은퇴 대비용 월세 매물에 관심

"서너 실씩 분양받는 분들도 있어요. 이쯤이면 품귀현상이 벌어졌다고 봐야죠."

지난 8월 찾은 강남의 한 도시형생활주택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계약 호조에 연신 들뜬 듯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실제로 현장에는 수백명의 예비 수요자가 견본주택 내부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10평 남짓한 집에 거주하는 20~30대가 주요 소비층이다. 그런데 현장에는 50대 고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은퇴를 시작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투자 개념으로 이곳을 많이 찾고 있다"면서 "월세를 찾는 젊은 세대들이 수요를 받쳐주고 있어 수익률이 좋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주변 월세 시세를 보면 월 12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비부머의 은퇴 대비용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임대사업자의 자격요건이 완화된 것도 베이비부머 세대가 주택임대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전·월세가격 안정대책으로 공급을 민간에서 충당하기로 함에 따라 임대사업자는 기존 3주택에서 1주택만 임대를 하더라도 세제혜택이 주어지게 된다.

임대주택시장의 수요는 많은 반면 공급은 넉넉치 않다. 부동산114가 조사한 서울시의 연간 오피스텔 공급추이를 살펴보면 2004년 4만3776실에서 2010년 1880실까지 줄어들었다. 올해 역시 8월까지 1486실로 지난해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신규 분양하는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마다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한라건설이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을 합친 '강남 한라비발디 스튜디오 193'은 187실 모집에 1047명의 신청자가 모여 5.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이달 초 현대산업개발이 분양한 은평 아이파크 포레스트 게이트는 814실 모집에 8963명이 모여 평균 1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7월 분양한 대우건설의 분당 정자동 2차 푸르지오 시티 오피스텔이 24대 1의 경쟁률을 보여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지난 3월 현대산업개발의 강남역 2차 아이파크 오피스텔이 평균 56.7대 1을 기록해 오피스텔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달살이' 양산하는 주택시장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의 인기는 주택경기 침체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 정체로 인해 주택 구매욕구가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주택수요가 임대수요로 전이된 것이 전·월세 가격을 끌어올리는 이유다. 주택 경기 하락으로 신규공급이 줄면서 전세 공급이 줄어든 것도 가격 급등의 원인으로 꼽힌다.

주택가격 정체와 전세가격의 상승은 기존의 월세 풍토를 재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급등한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와 이자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집주인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전세금 인상분을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는 전세매물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반전세나 월세의 증가는 통계를 통해 드러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지난해 기준 월세가구는 처음으로 20%를 넘었다. 21.4%로 전세가구(21.7%)와 맞먹는 비율이다. 국민은행의 주택임대차 계약분포를 보면 반전세 비중 역시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월까지 주택임대차 계약 중 43.3%가 반전세로 작년 동기에 비해 1.9%포인트 늘었다.

월세 비중이 커지면 그만큼 매달 가계 부담도 크다. 월세는 그야말로 한달이면 소모되는 돈이다. 전세가격 상승만큼 대출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월세비용보다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월세 부담을 피해 도시 외곽으로 전셋집을 찾는 '전세유목민'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까지 정부는 전세안정과 주택공급을 위해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놨다. 올해 들어서만 1·13 전월세시장 안정화 방안, 2·11 전·월세시장 안정 보완대책, 6.30 전·월세시장 안정 등 서민 주거지원확대에 이어 8·18 전·월세 시장안정화 대책까지 네 번째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다. 무리한 내집 마련으로 매달 이자부담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와 월세를 받아 노후를 보전해보려는 베이비부머, 꼬박꼬박 월세를 내야하는 집 없는 서민들까지 '한달살이'만 양산하고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