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과 공유하지 못하는 CEO만의 '가치관 경영'은 착각

2011. 12. 25. 12:08C.E.O 경영 자료

조선비즈 입력 : 2011.12.23 14:27

CEO 10명 중 8명꼴로 "직원들과 가치 일치할 것"… 실제 조사해보니 27%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모든 경영 활동에서 가장 엄중한 기준 돼야
"죽을 각오로 임해야 가치관 경영에 성공" 그래야 직원들도 공감

조미나 상무
IGM 세계경영연구원이 CEO 120명을 대상으로 '귀사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세 가지를 써본다면 대표님과 직원들의 답변이 서로 얼마나 일치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 결과 10명 중 8명이 '일치할 것'이라고 답했다(모두 일치 2%, 상당 부분 일치 37%, 절반 정도 일치 39%). 과연 실제로도 그럴까?

국내 기업 40곳을 대상으로 CEO와 직원들의 응답 일치율을 조사한 결과 평균 27% 만이 동일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120명의 CEO들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46%가 회사의 가치관이 제대로 없거나 공유되지 않아서라고 응답했다. 일의 의미나 가치를 몰라서(사명) 19%, 회사에 원칙과 기준이 없어서(핵심가치) 6%, 회사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어서(비전) 21%였다. 이는 적은 연봉(19%), 인간적 갈등(1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오지영 주임연구원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상당수의 CEO들은 가치관 경영을 도입하고 싶고(65.3%), 이미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다(24%)고 응답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하다. 설문 결과 기업의 가치관(사훈·경영이념·비전 등)을 창업자 혹은 현 경영진이 단독으로 만들었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이었다(54%). 또한 다른 기업의 가치관을 벤치마킹한 경우가 15%를 차지했다. 다시 말해 다수의 CEO들은 경영진이 좋다고 생각하는 가치관 혹은 그럴듯해 보이는 타사의 가치관을 억지로 적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치관 경영을 통해 직원들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CEO라면 다음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가치관 경영은 '무조건 착한 기업이 되겠다'는 식의 기업 윤리와는 다르다. 배중호 국순당 대표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았을 때 스스로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했다고 한다. 술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배 대표는 그때부터 국순당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고민 끝에 '몸에 좋은 우리 술을 만들자'라는 사명이 탄생했다. 상호도 '좋은 누룩과 술을 빚는 집'이란 뜻의 '국순당'으로 바꾸었다. 몸에 좋은 우리 술을 세계에 알리는 운동도 본격화했다. 가치관 하나가 단순한 술장사를 전통문화 복원사업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창업자라면 먼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찾아야 한다. 어떤 마음으로 창업을 시작했는지, 어떨 때 직원들에게 심하게 화를 내는지, 언제 칭찬하는지, 그리고 회사에 대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전문경영인이나 2세 경영인이라면 접근법이 다르다. 새로운 가치관을 수립하려고 하기보다는 이미 기업 안에 내재화되어 있는 가치를 먼저 찾아야 한다. 이때 직원들과의 토론을 활용하면 좋다. 또 이 내재된 가치들이 오늘날 회사가 당면한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유효한가도 토론해야 한다.

그래픽=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회사의 가치관은 사업을 확장할 때, 인재를 뽑을 때, 위기에 대응할 때 등 경영의 전 영역에서 가장 엄중한 기준이 돼야 한다. CEO의 판단을 넘어서는 최고 의사결정권자 수준까지 가치관을 끌어올리려면 CEO 스스로가 개인의 생각보다 가치관을 기준으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가치관이 발현될 수 있도록 제도와 연계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가치관이 직원들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 숨 쉬게 된다.

아발론교육도 핵심가치인 '혼신과 바른 마음'을 기준으로 의사 결정을 내린다. 강사 채용시에도 심층면접을 강화하고, 외국인 강사의 경우 수습기간을 더 길게 둬 혼신과 바른 마음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탈락시킨다. 가치관 규정에 어긋나는 직원들에게는 감봉을 실시하기도 한다. 이 회사는 학원업계 최초로 주 5일 근무를 표방했다. 바른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려면 휴식도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학원에 비해 급여 수준이 다소 낮은 편이지만, 아발론의 가치에 공감하는 직원들이 점점 모이고 있다고 한다.

CEO는 스스로가 먼저 가치관에 입각해 행동해야 한다. 자식이 어딘가 모르게 부모의 단점까지 닮는 것처럼 직원들도 CEO의 행동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2010년 초부터 가치관 경영을 실천해온 이재정 메카로닉스 대표는 "죽을 각오로 임해야 가치관 경영에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CEO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과 모든 의사 결정의 순간에 가치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죽을 각오로 임했더니 직원들도 가치관 경영에 서서히 스며드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한다. 직원들의 대화 속에서 "목표가 확실해졌다"는 이야기가 오갔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자발적으로 고민하더라는 것이다.

CEO가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해서 직원들이 이를 철석같이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치관 경영에 대한 CEO의 의지부터 점검하자. 준비가 됐다면 직원들의 손을 잡고 함께 변화될 채비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