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5. 09:10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불출마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노장이 일부 끼어있기는 하지만, 4.11총선을 100일 앞둔 시점의 불출마 러시에는 소장도 많다.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다. 인적 물갈이, 정치 시스템 개혁 태풍 예보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시니어 그룹이라도 친박계 4선 이해봉 의원(대구 달서을)의 불출마 선언은 다선이 즐비한 영남 공천 칼바람을 예고한다.
과거 총선때마다 불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20명안팎이었고, 대부분 공천 탈락이 확실시되는 총선 1~2개월전쯤 고령자 다선 의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비해, 이번에는 앞날이 창창한 소장파 의원들이 총선을 한참 앞둔 시점에서 대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벌써 13명이다.
비리의혹 와중에 불출마를 선언한 '형님' 이상득(76) 의원과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김형오(64) 의원, 고령 등을 이유로 용퇴한 이용희(81) 민주당 의원, 당 대표 경선때 배수진 치는 차원에서 지역구를 던진 원희룡(48) 의원을 제외하곤,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떨쳐 버리고 나가는 모양새이기에 현재로선 그 '용기'에 대한 찬사가 많다.
■버티면 엄청난 권한, 떠나면 가공할 실직의 공포,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다면 불출마 선언이 끝인가. 불출마의 정치적 효과는 뭘까. 어떻게 느끼느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국회의원은 면책 및 불체포 특권과 입법권, 대통령탄핵소추권, 예산결산의결권, 국정감사권, 6~7명의 비서, 정치자금 모금, 적지 않은 세비, 논스톱 공항 출입국, 무료 KTX탑승 등 200가지 안팎의 권한과 혜택을 누린다.
국회의원을 하다 그만두면 일반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실직의 공포'에 시달린다. 국회의원을 했다는 이력 때문에 웬만한 직장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교수출신은 강단으로 돌아갈수 있지만 '폴리페서' 지적 속에 가시방석이고, 박사학위가 없는 낙선,낙천자들은 이마저도 못한다.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이런 혜택을 받는 정치인 역시 극소수이다. 남의 눈 때문에 자영업도 못한다. 권력을 놓은 이후 심리적 무력감도 극심하다. 헌정회 관계자는 "전직 의원 중 70%가 의원연금 100여만원이 소득의 전부"라고 말한다.▶본지 2008년3월17일자 1면 '금배지,실직의 공포' 참조
■'형님' 빼곤 19대 총선불출마 화두는 반성과 쇄신
불출마에도 격과 품질이 있다. 과거에는 쫓겨날 위기에서 짐짓 용기를 발휘하는 척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14~17대 총선전 불출마을 선언한 의원들이 내세운 주된 이유는 "세대교체"였다.
그러나 이번엔 자책, 쇄신요구, 백의종군이 주된 불출마의 이유였다. 한나라당 박진(55)의원은 "구당(救黨)과 소통"을, 현기환(52), 장제원(44) 의원은 "환골탈태와 쇄신"을, 홍정욱(40)의원은 "책임 통감"을 얘기하며 떠났다. 민노당의 곽정숙(51)의원은 "새 정치, 새 사람"을, 민주당 장세환(58) 의원은 "잡음 없는 통합"을, 김형오 전국회의장은 "백의종군"을 이유로 내세웠다.
실용주의 개혁파로 알려진 정장선(53) 의원은 "4대강 날치기와 국회난장판에 염증을 느꼈다"고 밝혀 여야 의원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이들 중 일부는 "떠나지마라"는 지지자들의 눈물겨운 호소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원직 포기후 의원직으로 돌아온 경우는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 지자체장, 각료 등 '직군'을 바꿔 재등장하는 경우는 꽤 있었다.
최근 고문 후유증과 파키슨병 등을 앓다 작고한 '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전 의원은 2002년 "꼴지를 기억해달라"면서 대선 경선을 포기했고, 2007년에는 아예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17대땐 "새시대 갈망하는 국민 여망"...알고보면 타의반
4년전인 18대때엔, 한나라당의 경우 각 계파의 공천 싸움이 치열해 불출마 선언 없이도 현역물갈이 폭이 컸고, 민주당의 경우 '시퍼런 칼날' 박재승 전 변협회장의 공천혁명이 있었기에 불출마 선언할 겨를이 없었다고나 할까. 한나라당 강재섭대표는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올4월 분당 재보선에 출마해 손학규 대표에게 패했다.
불출마 선언이 유독 많았던 때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다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한나라당은 당내 중진 26명이 무더기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표인 최병렬 의원부터 박관용,김용환,강삼재,양정규,박헌기,한승수 의원이 "새시대를 갈망하는 국민의 여망에 따라"라는 뜻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기에 소장파 오세훈 의원이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다"며 정계를 은퇴했다. 하지만 그는 2006년 '깜짝쇼' 하듯 서울시장 선거에 나와 당선됐다.
당시 일화 한토막. 늦깎이로 입문한 A의원은 기라성 같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출마를 주저했지만,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이던 김문수 의원이 "그 광역시 모두 정리할테니 나오라"고 했고, 두 명의 고참 의원은 "내가 떠날테니 내 자리로 오라"고 요청해 입문했다고 고백했다. 이때 불출마 선언은 위로부터의 개혁의지에 따른 중진들의 울며겨자먹기식 결단이었다는 해석이 많았다.
■"불출마 선언 했으니 비례라도 주겠지"...국물도 없었다.
2000년 16대 총선전에도 20여명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때에도 '노땅'들을 중심으로 한 자의반타의반 선언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민정계 잔당의 청산, 양김시대 가신들의 정리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5,6공 인물로 꼽히는 장세동, 김복동, 서정화씨가 후진양성 등의 이유로 떠났다. '킹메이커' 허주 김윤환 의원의 YS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때 밀려난 민정계 박세직씨는 자민련으로 옮긴뒤 정치권의 변화와 깨끗한 정치풍토 조성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허주도 떠나라'고 했고, 때마침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된 허주는 16대 총선에 도전하지 못했다. 황낙주 의원은 공천신청을 포기했다. 황 의원은 그러나 자신들의 용단 뒤에 '비례대표로의 구제'라는 떡고물을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양김 가신그룹의 경우 민주당쪽에서는 권노갑, 국창근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한나라당에서는 최형우씨 등이 정치생명 연장 의지를 포기했다.
이에 앞서 고승덕씨(현의원)는 1999년 송파갑 재선거 한나라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가 장인이던 박태준 자민련(당시 연립여당) 총재와의 의견조율 잡음 등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18대 총선때 정식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공천 탈락후 '멋지게' 불출마 선언...이주일 "정치가 코메디", 박경수 "매력없다. 농사나 짓겠다"
1996년 15대 총선 전에는 공천탈락자의 뒤늦은 불출마 선언이 많았다. 하나회 출신의 배명국의원, 신한국당 권해옥,신상식,노인환,송두호, 국민회의 김장곤의원들이 그랬다. 5공청산 움직임속에 5.18의 주역 정호용, 박준병, 허화평, 허삼수씨는 탈당또는 은퇴했다.
정치에 대한 염증이 직간접적으로 표현된 불출마도 많았다. 코메디어 이주일시는 "정치가 코메디판, 내가 있을 곳 아니었다"면서 탤런트 출신 이순재 의원와 비슷한 시기 불출마를 선언했고, 박경수 의원은 "정치는 매력없는 자리, 시골면장만도 못하다"면서 귀농을 선언해 주목 받았다.
■강금실, 김영춘 "무욕정치" 백의종군
19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한 중진은 공천받고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노웅래 전 의원의 아버지인 노승환 의원은 반(反)DJ 당내개혁을 주장하다 비슷한 개혁성향의 조윤형 국회부의장이 낙천하자 의원직 연장을 포기했다. 당시 유세장에서는 초강적을 피하게 된 여야 후보들이 마포에서 야당 깃발을 오래도록 꽂았던 노 전 의원에 대해 "숭고하다", "경의를 표한다"며 칭송하기에 바빴다.
백의종군, 무욕정치, 살신성인을 내세운 의원도 적지 않았다. 4년전 18대 총선에서 강금실 전 법무장관은 "무욕의 정치로 백의종군하겠다"고 했고, 김영춘 전의원은 "개혁세력 대통합을 위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김봉조 의원은 지역구를 김기춘씨에게 물려주면서 '백의종군'을 외쳤다.
■대통령들의 식언...DJ 불출마 번복, YS "직을 걸겠다"했지만….
불출마를 번복한 대표적인 케이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1992년 대선에서 진 뒤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1997년 복귀해 '병풍(兵風)'을 치면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역대 대통령 모두 센 거짓말 한 번 씩은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6.25 전쟁당시 남몰래 서울을 빠져나간 뒤 온 국민을 상대로 자신이 서울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서울 사수' 방송을 내보냈고,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시절 쿠데타를 성공한뒤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고 군부는 빠지겠다" 약속해 놓고 대통령에 올랐으며,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개방을 막겠다"고 했지만 쌀 개방이 된 이후에도 대통령직을 유지한 바 있다.
■신율 "미래에 자신있기 때문...쇄신이라 얘기못해"
여의도를 떠난뒤 여의도로 복귀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보직'을 바꿔 복귀한 경우는 더러 있었다. 오세훈 의원의 서울시장 '전직', 경남지사직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태호 의원의 총리직 낙마 이후 김해 보궐선거 당선 등이 대표적이다. 전례에 비춰, 50대 중반도 안돼 그 좋다는 의원직을 포기할때면 뭔가 다른 계획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율 명지대교수(정치학)는 "소장파의 불출마는 한나라당이 많은데, 현재 상황은 좋지 않아도 미래에 대해 자신 있으니까 감행한 것으로 본다"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국회의원 또는 다른 정무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번 소장파의 불출마 러시가 과거 노장들의 은퇴선언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를 두고 쇄신이라 단정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강행처리 참여시 불출마'를 내걸었던 10여명 주목
불출마의 용기는 신선하게 오래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유권자에게 심은 좋은 기억은 나중에 재등장했을 때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설사 복귀하지 않더라도 '용기있는 정치인' 표상이 되기 때문에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다만 국회의원, 지자체장, 각료, 대통령 등으로 복귀한다면 더 잘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국민의 시선이 날로 따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누가 불출마를 선언할지 관심거리이다. 일단 서울과 영호남의 물갈이폭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다선과 의정성적이 나쁜 의원을 중심으로 불출마 행렬이 이어질 전망이다.
2010년 10월 새해예산안 날치기 직후 "향후 모든 강행처리에 동참을 거부하며,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불출마하겠다"고 자성결의문에 서명한 의원중 지난 한미FTA비준안 강행처리에 참가해 찬성표를 던진 구상찬 권영세 김선동 김세연 김장수 남경필 배영식 신상진 윤석용 이한구 주광덕 황우여 의원의 거취를 지켜보는 일도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습적 학교 폭력 가해자, 뇌구조 다르다 (0) | 2012.01.06 |
---|---|
OECD 회원국 식품물가 상승률 (0) | 2012.01.05 |
대형 은행ㆍ보험 "돈벌었다"…최대 300% 성과급 (0) | 2012.01.05 |
송아지 3마리 값이 등심 1인분 값이라니… (0) | 2012.01.05 |
한·미 FTA 농어업 피해, 2017년까지 24조 지원 (0) | 2012.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