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어도 길게"...'60세 정년' 받고 임금 양보

2012. 7. 22. 11:34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가늘어도 길게"...'60세 정년' 받고 임금 양보

현대중공업 홈플러스 GS칼텍스 등 도입 잇따라...임금 상승억제 피크제 도입 머니투데이 | 유현정|정영일 기자 | 입력 2012.07.21 09:40 | 수정 2012.07.21 09:44

 

[머니투데이 유현정기자][현대중공업 홈플러스 GS칼텍스 등 도입 잇따라...임금 상승억제 피크제 도입]

#. 올해로 만 55세인 문옥기씨는 홈플러스 영등포점에서 신선식품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해 기준대로라면 지난달 생일에 정년퇴직을 해야 했지만 지난 12월 회사가 정년을 만60세로 늘리면서 앞으로 5년은 더 일할 수 있게 됐다. 혼기가 찬 큰 아들과 올 봄 제대해 복학을 앞둔 둘째 아들을 생각하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 씨는 "55세는 한창 일할 나이"라며 "계속 일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문 씨처럼 올해 정년 연장 수혜를 입은 홈플러스 직원은 135명. 홈플러스에 다니는 50세 이상 정직원 2000여명은 지난해 만 60세로 정년이 늘어나면서 문 씨와 같은 퇴직 고민을 잠시나마 내려놓았다.

평균수명 연장으로 '100세 시대'가 열렸다고 하지만, 직장인들에게 '노후준비'는 공포의 단어로 다가온다. 이런 가운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노조 역시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 수준을 양보함으로써 노사 모두가 윈-윈(win-win)을 이루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19일 노사 단체교섭을 통해 정년을 만 60세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이 회사 노조는 최근의 경기불황을 감안해 기본급 2.5% 인상안을 수용하는 대신 정년연장을 포함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활복지'를 선택했다.

현대중공업은 '베이비부머' 세대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기업이다. 근속연수가 평균 19년이 넘을 만큼 회사를 오래 다닌 근로자들이 많다. 이들의 정년연장 요구가 표면화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2006년에 노조의 요구로 당시 만 57세인 정년을 58세로 늘렸다가 2008년에 만 58세 후에도 계약직으로 1년을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로는 부족해 2010년 '만 58세+1+1'을 통해 한 번 더 재고용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했다.

이러한 방식은 갑자기 닥친 퇴직부담을 떨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퇴직 후 고용형태가 '계약직'이란 점이 부작용을 낳았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관계자는 "퇴직한 분들이 회사를 나간 후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하는데 현실상 그렇지 못하다"며 "자녀 학업과 결혼 등 부모노릇을 하느라 노후준비가 덜 된 퇴직자들이 1년 계약직 연장을 통해 근무했지만 비정규직에서 오는 박탈감과 소외감들로 인해 서운함을 지적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배경에서 현대중공업 노사가 올해 정년을 정식으로 연장하게 된 것이다.

앞서 정년연장을 했던 회사들도 취지가 비슷하다. 지난해 유통업계 최초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홈플러스는 고령화 시대 고용 안정에 기여하고자 지난해 9월부터 노사협의회와 함께 정년연장을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차원에서 정년 연장을 실시하게 됐다"며 "고령 직원들의 경제적 안정은 물론 최근 베이비붐 세대 은퇴에 따른 사회적 파장 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년을 만 58세에서 60세로 연장키로 노사가 합의한 GS칼텍스의 경우 올해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한다. 2년 더 일하는 대신 임금을 80%로 깎는 게 골자다. GS칼텍스도 현대중공업과 비슷하게 과거 만 58세까지 일한 후 계약직으로 1년 더 일할 수 있도록 했지만 노조 측에서 정식으로 정년을 연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한 때는 임금을 많이 받고 조기퇴직을 하는 것이 인기였지만 이제는 수명이 연장되다 보니 임금을 조금 덜 받아도 최대한 오래 일하자는 것이 풍조"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 활동 필요 연령'이 늘어남에 따라 '가늘더라도 길게' 직장을 다니는게 직장인들의 목표가 돼 가고 있다.

국내 한 자동차업체 노조 관계자는 "최근 들어 '과장으로 승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민원이 가끔 들어온다"며 "생산직은 과장이 되면 노조에서 탈퇴해야 하는데 그러면 노조원이 입을 수 있는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년연장에 대해 추가 비용부담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숙련된 직원이 퇴사함으로서 생기는 업무 공백과 신규 입사자에 대한 교육비용이 감소하는 점은 비용부담을 상쇄하는 이점으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영호 홈플러스 기업문화팀장은 "정년연장으로 인해 직원들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가질수록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단일정년제를 적용하는 기업의 평균 정년은 57.3세다. 기업별 정년은 55세가 36.5%(668곳)로 가장 많았고 58세 22.7%(415곳), 60세 17.4%(318곳), 57세 10.4%(190곳) 순이었다.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민주통합당 등 정치권이 정년 연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데다 임단협 협상 중인 현대자동차 노조와 오는 30일 총파업을 예고한 금융노조도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어 앞으로 '만 60세 정년'기업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머니투데이 유현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