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 '점심값 1000원'…하루 500명

2012. 8. 27. 08:37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강남 한복판에 '점심값 1000원'…하루 500명

뉴시스 | 최성욱 | 입력 2012.08.26 06:38

 

【서울=뉴시스】최성욱 기자 = "김밥도 한 줄에 몇천원씩 하는데 이 정도면 거의 공짜로 먹는 거죠. 눈치 볼 일도 없고…"

폭우가 쏟아진 지난 22일 오전 11시30분께. 도심 속 전통 사찰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는 주중인데도 일찍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경내로 들어서자 사찰 내 공양간인 보우당 앞에는 다소 이른 시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신도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부터 정장차림의 직장인들까지. 바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봉은사는 2006년부터 일반인에게 보우당을 개방해왔다. 가격은 1인당 1000원으로 요즘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구내식당보다도 훨씬 저렴하다. 이 때문에 하루 평균 500여명이 이곳을 찾고 있다.

특히 최근 고물가로 주변 음식점들의 가격 인상이 이어지면서 이곳을 찾는 외부인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왔다. 올해 직장인 평균 점심값은 6007원(잡코리아 조사)으로 지난 3년 사이 13% 이상 올랐다.

인근 기업체 직원이라는 김모(37)씨 일행은 "전부터 다니던 구내식당이 외부인 출입을 제한한 뒤로 이곳으로 넘어 왔다"며 "'점심값 아껴보자'는 생각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여기서 해결한다"고 했다.

봉은사 측은 "전체 이용자들 중에 외부인이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며 "일부러 홍보를 하지는 않지만 아시는 분들이 찾아 오시고, 또 이분들이 불편함 없이 식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점심시간 봉은사를 찾는 외부인들 중에는 김씨 같은 직장인부터 인근 주민,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노인들처럼 이곳 신도나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 싼 값에 한끼 식사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다.

"몇년째 이곳에서 끼니를 떼운다"는 퀵서비스 기사 김모(47)씨는 "인근 식당에 가면 적어도 6000원은 줘야 먹는다"며 "교통비나 생활비는 줄일 수 없기 때문에 밥값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했다.

멀리 분당에서 일주일에 2번씩 찾는다는 김모(65)씨는 "이 절에 다니지는 않지만 불자"라며 "소일거리 삼아 한 번씩 나오는데 요즘 사람이 많아져서 기다리는 시간도 늘었다"고 했다.

늘어나는 외부인들 탓에 상당 시간 줄을 서야 하는 신도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만도 하지만 봉은사 측은 "일손이 달려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베푼다는 생각으로 거부감 없이 식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명희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봉은 사무국장은 "점심을 무료로 개방해오다가 2006년부터 사회환원의 취지로 1000원씩 받게 됐다"며 "수익금 전액이 사회복지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는 만큼 보시(布施)의 개념으로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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