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파트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2012. 9. 18. 08:36부동산 정보 자료실

한국 아파트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빚 내서 아파트 사던 '투기시대' 저물었다
■ 한국식 '부동산 관행' 변화 바람
실수요 소형 선호 늘면서 중대형 가격·거래 급감
'보증금 밑천' 또다른 집 사던 전세는 점차 월세로
임대료 보조금 등 주거 약자에 대한 지원책 절실
한국일보 | 배성재기자 | 입력 2012.09.18 02:35 | 수정 2012.09.18 06:57

 

#. 서울 관악구 신림동 105.6㎡ 전세 아파트에 사는 성모(37)씨. 9월 초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에게서 전세보증금을 2억원에서 5,000만원 더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성씨는 목돈이 없어 오른 전세보증금만큼 월세(32만원)를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집주인은 1부 이자를 적용해 월세 50만원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성씨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계약을 했다.

#. 주부 김모(54)씨는 2008년 6월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2단지 53.6㎡ 아파트를 실거주와 투자를 겸해 8억8,000만원에 구입했다. 재건축 기대감을 타고 9억원까지 올랐던 아파트는 곧바로 들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다 재건축 소형평형 의무비율 확대 정책의 직격탄을 맞아 급락했다. 현재 7억원대 급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거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경제개발 시대 돌입 이후 수십 년 간 투기 동기에 의해 움직여왔다. 지은 지 오래된 낡은 아파트일수록 재건축 수익 기대감으로 새 아파트보다 비싼 게 대표적인 현상이다. 단위당 건축비가 많이 드는 소형 아파트가 대형보다 더 싸고, 수익률이 낮은 전세가 월세를 압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주택시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투기동기에서 경제원리로 정상화

우선 올 들어 8월까지 입주 30년 이상 된 아파트들의 가격 하락률이 입주 기간이 짧은 아파트보다 더 컸다. 또 3.3㎡당 건축비가 더 비싼 소형 아파트 가격이 중대형보다 강세였다. 내장재와 인테리어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3.3㎡당 아파트 건축비는 전용면적 60㎡가 대략 340만원이고 전용면적 112㎡는 320만원이다. 그간 대형 아파트의 평당 가격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소형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그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85㎡ 이상 중대형 아파트의 3.3㎡당 가격은 2010년 1월 1,176만원에서 2012년 1월 1,137만원으로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60㎡∼85㎡는 847만원에서 873만원, 60㎡ 이하는 703만원에서 751만원으로 상승했다.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수요가 집중됐던 대형아파트 거래량도 중소형에 비해 줄어드는 추세다. 85㎡ 이상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10만7,798가구에서 올 들어 7월까지 3만8,850가구로 급감했다. 지난해 총 거래물량의 35.7%수준이다. 반면 85㎡ 이하 중소형은 같은 기간 59만6,505가구에서 23만280가구로 감소해 지난해의 38.6% 수준이었다.

집값 상승기에 전세보증금을 밑천 삼아 또 다른 주택을 구입하면서 주택시장의 변동성을 키웠던 전세 제도도 점차 월세로 바뀌고 있다. 집값 하락이 이어지면서 주인들이 연 3∼4% 이율의 전세보증금보다는 수익률이 연 7∼8%에 이르는 보증부 월세(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는 순수월세는 제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서민층 주거 부담 경감대책 필요

투기가 판을 치던 국내 주택시장이 경제원리가 작동하는 곳으로 급변한 데는 금융위기 이후 주택에 대한 개념이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바뀐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투기적 주택시장이 정상으로 회복되면서 새로운 문제들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과도하게 빚을 내 집을 산 뒤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하우스푸어의 급증이다. 여당은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공적 매입 뒤 임대전환'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는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추진하면 모를까 공적자금을 사용할 일은 아니다"라며 선을 긋고 있다.

전세 대신 월세 시장이 커지면서 세입자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집 주인 입장에선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수익이 늘어나지만, 이는 세입자들에 대한 비용 전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부 자료를 보면 전체 임대차 주택 중 전세 비율은 지난해 수도권 69.9%, 서울 68.1%, 지방 61.2%에서 올해 7월 각각 69.1%, 66.7%, 60.0%로 떨어졌다. 특히 서울 아파트 중 전세 비율은 지난해 81.7%에서 올 7월 78.1%로 3.6% 급락했다.

월세 비율이 급증하면서 저소득층의 주거비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전국 2인 이상 가구 기준 소득 하위 20%의 소비지출 중 월세를 포함한 주거임대료와 수도ㆍ광열 비용은 2008년 14.94%에서 지난해 16.45%로 상승했다. 이는 2003년 이후 최고치다. 전ㆍ월세 가격이 오르면서 가계 총 지출 중 주거비 비중인 슈바베 계수도 2007년 9.71%에서 지난해 10.15%로 올라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집 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 비용을 전가하지 않도록 막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지만 교육 등의 문제로 임대주택에 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며 "따라서 서민 등 주거 빈곤층에게 주택바우처를 지원하고 재정 여력이 있다면 월세 직접 지원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도 "임대료 보조금을 점차 늘리는 등 주거 약자를 위한 대책을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월세 세입자들에게 주택바우처 제도를 포함해 임대료 보조금 지원대책을 검토할 단계는 됐지만 월세 직접 지원은 재정 형편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