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가계부채' 경제성장 고리도 끊었다

2012. 10. 22. 09:04카테고리 없음

<`눈덩이 가계부채' 경제성장 고리도 끊었다>③

"가계 빚이 민간소비 위축에 미치는 영향 최악" 연합뉴스 | 입력 2012.10.22 04:57

 

"가계 빚이 민간소비 위축에 미치는 영향 최악"

(서울=연합뉴스) 금융팀 = 강북 지역의 세입자 김성수(가명ㆍ40)씨는 태어난 지 채 1년도 안 된 외아들을 볼 때마다 심란하다.

요즘에는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신용불량자(채무불이행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에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 게 벌써 6개월째다.

김씨는 3년 전 늦깎이 장가를 갔다. 재산을 불려 번듯한 가정을 꾸려보려고 은행 대출과 전세를 껴 아파트를 마련하고서 다른 곳에 전셋집을 얻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받은 주택담보대출이 화근이 됐다. 조금만 기다리면 반등할 줄로 기대했던 집값이 줄곧 곤두박질 친 것이다.

지난해 임신한 아내가 육아에 전념하겠다며 직장을 그만두자 김씨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집을 팔아 빚을 갚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은 팔리지 않았다. 시세는 2억1천만원이라지만 거래가 되지 않는 시세는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했다. 2억원 밑으로 내놔도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다.

김씨 월급에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150만원을 내면 통장에는 달랑 50만원이 남는다. 생활비와 육아비를 대는 데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아내와의 사이가 불편해졌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은행빚을 갚는 건 고사하고 카드빚만 어느새 1천만원 넘게 쌓였다.

김씨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금융복지상담센터로 가봤다. 상담사는 더 싸게라도 집을 팔도록 권했지만, 대출금도 건지지 못하는 값에 선뜻 집을 내놓을 순 없었다.

지난 7월 문을 연 금융복지상담센터에는 3개월 만에 378명이 찾아왔다. 이 가운데 약 절반은 김씨 같은 `하우스푸어'라고 한다.

김씨의 상담원은 22일 "재무 컨설팅으로 빚을 조정할 방법을 찾아보지만, 근본적으로 집이 팔리지 않고선 해결이 안 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월세 20만원짜리 단칸방에 사는 이수연(가명ㆍ70)씨 사연은 하우스푸어 문제가 전ㆍ월세 보증금마저 건지지 못하는 `렌트푸어'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씨는 3년 전 재건축 호재가 있다는 말에 3억5천만원을 대출받아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를 샀다가 매월 200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견디지 못하고 월세로 주저앉았다.

살던 아파트는 전세로 내놓았으나 이씨 부부가 은행 이자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안 세입자는 방을 뺄 테니 보증금을 내놓으라고 독촉했다.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찾은 이씨는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내어 주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하우스푸어 현상은 어느새 일반화해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가정을 잠식하고 있다.

22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09.6%로 1년 전보다 6.2%포인트 높아졌다.

세금, 보험료 등 비소비성 지출을 제외하고 소비할 수 있는 돈보다 금융권에 진 빚이 더 많다는 뜻이다.

근로자가구의 이자비용이 처분가능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2분기 3.0%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3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자 부담이 커지면 하우스푸어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언젠가는 집값이 올라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기대와 자칫하다간 자신과 가족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질 수 있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건국대 하지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하우스푸어는 대출을 갚지 못해 먼저 나락으로 떨어진 주변 사람을 보고 더 큰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고 진단했다.

하 교수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이런 심리적 압박은 이혼, 범죄 등 사회 불안으로 비화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나아가 `소비→투자→고용→소득→소비'로 순환하는 경제성장의 근본을 갉아먹는 탓에 더 많은 하우스푸어를 양산할 수도 있다.

이런 징조는 가계부채 규모의 증가와 경기 둔화가 맞물린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했다.

2004~2006년 해마다 2%를 넘던 근로자가구 소비지출 증가율은 2009년 -1.47%로 낮아졌다. 2010년에는 기저효과로 반짝 증가했으나 지난해 0.83%로 주저앉았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가계부채가 민간소비 위축에 미치는 영향을 5단계로 나누면 가장 마지막 단계인 `최악'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도 "소득 감소와 가계부채 증가로 소비가 부진의 늪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소비가 위축되다 보니 투자와 고용이 좋을 리 없다. 투자 수요를 보여주는 `설비투자 조정압력'은 -1.8%포인트로 3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민정 연구위원은 "투자 부진으로 고용창출 능력이 약해졌다"며 "올해 2분기에 투자 부진 탓에 일자리 5만6천개가 덜 생겼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