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결혼한 억만장자 유튜브 창업자

2013. 3. 31. 21:37C.E.O 경영 자료

한국인과 결혼한 억만장자 유튜브 창업자

  • 류현정 기자
  • 조선비즈 입력 : 2013.03.31 08:13

    "한국벤처, 세계로 나가라" 조언

    스티브 첸 유튜브 공동창업자/조선일보 DB

    “20대에게 조언을 부탁드려요.”
    “저도 20대에서 갓 벗어났는 데 무슨 조언을….”

    스티브 첸(Steve Chen,35) 유튜브 공동 창업자가 질문에 답변을 내놓지 않고 겸연쩍은 듯 활짝 웃는다. 지난 26일, 27일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아시안리더십 콘퍼런스 현장. 연사로 나선 첸 창업자에게 청중이 질문을 쏟아냈다.

    첸 창업자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5번째. 빳빳하고 짙은 머리칼에 제법 어울리는 구렛나루를 기르고 공식 무대에 나타났다.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면, 입이 귀에 걸릴 듯 시원스럽게 웃고 본다.

    따져보니, 그가 대박을 터뜨린 전자결제업체 페이팔에 합류할 때 나이가 불과 열아홉이었다. 페이스북 초기 20명 임직원 중 한명이었다가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를 창업해 구글에 매각했을 때는 스물여섯이었다. 서른 즈음엔 2009년 유튜브 CTO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서른 셋인 2011년엔 아보스(Avos)라는 또다른 벤처를 만들었다. 그가 ‘20대였을 때’라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는 시점은 고작 5년뿐이다. 첸 창업자는 ‘20달 만에 2조원’이라는 수식어를 싫어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는 채드 헐리와 유튜브를 공동 창업한 지 1년 남짓만인 지난 2006년, 구글에 1억6000만 달러, 우리 돈 약 2조원을 받고 회사를 매각했다.

    ―평소 검소하게 산다고 들었다. 10만원 이상 물건이면 잘 쳐다보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럴러면 왜 억만장자가 됐나.

    첸 창업자는 구글코리아에서 근무한 한국인 박지현씨와 결혼했다. 27일 그를 기다리다 그의 한국인 가족도 만났다. 가족들이 한 말이 떠올라 첫 질문을 그렇게 했다. 첸 창업자는 또 웃고 본다.

    “글쎄(웃음). 돈을 쓸 때는 쓴다. 작심하고 돈을 낭비한 적도 있다. 나도 실리콘밸리에 왔을 때 늘 의문스러웠다. 넷스케이프 창업자인 맥스 레브친(Max Levchin), 페이팔 창업자 겸 의장이었던 피터 시엘(Peter Thiel) 등은 정말 부자인데도 왜 볼품없는 사무실에 머무르며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할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창조한다는 것 때문에 밤을 새운다. 그것이 '헌신'의 비밀이다. 그런 열정이 돈을 벌게 해줬을 뿐이다.”

    ―일리노이대 4학년 재학 중일 때 실리콘밸리로 허겁지겁 왔다. 졸업도 하지 않고 기거할 곳도 없는 곳으로 왜 달려갔나. 당시 나이 19세였다.

    “당시 페이팔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레브친이 대학교 선배였다. 인터넷 채팅 프로그램으로 15분 정도 나를 면접했다. 캘리포니아로 와서 일해 달라고 했다. 몇 달 있으면 졸업이었지만, 당장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에 다음 주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표를 사고 말았다. 더할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리노이대 공대도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만큼 유명하다.

    “미국(시카고 인근)에 살았지만, 실리콘밸리에 도착했을 때 풍경은 정말 경이로웠다. 말로만 듣던 선마이크로시스템, 인텔, 오라클 등 기술 분야 최고 기업들이 몇 마일 간격으로 즐비했다. 스타벅스 커피숍에선 늘 아이디어를 묻고 나누는 기업가와 엔지니어로 넘쳐났다. 일리노이대 총장께도 미안한 말이지만, 시카고에서도 이런 환경을 쉽게 복제하기 어렵다. 일종의 '폴아웃 효과(fallout effect)'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폴 아웃 효과?. 인터뷰가 끝나고 이 단어부터 찾아봤다. 낙진. 뜻밖의 부수효과. 주로 화산 폭발이나 핵폭발 등으로 주변에 떨어지는 가루를 일컫는다. 원자력 전문가한테 물었다. "핵폭발 후 낙진 때문에 해당 지역 말고 다른 지역이 1차 2차 영향을 받지요."

    실리콘밸리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그는 왜 낙진 효과라는 말을 썼을까. 결국 한국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스티브 첸 창업자에게 이메일로 다시 물었다.

    ―실리콘밸리의 폴아웃 효과란 무슨 뜻인가.

    하루 만에 답장이 왔다. 인터뷰를 할 때도, 짧지 않은 이메일 답변을 받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대화할 때 사진 한장 찍을 때도 나름대로 진지함을 다했다. 더러 깊은 고민도 묻어났다. 유튜브로 인생의 절정을 맛볼 때 암(뇌종양)이 발견됐던 역설적인 상황을 겪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타고난 본성 덕분일까. (첸 창업자는 29살 생일을 앞두고 3센티미터 종양이 발견됐다. 1년 동안 약물을 복용하다 수술했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피곤하면 하루 이상 푹 자 줘야 한다. 가족들의 말이다. )

    “인터넷 기업만 보더라도 그렇다. 1990년대 말 넷스케이프와 야후가 탄생한다. 이들의 폭발적인 성공은 폴아웃 효과의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했다. 구글, 이베이, 페이스북 등 밀려오는 다음 파도가 치고 나가는 발사대(launch pad)가 돼 줬다는 의미다. 그저 브라우저를 소개하거나(넷스케이프) 인터넷 디렉터리를 안내한 것(야후) 이상의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가 유튜브를 시작했을 때도 환경을 봐도 실리콘밸리는 달랐다. 세쿼이아캐피탈이라는 벤처캐피탈과 실리콘밸리 뱅크가 자금줄 역할을 했다. 법률을 자문해주는 윌슨앤손시니가 있었고 유튜브를 제값에 사준 구글이 있었다. 전직 페이팔 동료는 유튜브 서비스를 안착시킨 든든한 엔지니어로 우군이 돼 있었다.

    야후의 제리 양과 테리 시멜, 구글의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와 유튜브 매각 협상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전화 한 통화에 차로 몇 분 되지도 않는 자리에서 만나 얘기했다. 카페 테이블에선 새로운 아이디어와 벤처 창업에 관한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이런 환경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It is not built over night).”


    유튜브 창업자인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 첸 창업자는 실리콘밸리의 풍부한 자양분 덕분에 유튜브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DB


    실리콘밸리의 첫 벤처기업은 스탠퍼드대학 동문인 빌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만든 HP. 두 명의 엔지니어가 차고를 빌려 음향발진기를 발명에 성공한 것이 1939년이다. 그 이후 숱한 기업들이 '핵폭발'에 가까운 성공을 일궜고 저마다 엄청난 에너지의 부수 효과를 낳았다. 정부 지원금 몇 푼으로 실리콘밸리를 단숨에 따라잡겠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란 것을 알았다. 그래도 물었다.

    ―한국에도 자주 오고, 중국 방문도 잦다. 실리콘밸리와 비교해보면 어떤가.

    “한국은 혁신적인 서비스들이 많이 나온다. 한국 방문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다만, 한국 벤처들이 한국에서만 승부를 보려는 점이 아쉽다. 중국은 조금 다르다. 요즘 베이징에 가면 카페에서 아이디어를 나누는 기업가와 엔지니어를 본다. 매년 그 에너지가 다르다. 아마도 검색업체 바이두,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 구글차이나 등 성공기업이 폴아웃 효과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과 결혼했다.

    “여기서(서울) 만났다. 2008년 1월 유튜브코리아가 설립됐고 3월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안내를 제이미(박지현)가 맡았다. 만난 지 3일 만에 나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남들은 오래 생각해서 판단하는 일을 빨리 결정하는 편이다. 뇌종양 수술을 계속 미룬 것 말고는 첫 주택 구매도, 창업도, 인수합병도, 결혼도 결정을 마무리하는 데 일주일이면 족했다.

    스티브 첸 창업자는 구글코리아 직원이었던 박지현씨와 결혼했다. 박씨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뮤지엄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후에도 구글에서 계속 일하다가 2009년 구글을 떠났다.

    “수술 받고 나서 인생을 깊이 고민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또 다른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었다. 유튜브에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 유튜브 공동 창업자인 채드와 아보스를 창업했다. 그런데 구글을 떠났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구글의 투자회사인 구글 벤처스가 아보스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창업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부모가 되고 보니 내 두 아이에게 창업의 길을 가라고 권유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다.”

    아보스는 수많은 정보와 동영상 중에서 사용자들에게 꼭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야후가 북마크업체 딜리셔스를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첸 창업자는 제리 양(Jerry Yang)에게 전화를 걸어 일사천리로 딜리셔스를 인수했다. 제리 양은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은 어떻게 지내나.

    “두 달에 한번 즈음은 만나는데,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더라. 10년 전 그는 인터넷의 상징이었다. 또 그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면 꽤 가까운 사이 아닌가.

    “실리콘밸리에선 늘 일어나는 일이다. 여러 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자주 마주한다.”

    ―그렇다면, ‘페이팔 마피아’들은 무엇을 하나.

    페이팔 마피아는 페이팔 창업 초기 멤버들을 말한다. 스티브 첸의 전 직장 동료인 셈이다. 이들은 유튜브, 링크드인, 슬라이드, 옐프 등을 창업하거나 초기 자금을 댔고 페이스북, 디그, 프렌즈터 등등에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걸 두고 미국 잡지 포천은 '페이팔 마피아'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굳이 물을 필요가 있나. 그들 역시 또 창업했다. 그게 실리콘밸리 맨이다.”

    ―페이팔에 합류했을 때, 유튜브를 창업했을 때, 또 지금 아보스를 창업했을 때 어떻게 각각 다른가.

    “매 순간이 다르다. 19살일 때 페이팔에 왔을 때 실리콘밸리란 나에게 전혀 새로운 동네였다. 유튜브 시절엔 회사 사장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35시간 연속 일하고 일주일에 100시간 근무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은 훨씬 여유가 있다. 두 아이와 최근 설립한 중국 법인 등 여러 다른 일이 함께 머릿속에 맴돈다.”

    스티브 첸은 대만에서 태어났지만, 증조부는 상하이 사람이다. 아버지는 늘 “대만 사람이 아니라 중국 상하이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고 가르쳤다. 첸은 8살부터는 미국에서 쭉 살았고 한국인 아내를 맞이했다. 그에겐 “당신이 어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 이젠 그는 실리콘밸리맨이라고 답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