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5 新중년] [5 · 1부 끝] 은행장 퇴직後 농사, 주부는 미술해설 도전… "내 정년은 내가 정한다"

2013. 9. 20. 20:42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6075 新중년] [5 · 1부 끝] 은행장 퇴직後 농사, 주부는 미술해설 도전… "내 정년은 내가 정한다"

 

 

 

[新중년 10인 "지금도 거뜬"]

-우린 80代까지 일할 수 있다

일 자체를 여가·행복으로 여겨… 조깅·헬스로 꾸준히 체력 단련

-우린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

"新중년들이 더 일하지 않으면 지금 일하는 세대의 부담 커져"

조선일보

농부가 된 전직 은행장과 미술 작품 해설가로 변신한 주부. 출신과 현재 하는 일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지만 눈코 뜰 새 없이 살아가는 신중년이라는 점은 닮았다. 큰 사진은 농부로 변신해 자신이 수확한 농산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김정태(66) 전 국민은행장. 김 전 행장은 경기도 일산에서 6600㎡ 규모로 3개의 농장을 운영 중이다. 작은사진은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 있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관람객들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권길자(70·주부)씨. /채승우·김영근 기자

"요즘은 아침 5시 반에 읽어나 닭 모이를 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늙어서 할 일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현직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바쁘다."(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일주일에 3~4일은 달리기, 훌라후프, 자전거 타기를 한다. 75세까지는 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주부 권길자·전북 완주의 도립미술관 작품 해설가로 활동)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신중년(60~75세)들은 스스로에 대해 "나는 더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본지가 전직 장관·은행장, 연기자, 주부 등 각계각층의 신중년 10인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한 결과, 신중년 10명 중 7명은 80세 이상까지 일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했고, 나머지 2명은 75세, 1명은 70세까지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인터뷰에 응한 신중년 10명은 모두 조깅과 헬스클럽, 자전거 등을 통해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하고 있었다.

◇"80대까지 충분히 일할 수 있다"

2004년 국민은행장에서 퇴임한 김정태 전 행장은 경기도 일산에서 농사꾼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는 "요즘은 가을 무·배추를 기르고, 아욱·상추 농사까지 짓느라 바쁘다. 농사일이라는 것이 계절마다 일이 다르고, 매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밤낮 없이 일했던 그는 농사꾼이 돼서도 그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농사일에 정년이 있나, 할 수 있을 때까지 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교직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김대찬(75·경기도 분당)씨는 지난 3년간 독거노인 음식 배달을 했고, 1년 반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환자를 안내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요즘은 보통 사람도 80대 초반까지는 거뜬히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나도 하루 3시간씩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능 프로 '꽃보다 할배'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탤런트 백일섭(69)씨는 "연기는 답이 없다. 답이 없는 연기는 죽을 때가 돼야 놓을 수 있다. 못해도 이순재(78)씨 하는 만큼은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사회·경제 분야에서 리더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신중년들이 뭔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가까운 사명감을 갖고 있다.

지난 2월 퇴임한 김석동(60) 전 금융위원장은 "국가가 복지 혜택으로 급증하는 노인의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국민도 80세까지는 일하겠다고 맘먹어야 하고, 국가도 노인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봉균(70)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일을 더 하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지금 일하는 세대의 부담이 점점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나이보다 10년은 젊다고 생각하는 신중년, '꼰대' 옷은 입기 싫어

신중년들은 외모와 체력 등 모든 면에서 현재 60~75세들이 과거보다 10년 정도 더 젊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외모를 가꿀 때 실제 나이에서 10년을 빼서 계산한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있다가 법무법인 세종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황영기(61) 고문은 갖고 있던 옷을 모두 수선했다. 몸에 딱 맞게 바지통을 좁히고, 상의도 품을 줄였다. 황 고문은 "젊은 사람들을 보면 딱 달라붙게 입는 게 유행인 것 같아, 시류에 뒤떨어지지 않게 옷을 고쳤다"고 말했다. 백일섭씨는 "나이가 더 들어도 '꼰대' 옷은 못 입겠다"고 말했다. 주부 김인자(61)씨는 "가끔 며느리가 내 옷이 정말 예쁘다면서 어디서 샀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얼마 전 70대, 60대 중후반 되시는 분들과 골프를 했는데, 이제 갓 60이 된 내가 거리가 가장 짧아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만 하던 신중년, 은퇴 후에도 여가·취미생활엔 익숙하지 않아

신중년에게선 평생 일에 몸 바쳐온 '프로'의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다른 한편으론 여가와 취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야구 외에 다른 취미나 여가는 없다. 야구만 생각할 것이다"(김성근 감독), "여가를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75세까지는 현역처럼 뛸 것이다" (강창희 미래와금융연구포럼 대표), "일 끝나고 술 한잔씩 하는 것 외엔 특별한 여가 생활이 없다"(백일섭씨),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나 온천 정도를 찾는 것으로 만족한다"(김대찬씨).

신중년에겐 대체로 결국 일이 여가이고, 일이 행복이다. 이런 말들은 역설적으로 신중년에게 얼마나 일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경제부=이인열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