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前직원 "양적완화 월가만 배불려…국민에겐 미안"…파문

2013. 11. 13. 21:56C.E.O 경영 자료

연준 前직원 "양적완화 월가만 배불려…국민에겐 미안"…파문

  • 김남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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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비즈 2013.11.13 16:49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직 관리 앤드루 후스자르(Andrew Huszar)/러트거스대 경영대학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직 관리 앤드루 후스자르(Andrew Huszar)/러트거스대 경영대학원

    “미안합니다. 국민에게는 이 말밖에 할 게 없군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전직 관리가 ‘양심 선언문’을 11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했다. 그는 연준의 1차 양적 완화(통화 팽창) 정책을 실행한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파문도 크다. 그는 기고문에서 연준의 양적 완화 정책이 당초 경기 부양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실행 과정에서 미 경제 전반에 도움은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스트리트(월가) 은행들만 막대한 득을 봤다고 했다. 그리고 몇차례나 미국민에게 사과한다고 썼다.

    미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후 5년간 4조달러(약 4000조원)가 넘는 돈을 쏟아붓는 양적 완화 정책을 펴왔다. 최근에는 이 정책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출구전략 시기를 두고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이 와중에 자칭 ‘양적 완화 집행자’라는 인물이 양적 완화 무용론을 들고 나오자 논란이 불붙었다.

    사과문의 필자는 앤드루 후스자르(Andrew Huszar) 현 러트거스대 경영대학원 선임연구원. 그는 ‘양적완화론자의 고백’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연준의 전 관리로서, 나는 양적 완화라고 알려진 채권 매입 실험의 1차 프로그램 실행을 맡았다”며 “연준은 미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도구로 지금도 양적 완화 정책을 이어가고 있지만, 실제로는 양적 완화 프로그램은 월가를 구제하는 역대 최대 구제금융일 뿐”이라고 썼다.

    후스자르는 2008년 초까지 7년간 연준에서 일했다. 그 후 월가 투자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1년여 만에 다시 연준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 2009~2010년 사이 1년간 연준의 1조2500억달러 규모 모기지담보증권(MBS) 매입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그 후 다시 월가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에서 파생상품 분야를 담당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블룸버그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블룸버그

    ◆ “양적 완화는 월가 은행 구제금융일 뿐”

    그는 1차 양적 완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과정까지 얘기했다. 5년 전인 2008년 11월, 연준은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례 없는 돈 풀기 계획을 밝혔다. 이미 의회가 금융 시스템 마비를 막기 위해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이란 법안을 통과시킨 후였다. 하지만 연준은 미국민이 겪게 된 경제적 고통이 심해지자 새로운 대규모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돕겠다고 나섰다.

    후스자르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연준이 새로운 통화 정책을 도입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가계와 기업의 신용거래 비용을 낮춰 경제 침체로 고통받는 미국민들의 신용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버냉키 의장은 당초 이 프로그램을 ‘신용 완화’라고 불렀다”고 썼다.

    후스자르가 연준의 호출을 받은 것은 2009년 봄. 12개월간 1조2500억달러 규모의 MBS를 사들이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운영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후스자르는 “연준과 월가의 유착이 깊어지면서 연준의 독립성이 약화되고 있다고 느껴 연준을 떠났기 때문에 처음엔 제의를 받고 망설였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연준 고위 관리들이 월가 개혁을 호언장담했기 때문에 결국 다시 연준으로 돌아갔다”고 썼다.

    그는 곧 채권 매입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의도와는 달리 일반 국민이 신용대출을 받기가 쉬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은행들은 대출을 더 줄였다는 것.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비용도 싸지지 않았다. 은행들이 대출해주기 위해 드는 원가는 낮아졌지만,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내리지 않고 비용 감축으로 생긴 현금을 자기 주머니에 챙겼다.

    후스자르는 연준 내 일부 다른 관리들도 양적 완화 정책이 계획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으나 무시당했다고 했다. 연준 지도부가 신경 쓴 건 금융시장 개선에 대한 설문조사나 월가 고위 임원들의 개인적인 피드백뿐이었다고 했다.

    후스자르가 지휘한 1차 채권 매입 프로그램은 2010년 3월 말 끝났다. 후스자르는 “1년간 미국 경제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지만, 월가 은행들은 큰 이득을 봤다”고 주장했다. 대출 비용 원가가 낮아진 데 더해 자산 가격 상승으로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연준의 채권 매입 트레이딩을 맡아 수수료를 받은 것도 월가 은행들이었다.

    1차 양적 완화 시행 후에도 경기 침체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연준은 8개월 만인 2010년 11월 6000억달러짜리 2차 양적 완화 프로그램에 돌입했다. 후스자르는 “이때 나는 연준이 월가에서 떨어져 독립적으로 생각을 능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다시 떠났다”고 썼다.

    ◆ ‘양심 고백’에 대한 반응은 “별로”

    후스자르의 기고문을 두고 미국내에서는 곧바로 찬반론이 일었다. 온라인 경제매체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후스자르의 주장에 대해 “말이 안 된다”고 깎아내렸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우선 후스자르가 경제학자도 아니고 양적 완화 정책 입안에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가 단지 채권 매입 트레이더였을 뿐이라는 것.

    양적 완화 정책이 월가가 아닌 미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후스자르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고용 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인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만 보더라도 2009년 초 정점을 찍은 후 빠르게 감소했다는 것.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은행 대출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며 은행들이 양적 완화 시행 후에도 대출을 꺼렸다는 후스자르의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양적 완화 정책이 은행들을 위한 구제금융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009년 당시 연준이 양적 완화를 계획한 이유 중 하나가 무너져가는 금융 시스템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단 점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인 캐롤라인 바움은 “연준은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통화 부양 효과를 경제 전반으로 퍼뜨리기 위해 자산 매입 프로그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며 양적 완화 정책을 옹호했다. 그는 “후스자르는 연준의 (1차) 채권 매입 지휘자라는 자리를 ‘꿈에 그리던 직업’이라고 썼는데, 그럼 과연 그가 꿈의 직업을 갖기 전 연준에서 일했던 시간 동안에는 (미국 경제를 위해) 뭘 했느냐”고 반문했다.

    마켓워치는 “양적 완화 정책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후스자르의 고백에 대해 찬성한다는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 트위터 사용자는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자신을 미화한 트레이더(후스자르)가 아니라 경제학자에게 물어라’라고 썼다”고 전했다.

    시사지 애틀랜틱의 맷 오브라이언도 트위터를 통해 “(후스자르의 글은) 어리석고 논거도 없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