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문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 멘토가 답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다. 복잡한 수식은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이 어려우니, 사진으로 찍어 답변을 구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간단한 아이디어였지만, 수학 문제를 풀다 막힌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 서비스는 지난 2월 네이버 ‘지식인’에 등록된 수학 질문 건수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반전은 빨리 일어났다. 비슷한 서비스가 나타난 것이다. 유사 서비스는 그것도 모자라 무료로 배포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낸 서비스의 수익이 악화됐음은 물론이다. 국내 스타트업 아이엔컴바인이 개발한 스마트폰용 응용프로그램(앱) ‘바로풀기’가 처음 시장에 등장한 민간 앱이고, 서울시교육청이 배포한 ‘꿀박사’가 나중에 등장한 앱이다.
“공공 영역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나눠주는 것이 대표적인 정부 실패 사례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타살행위’죠. 더 위험한 것은 공무원들이 이런 일에 죄의식이 없다는 겁니다. ‘국민을 위해 무료로 만들어 주겠다는 데 왜 비판하느냐’는 식이죠.”
구글코리아가 5월22일 개최한 ‘더 나은 웹’ 컨퍼런스에서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진형 소장은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에서 공공의 역할’을 주제로 연단에 올랐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산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정부와 공공의 역할을 생각해보자는 내용이다. 김진형 소장은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부와 공공기업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무료로 나눠주는 일,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보통 정부가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배포하는 만큼 처음에는 환영하는 분위기도 조성된다. 헌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부가 무료로 서비스를 지원하는 통에 정정당당히 경쟁해야 할 시장에 교란이 오는 것이다. 체력을 길러야 하는 민간 업체는 정부의 개입 탓에 고사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에 기술의 방점이 찍힌 지금, 정부와 공공영역의 역할은 무엇일까.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대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 아닐까.
‘바로풀기’와 ‘꿀박사’ 사례 외에도 소프트웨어 시장에 정부가 직접 개입한 사례는 많다.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시장 전체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정인모 아이컴퍼니 대표도 정부의 직접 개입으로 피해를 본 인물이다. 아이컴퍼니는 ‘아이엠스쿨’ 앱을 개발했다. 학교가 학부모에게 전해야 하는 사항을 스마트폰을 볼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스마트폰용 가정통신문 서비스다. 1600여개 학교가 이 앱을 쓰기 시작한 만큼 교육 현장에서 사업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헌데 서울시교육청이 이와 유사한 ‘학교쏙’ 앱을 만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 ‘학교쏙’ 앱을 쓰라는 권고사항을 내렸다. 아이컴퍼니는 정부가 만든 서비스 때문에 제대로 된 사업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됐다.
김진형 소장은 “정부는 민간이 잘 가꾸고 있는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라며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 정부와 공공의 역할이지, 시장에 개입해 이를 망치는 것은 오히려 정부 실패”라고 꼬집었다.
최근 국토교통부도 ‘V월드’라는 지도 서비스를 내놨다. 3차원 공간정보를 활용한 공간정보플랫폼인데, 민간업체에서 서비스 중인 지도 서비스가 위축될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민간 업체가 ‘V월드’를 활용해 다른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여의치 않다. 국토교통부는 ‘V월드’의 핵심 정보를 단편적인 응용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을 뿐, 데이터를 공개할 계획은 없는 탓이다.
김진형 소장은 “지금 네이버랑 다음이 지도 서비스 잘하고 있는데 왜 정부가 나서서 공간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정부의 역할은 공간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일이지, 직접 응용분야에 뛰어들어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김진형 소장은 “현재 ‘공간정보산업진흥원’을 구성하는 등 산하기관을 만드는 것을 뼈대로 한 입법이 국회 올라가 있는 상황”이라며 “혹시 공무원의 퇴직 후 일자리 보전을 위한 것은 아닌가 의심될 정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정부개입이 만들어내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명백하다. 정부와 공공기관 혹은 공기업 산하기관의 직접 시장개입을 줄이는 일이다. 대신 민간 업체가 자유롭게 응용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필요한 데이터를 공개하는 일이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진출이 오히려 ‘창조경제’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김진형 소장은 주장했다.
김진형 소장은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심의위원회를 꾸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며 “필요하다면, 이 같은 상황을 방지할 수 있도록 규제를 입법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