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한 옥외 피난계단…학생안전 위협

2014. 5. 30. 21:22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있으나 마나 한 옥외 피난계단…학생안전 위협

 

서울 충암중·고 안전불감… 곳곳에 균열 금방 무너질 듯

3학년생 570여명 안전 위협… 방화셔터·스프링클러 없어

“이 계단은 안전상 문제가 있어 2층 통로만 열어놓았습니다. 여름에 보강공사를 할 건데 계단까지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30일 서울 은평구 충암고 별관. 학교 관계자의 안내로 건물 옥외 피난계단 안팎을 둘러보니 벽돌 위 시멘트가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이런 건물에서 3학년 학생 570여명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세계일보

서울 충암고 별관 옥외 피난계단. 시멘트가 떨어져나가고 곳곳이 균열돼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학교 관계자는 “우리가 봐도 심각한 상황”이라며 “원칙대로라면 피난계단을 개방해야 하지만, 계단이 있는 쪽으로 지반침하가 진행되고 있어 학생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막아놓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피난계단이 도리어 학생안전을 위협하는 꼴이었다.

이 건물에는 방화셔터와 스프링클러도 없다. 1965년 준공검사를 받을 당시 소방법에 방화셔터를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었던 데다 일단 검사를 통과하면 관련법이 강화되더라도 이를 따를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1, 2학년들이 쓰는 본관은 옥외 피난계단을 완전히 폐쇄해 급식용 엘리베이터를 만들었다가 문제가 되자 뒤늦게 피난계단을 추가 설치했다.

별관에 인접한 충암중학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설계 당시 1층 현관이었던 곳은 재단 관계자의 사무실로 개조돼 주 출입구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건물 뒤편 2층 높이와 비슷한 운동장 쪽으로 만든 출입문이 현관을 대신하고 있었다. 본관 옆 유치원 건물은 지어진 지 40년이 지나도록 안전진단 한 번 받은 적 없다.

있으나 마나 한 피난계단, 이해하기 어려운 건물 개조, 전반적인 시설 노후화 등이 세월호와 판박이인 셈이다. 이 학교가 이 지경이 된 이유도 세월호와 비슷하다.

충암 유치원과 중학교, 고교 재단인 충암학원은 2011년 서울시교육청 감사에서 하자검사 미실시, 공사서류 허위작성, 준공검사 소홀 등이 적발돼 이사회 임원 전원(8명)의 이사 취임승인 취소 의견이 내려졌다. 현행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의결정족수(충암의 경우 5명) 이상의 임원이 해임되면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임시이사를 파견한다. 그러나 이후 청문회 등의 과정에서 이사장 1명만 해임하는 것으로 처분 수위가 대폭 낮아졌고, 그래서 현재 충암학원의 이사장은 임시이사가 아닌 전 이사장의 차녀가 맡고 있다. 충암학원의 재단전입금은 2010∼2012학년도 3년 간 3700만원(충암고 기준)으로 같은 기간 총 세입액의 0.1%에 불과하다.

시교육청은 지난 3월 사학 규정을 완화해 재단이 돈을 재단전입금을 내지 않아도 교육청 예산 만으로 건물을 개축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학 비리를 근절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국민 세금으로 재단의 사유재산을 불려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