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쩐의 전쟁'으로 변질된 미국 중간선거

2014. 11. 2. 18:49지구촌 소식

역대 최대 '쩐의 전쟁'으로 변질된 미국 중간선거

출처 없는 돈 최소 10억달러 살포…민심 왜곡 우려 연합뉴스 | 입력 2014.11.02 07:03

 

출처 없는 돈 최소 10억달러 살포…민심 왜곡 우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 "`다크 머니'가 선거판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사실상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들만의 선거'가 돼버린 것이지요. 미국 민주주의에 전례 없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미국 알래스카 주에 사는 제리 바스(67)는 2일(현지시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중간선거가 `쩐(錢)의 전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을 이렇게 지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스의 지적대로 유권자 수가 고작 50만 명에 불과한 알래스카 주는 외부에서 쏟아지는 정체 모를 선거자금인 `다크 머니'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다크 머니는 주로 비영리 시민단체들과 정치자금 모금단체인 `슈퍼팩'(PAC·정치활동위원회) 등에 기부된 돈이다. 특정 정당 후보의 정책을 지지하고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선고광고 형식으로 간접 활용되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이다.

알래스카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지난 27일 현재 민주·공화 양당이 선거비용으로 살포한 다크 머니의 액수는 무려 3천900만 달러(416억3천250만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선거자금 감시단체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현역인 민주당 마크 베기치 의원이 2천250만 달러(240억1천만원), 공화당 댄 설리번 후보는 1천670만 달러(178억2천만원)를 각각 선거운동에 사용한 것으로 추산됐다.

선거 막판에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다크 머니가 알래스카에 투입된 것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초박빙 지역이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와 더불어 경합지역으로 분류된 콜로라도·오하이오 주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다크 머니가 막판에 쏟아지고 있다고 미국의 언론들은 전했다.

로버트 맥과이어 CRP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번 중간선거 과정에서 최소 10억 달러(1조675억 원) 이상의 다크 머니가 뿌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선거판의 다크 머니가 당국에 신고되지 않고 오로지 선거광고 구입과 세금환급 과정을 통해서만 추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제 선거 과정에서 다크 머니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뿌려졌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얘기다.

이번 선거에 투입되는 다크 머니의 규모는 2012년 대선보다 최소 3배, 2010년 상·하원 중간선거보다 17배나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맥과이어 선임연구원은 "다크 머니의 규모와 지출 내역은 대부분 신고 대상이 아니어서 일부만 포착할 수 있을 뿐"이라며 "전혀 보고되지 않은 완전히 다른 `돈의 세계'"라고 지적했다.

다크 머니의 등장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4월 개인이 공직선거 후보자나 정당 등에 건네는 선거자금 기부 총액을 제한하는 연방선거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어느 정도 예고됐다.

거액 기부자는 총선거 또는 대통령선거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에 무제한으로 돈을 뿌릴 수 있도록 금고 자물쇠를 열어 놓은 것이다.

다크 머니의 출처는 억만장자들과 이들을 대신해 돈을 집행하는 슈퍼팩이다. 다크 머니를 살포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공화당을 공개로 지지하는 찰스·데이비드 코흐 형제와 민주당 성향의 자산가 톰 스테이어가 꼽히고 있다.

각각 360억 달러(38조8천800억 원)씩의 자산을 가진 텍사스의 석유재벌 코흐 형제는 미국 내 부호 순위에서 공동 4위에 올라 있다.

이들 형제는 슈퍼팩 `번영을 향한 미국인'(American for Prosperity)을 통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에게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알래스카 상원의원 선거에서 설리번 후보의 자금도 바로 코흐 형제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이에 맞서 16억 달러(1조7천억원)의 자산가로 `헤지펀드계 거물'인 톰 스테이어는 사재 5천만 달러에 진보성향 자산가들의 기부금 5천만 달러를 더해 총 1억 달러를 선거자금으로 내놓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는 환경보호 비영리 단체 `넥스트젠 클라이밋'(NextGen Climate)의 배후에서 기후변화 입법에 찬성하는 상원의원과 주지사 후보의 당선에 선거자금을 대주고 있다.

슈퍼팩 가운데 `번영을 향한 미국인'과 `프리덤 파트너스' 등 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각각 사회복지협회와 무역협회로 등록해놓고 다크 머니를 집행하고 있다.

이들이 각각 선거에서 다크 머니를 뿌려대는 것은 정치적 대의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게 언론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켄터키 주에서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 의원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 `켄터키 기회 연합'(Kenturcky Opportunity Coalition)의 배후에는 켄터키 석탄산업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천400만 달러(149억원)에 이르는 다크 머니를 활용해 상대 후보를 인기 없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연결시켜 켄터키 내 산업규제를 대폭 강화할 것이라는 선거광고를 줄기차게 내보내고 있다.

고흐 형제가 알래스카 상원의원 선거에 다크 머니를 지원하는 것도 주 내에 있는 자원개발회사인 플린트 힐스 리소스사를 보유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다크 머니가 거리낌 없이 횡행하는 배경에는 연방 국세청과 선거관리위원회의 의도적 무관심에 있다면서 이는 배임행위라고 비판했다.

국세청은 정치적 간섭이라는 비난을 들을까 봐 다크 머니에 대한 규제·관리 방안을 선거 이후로 미룬 상태이며, 선관위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중간선거는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미국 역대 선거사상 `최악의 돈선거'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데 전문가들은 이견을 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