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차명거래 금지…비자금 계좌, 갈 곳을 잃다
2014. 11. 17. 18:54ㆍC.E.O 경영 자료
불법 차명거래 금지…비자금 계좌, 갈 곳을 잃다
[한겨레] 개정 금융실명제법 29일 시행
실명제 허점 21년 만에 보완
‘합의 차명’도 가중 처벌키로
법 시행 앞 고액예금 이탈 여부 촉각
10개 은행 고액거래 인출 전년비 증가
사전등록제로 한계점 해소 지적도
우리은행 씨제이(CJ)센터지점 남산출장소 직원들은 2007~2013년에 씨제이그룹 이재현 회장 일가와 임직원 등 24명의 이름으로 된 계좌 70개를 개설해줬다. 개설 당시의 거래금액만 407억원이다. 은행 직원들은 회사 재무팀 직원 몇몇이 한꺼번에 모아온 신분증(혹은 사본)만으로 계좌를 만들어줬다. 훗날 이 계좌들에는 탈세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돼 지난 9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탈루하는 데 쓴 차명계좌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 일로 우리은행 임직원 14명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정직·감봉 3개월의 제재 조처를 9월4일 받았다.
오는 29일부터 불법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금융실명제법)이 시행되면, 이 회장과 같이 불법행위를 저지를 목적으로 차명거래를 벌인 이들이 가중처벌을 받는다. 금융권 안팎에선 개정법 시행이 몰고 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탈세 목적으로 차명거래를 해온 고액 자산가들의 돈이 은행에서 이탈해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인지, 대기업 오너와 정치인들의 비자금 은신처였던 차명계좌가 설 곳을 잃어버리게 될지 등이 관전 포인트다.
16일 <한겨레>가 민병두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을 통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10개 은행의 고액거래 인출현황’ 자료를 분석해보니, 불법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시된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1억원 이상의 예금 인출이 193만1391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65만9349건)에 견주면, 27만2042건이 증가한 수치다. 인출액으로도 올해 4~10월에 644조1263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나, 한해 전의 578조7018억원에 비해 65조4245억원이 늘었다. 고액거래 인출현황 자료를 제출한 곳은 신한·국민·우리·농협·씨티·에스시(SC)·하나·외환·기업·산업은행 등 10곳이다.
은행별로 보면, 우리은행이 분석기간 동안에 36조7044억원으로 인출액 증가 규모가 가장 많았다. 이어 농협은행(12조3299억원)과 신한은행(11조9593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에 하나은행과 씨티은행은 각각 2431억원과 3066억원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은행별로 차이를 보였다.
고액 예금이 인출된 원인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일단은 차명거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점도 이탈을 부추긴 요인 가운데 하나로 추정해볼 수 있다. 1993년 만들어진 금융실명제법은 가명·허명 등 실명이 아닌 금융거래는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이른바 ‘합의차명’으로 다른 사람의 실명을 빌려 계좌를 만드는 것에 대해선 처벌 조항을 두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재벌그룹 총수들의 비자금 사건에서 단골로 등장해온 것이 차명계좌인데 그동안은 조세범처벌법 등 다른 개별법에 의해서만 처벌이 가해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불법 차명거래를 하면, 금융자산의 실소유주와 이름만 빌려준 명의인이 금융실명제법에 의해서도 형사처벌(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이를 알선·중개한 정황이 드러난 은행 직원들도 마찬가지로 처벌 대상이 된다.
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한 제재도 강력해진다. 이재현 회장의 차명계좌 개설을 도왔던 우리은행 임직원들은 정직·감봉의 행정처분 외에 500만원 이내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예정인데, 개정법 시행 이후로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3000만원 이내로 과태료 수준이 올라간다. 또 시행령 개정이 완료되면 차명계좌 한건당 과태료가 부과된다.
실제로 최근 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 등을 중심으로 절세 목적으로 가족이나 제3자 명의 계좌에 예금을 분산해둔 고객들의 문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철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 지점장은 “자녀 등의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를 보유한 고객들이 처벌 대상이 되는 불법 차명거래에 해당되는지를 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동일 국민은행 대치피비센터 팀장도 “금융소득종합과세 한도(이자·배당소득 연간 2000만원)에 걸리지 않으려고 차명계좌에 예금을 분산해둔 고객들이 합법적 증여나 부동산 구입, 비과세 저축성보험 등으로 옮겨가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고액 예금 이탈의 원인을 차명거래 규제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한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월중 평잔으로 보면 6월 이후 정기예금 증가가 둔화되다가 8월 이후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차명거래 규제에 따른 영향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주된 원인은 올해 기준금리 하락으로 인해 고객들이 다른 투자처로 옮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동일 팀장도 “고액 자산가들의 주된 관심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글로벌 배당주 펀드 등 수익률이 일정 수준 이상인 투자상품으로 갈아타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은밀함’이라는 차명거래의 속성상 자금의 흐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 측면도 있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액 자산가들은 여러 은행과 거래를 하기 때문에 차명거래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주로 과세한도 경계에서 자산을 굴려온 고객들이 개정법 시행의 영향을 받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계속 차명계좌를 보유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돈을 옮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섣불리 예금을 인출했다가 자칫 과세당국에 정보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잠복기를 가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분간 차명계좌를 현상유지하거나 종전보다 차명계좌 수를 줄이는 정도로만 리스크 관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00만원 이상 현금을 인출하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거래자 정보가 자동으로 보고된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정치인 등의 불법 차명거래를 근절하는 데는 이번 개정법이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차명거래로 인해 처벌을 받으려면, 수사당국이나 과세당국에 의해 세금탈루 등의 불법행위 자체가 먼저 입증이 돼야 한다. 금융실명제법에 근거한 가중처벌은 사실상 선언적 의미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차명거래의 가장 큰 특징은 실소유주와 명의인은 알지만 은행 직원이나 규제당국은 알기 어려운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다”며 “차명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이들만 사전에 은행에 신고하도록 하는 ‘차명거래 사전등록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불법 차명거래를 뿌리뽑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황보연 이정애 방준호 기자 whynot@hani.co.kr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E.O 경영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세대는 국가의 마지막 희망이다. (0) | 2014.11.17 |
---|---|
고난만한 교육은 없다. (0) | 2014.11.17 |
“기득권층이 악순환의 덫 만들었다” (0) | 2014.11.17 |
국가보조사업, 비리 확인되면 '폐지검토' 의무화 (0) | 2014.11.16 |
日, 한국의 저축銀·대부·캐피털업계 장악 (0) | 2014.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