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1위 김앤장 ‘흔들리는 독주’

2015. 3. 21. 21:31C.E.O 경영 자료

독보적 1위 김앤장 ‘흔들리는 독주’

 

자문료 내려가고 로펌 평가점수도 하락… 경쟁 사무소 유명 변호사 속속 영입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서면이 더 이상 압도적으로 우수하지는 않다.”

최근 법원 안팎에서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김앤장이 다른 로펌보다 저렴하게 계약서를 써준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법률잡지에서 김앤장에 대한 평가를 낮추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앤장이 다른 로펌 일류 변호사들을 영입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다. ‘독보적 1위’라는 평가에 부담스러워하며 손사래치던 때와는 뭔가 분위기가 달라진 느낌이다. 법조계의 삼성, 국내 최대 로펌이라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반드시 김앤장으로 하자는 건 옛날 얘기다. 사안에 따라 실력과 비용을 따져본다. 최근에는 다른 로펌에 의뢰할 때도 많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김앤장 자문료가 내려간 것은 맞다.”

김앤장의 변화를 확실하게 체감하는 곳은 기업이다. 기업은 김앤장의 최대 고객이다. 개인은 소송이 닥쳐야만 변호사를 찾는 것과 달리, 기업들은 일상적으로 변호사의 조력을 필요로 한다. 인사관리·사업확장·인수합병 등 모든 분야, 다양한 상황에서 법률 조언을 받는다. 변호사들이 쓰는 말로 ‘자문’이라고 하는데 로펌의 고유영역이다. 고도의 종합적인 법률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인변호사는 하지 못한다.

그런데 기업에서 “김앤장이 몸을 많이 낮췄다”는 말들이 들린다. 김앤장의 자문료가 최근 크게 내려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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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은 법무법인이 아니라 합동사무소다. 법무법인에는 대주주격인 파트너들이 있고 알게 모르게 알력이 있다. 반면 김앤장은 김영무 박사가 사실상 오너다. 빠른 의사결정이 오늘날의 김앤장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사진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있는 서울 종로구 내자동 한 빌딩의 1층 로비. / 이상훈 선임기자


기업들 이름만 보고 자문 맡기지 않아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김앤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요새는 기업들이 수억원씩 하는 자문사건을 로펌 이름만 보고 덜렁 주지는 않는다. 여러 로펌을 상대로 비딩(입찰)을 붙인다. 김앤장의 임원들이 대기업에 전화해 사건을 좀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한다. 임원들이 당장 듣는 얘기가 자문료를 낮추면 생각해보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김앤장이라도 3~4배씩은 못 준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 고문급 변호사들은 실무팀에게 ‘그렇게는 비싸서 안 한다는데 조금 낮추면 안 되냐’고 되묻는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실무팀은 처음부터 자문료를 낮춰서 부르게 된다. 김앤장의 자문료 단가는 이미 떨어졌다.

자문료가 내려간 것은 객관적인 평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로펌 평가에서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법무법인 광장과 공동 1위를 차지했다. 김앤장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영국 법률전문지 체임버스 앤드 파트너스(Chambers and Partners)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로펌 평가에서였다. 두 로펌은 16개 분야 가운데 12개에서 똑같이 1위권(Band 1)에 속했다. 2013년에는 김앤장이 15개 모든 분야에서, 광장은 9개 분야만 1위권이었다. 특히 지난해 김앤장은 국제통상·부동산·조세에서 2위권으로 내려앉았다. 김앤장을 밀어내고 1위권 자리를 차지한 것은 광장·세종·율촌이었다.

김앤장의 반격은 스카우트로 나타났다. 분야별 일류 변호사를 대거 영입한 것이다. 김앤장 내부에 정통한 변호사는 이렇게 해설했다. “어찌 보면 다른 경제영역처럼 인재 영입이 당연한 것이었는데, 왠지 한국 법조계에서는 스카우트가 금기시돼 있었다. 김앤장이 이 관행을 깨버렸다. 법조시장에 ‘낭만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법 1위인 법무법인 화우의 박인동, 도산법 1위인 태평양의 임치용, 노동법 1위인 광장의 주완 변호사가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타 변호사들이 모두 김앤장의 이름표를 달았다. 이 덕인지 김앤장은 올해 영국 법률전문지 평가에서 단독 1위를 회복했다.

김앤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앤장의 변화는 자문료 이원화 정책에서도 나타났다. 김앤장의 경쟁 로펌 설명이다. “어느 대기업에서 검토보고서를 의뢰받았는데 자료조사부터 상당히 품이 드는 일이었다. 1000만원 언저리로 견적을 뽑아줬는데, 나중에 김앤장에서 절반에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차피 거기에 경험이 있고 축적된 자료가 많으니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앤장이 관계를 이어가려고 사실상 서비스를 해준 것이다. 하지만 고도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처럼 김앤장만 가능한 사건이 더러 나타난다. 그때는 부르는 게 값이다. 김앤장이 여기에서 수익을 낸다.”

하지만 자문분야만으로는 김앤장이 현재의 독보적 위치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견해다. 당장 2016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영국계 로펌이 전면적으로 들어온다. 2017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국계 로펌에도 시장을 개방한다. 해외기업과의 계약이든 국내기업 간의 계약이든 글로벌 스탠더드인 영미법이 기준이다. 현재 한국 로펌이 하는 기업자문도 영미법을 근거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영미 로펌의 국내 진출은 김앤장에겐 엄청난 도전이다. 김앤장이 자문 분야 국내 1위를 지킨다 해도 외국 로펌이 들어오면 시장의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을 잃을 수 있다. 김앤장이 자문 비중을 줄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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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앤장에는 변호사·변리사·회계사 등 전문직을 포함해 모두 2500여명이 일한다. 변호사를 비롯해 구성원이 꾸준히 늘면서 서울 종로구 일대 빌딩 6곳에 나눠 입주해 있다. 사진은 김앤장 산하 공익단체인 사회공헌위원회가 있는 내자동 세양빌딩. / 이상훈 선임기자


외국로펌 들어오면 자문비중 더 줄 듯

자문을 빼면 남는 것은 소송업무다. 변호사들은 송무라고 줄여 부른다. 외국 로펌은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송무에 관여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법정에는 대한민국 변호사만 들어간다. 김앤장을 비롯해 로펌들이 송무를 강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앤장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자문분야는 품질을 내리고 가격도 내려서 파는 게 가능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허니버터칩이 없으면 비슷한 거 먹어도 된다. 자문이 바로 허니버터칩이다. 규격화된 상품이라 금세 모방도 가능하다. 하지만 송무, 특히 로펌에서 다루는 송무는 다르다. 공정위 과징금 수천억원이 오가고 총수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꼭 이겨야 하는 입장에서는 가격 흥정을 하기가 힘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법조계에 공공연히 나돌던 얘기가 있다. “김앤장에 맡겨서 안 되면 결국 안 되는 일.” 김앤장을 선임해서 졌다면 누가 해도 안 될 일이었다는 것이다. 김앤장의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판사들은 김앤장의 스타일이 있다고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법정에 3명이 들어오는데,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연수원 수료하고 바로 김앤장에 입사한 변호사다. 일어서서 우리한테 말하는 사람은 지법 부장 출신이다. 고법 부장 출신은 그 뒤에서 재판을 지켜보며 소송을 지휘한다. 연수원 출신은 뭔가 적고 자료를 건네는 일을 한다. 확실히 체계적인 느낌이 든다. 재판의 흐름을 다양한 층위에서 제어한다.”

최근에는 다른 로펌에서도 3인조 변론을 똑같이 한다. 3인조가 김앤장 전매특허도 아니고 잘만 따라서 하면 문제가 없다. 야구에서 노아웃에 1루 주자가 있으면 번트를 대는 게 좋다는 걸 다른 팀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핵심은 서면과 변론의 질이다. 대법원 연구관 출신 부장판사의 설명이다. “고참 기자들을 보면 어디를 건드려야 정보가 나오고 사안이 커지는지 경험적으로 알더라. 법조인도 마찬가지다. 연수원 성적이 좋아 판사가 됐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게 아니다. 수없이 재판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가진 엘리트 판사 출신들이 모여 소송을 해온 곳이 김앤장이다. 다른 로펌에는 그런 노하우가 없다.”

김앤장의 고민은 이런 독주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앤장에 우수한 인력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로펌 변호사도 바보는 아니다. 김앤장이 (40년 가까이) 다른 로펌들을 무참히 깨왔는데, 패배한 로펌들이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 패배 경험을 복기하고 반추해서 노하우를 이전했다. 김앤장은 승리하면서 기술을 이전해준 것이다.” 이렇게 설명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서면의 질에서 김앤장과 다른 로펌의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김앤장에 대한 판사들 긴장도 약해져

김앤장의 이름만으로 주던 환기효과도 줄었다고 한다. 판사들의 얘기를 모아보면 이렇다. “그래도 우리가 양측 당사자 주장을 매일 듣고 있으니 법리를 안다. 그런데 변호사 가운데 생소한 주장을 해올 때가 있다. 그게 김앤장이라면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게 있나’ 싶어 자세히 봤다. 다른 로펌이라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읽어보는 범위가 넓어졌다. 적어도 주요 로펌에서 하는 주장은 똑같이 본다.” 김앤장만의 독보적 지위를 판사들이 조금씩 부정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에 맞서 김앤장도 경력 변호사 스카우트와 함께 초엘리트 판사들 영입을 계속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대법관 후보로까지 꼽히는 판사 10여명을 동시에 데려가 대법원이 황당해했다. 그런데 올해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 출신 김춘호 부장판사 1명만 입사시켰다. 몸집 불리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김앤장 고위 관계자는 “김앤장의 생명은 맨파워다. A급 인재가 아니면 뽑지 않는다. 숫자 채우려 뽑아서는 최고 수준이 유지되지 않는다. 올해는 김춘호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과연 김앤장이 ‘독보적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자문과 송무가 이어져 있다고 했다. 자문으로 알게 된 의뢰인이 송무도 맡긴다는 것이다. 이제는 교과서 같은 얘기가 돼버렸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대기업 재판을 봐라. 김앤장으로 1심 패소하면 곧바로 해고하고, 2심부터는 광장으로, 태평양으로 간다. 기업의 목숨이 달린 송무는 그런 것이다. 김앤장의 미래는 그들의 소송 노하우가 복제 가능한지에 달려 있다. 가능하다면 김앤장은 머지않아 따라잡히는 것이고, 불가능하다면 소송 기법은 모방 불가능으로 판명되는 것이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