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3. 20:50ㆍC.E.O 경영 자료
[한국, 이대론 갈라파고스 된다①] 약탈적 기업문화
중소기업 기술, 고도화·첨단화되자…'기술 뺏기' 기승
정부 "관계기관 협조체제 통한 기술탈취 감시 강화"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란 정보통신(IT) 산업에서 국내 표준만 고집하다가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뜻한다.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육지로부터 떨어져있어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들이 서식했지만, 외래종이 유입되자 면역력이 약한 고유종들이 멸종한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유래됐다. 한국의 기업들 중에는 수출을 통해 전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업체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회사도 많으나, 해외 진출은커녕 협소한 국내 시장에만 안주해 중소 및 중견기업의 고유 기술을 빼앗고 골목상권을 침투해 들어오는 상생과는 거리가 먼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에 본지는 공유와 개방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국내 경제주체들의 문제점을 5편의 시리즈를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 지난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수급 사업자에게 금형 수정·보완 및 유지 보수 등을 이유로 관련 금형의 상세 설계도면을 요구한 LG하우시스에 대해 시정명령을 결정했다. LG하우시스는 2011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수급 사업자인 A사에 15개 창호 등의 제조를 위한 금형 제작을 위탁하면서 구두 혹은 이메일 등으로 금형 상세 설계도면을 요청해 이를 수령했다. LG하우시스가 A사에게 제공한 도면은 제품 도면 1장에 불과한 반면, A사로부터 수령한 도면은 제품 제작을 위한 금형과 연관된 상세도면 무려 20여장이었다.
#2. 지난 2012년 8월 금융자동화기기를 개발·제조하는 B사는 대기업 계열사인 L사에 현금인출기(ATM) 구동 소프트웨어 기술을 판매 및 유지 보수를 위해 납품하는 과정에서 관련 기술을 부당하게 탈취 당했다. 해당 기술의 유출시 피해액은 약 3500억원으로 예상된다. 손실규모가 3500억원에 이른다는 점은 대기업에게도 큰 타격이 됨은 물론이다. 하물며 중소업체인 B사는 회사 자체를 문 닫을 수 있다. 하도급 관계에 있음에도 B사는 원청기업인 대기업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해 현재까지도 3년 넘게 법정 투쟁 중이다.
중소·중견기업이 힘들게 독자 개발한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중소기업의 고유기술과 핵심인력을 빼앗는 대기업의 약탈문화가 여전하다.
‘온실 속의 화초’란 말처럼, 국내 대기업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선(先)투자를 통해 신규시장 창출에는 소홀하고 덩치에 걸맞지 않은 손쉬운 장사로 쉽게 돈벌이에 나서는 현실 안주적 행태는 국가경제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13일 공정위와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중소기업 기술이 고도화되고 첨단화되는 만큼, 핵심기술 유출피해 역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기출유출 1건당 평균 피해금액이 지난 2009년 10억2000만원에서 2010년 14억9000만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2011년에는 15억8000만원으로 또다시 늘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지난 2013년 6월 중기청은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법 시행령’의 주요내용을 개정해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성과물 보호를 위한 세부 사업의 범위를 구체화했다. 그 이듬해인 2014년 7월부터는 공정위가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행위 심사지침’을 바꾸고 곧바로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의 기술유출 피해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5년간 발생한 기술유출건수의 70%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중소기업 성과물 유출에 대한 실태조사, 상담 및 컨설팅, 기술자료 임치 지원과 기술혁신 성과물의 유출 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을 마친 상태다. 기술자료 제공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도록 지도하고 있으며, 단순열람을 통해 이뤄지는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과 관계된 정보 도용도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제도 개선과 함께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유용 행위를 집중적으로 감시해 위반 행위를 적발할 경우 엄중 조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유용 행위를 제재하는 수단인 과징금 부과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술유용 사건에 적용되는 과징금 산정방식이 대기업이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내는 기간이 짧을수록 제재 수위가 떨어지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는 것이다.
하도급법상 과징금 산정방식이 위반 행위의 유형과 수, 위반 기간과 전력 등을 반영해 구한 부과기준율(3~10%)에 해당 하도급대금의 2배를 곱하도록 돼 있다. 하도급법 위반 과징금 수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갑(甲)과 을(乙), 양자간 거래규모인 셈이다.
기술유용 사건의 경우 ‘을’인 하청업체가 받는 피해는 거래규모가 아닌 하청업체가 빼앗긴 ‘기술의 시장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대금 미지급 사건 등 다른 하도급상 불공정 행위 유형과 피해의 성격이 전혀 다름에도 현행법상 기술유용 사건에는 이들과 같은 과징금 산정방식이 적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갑의 기술탈취 및 유용이 짧은 시일 내 이뤄질수록 과징금 수위가 낮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기술유용 혐의로 공정위가 처음 제재를 가한 올해 5월 LG화학 사건에서는 LG화학이 기술유용으로 물게 된 과징금은 총 1600만원에 불과했다. 처벌 수위를 높여 과징금 부과액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 스스로도 낮은 과징금 수위가 염려스러웠는지 당시 이례적으로 과징금 수준에 대한 해명을 함께 밝혔다. LG화학의 법 위반 기간이 8개월로 짧고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관련 하도급 대금이 C사 7억여원, D사 5억여원에 그친다는 내용이다.
![]() |
자료=공정거래위원회 |
정부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유용과 관련, 현재 과징금 상향조정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기술개발 제품에 대한 대기업·공공기관의 구매 간 연계를 더욱 강화하는 조치가 대표적이다. 중기청은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한 제품에 대해 대기업·공공기관 등 수요처의 구매율을 제고할 수 있도록 ‘구매조건부신제품기술개발사업’ 개선방안을 마련, 이를 실시하고 있다.
구매조건부신제품기술개발사업은 대기업, 공공기관 등 수요처에서 구매를 조건으로 기술개발을 제안한 과제를 수행하는 중소기업에게 연구개발(R&D)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기청은 “공공기관의 경우 종전 권고사항이던 ‘중소기업 기술개발제품 구매목표비율’이 의무사항으로 강화돼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면서 “수요처 미구매 시 사유를 전수조사하고 수요처에 귀책사유가 있을 경우 참여제한 등의 제재를 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술유용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하고 있다. 공정위와 경찰청, 중기청, 특허청은 지난해 12월 중소기업 기술유용 근절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하는 행위를 효과적으로 근절하기 위해 정부 관련기관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 하에 추진됐다.
정부는 “‘대·중소기업 불공정 관행 개선’ 과제 세부 이행계획에 따라 기관 간 협조체제를 통한 기술탈취 감시를 강화한다”며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유용은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유인을 약화시켜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저해하는 것으로 창조경제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불공정 관행”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C.E.O 경영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명한 자는 현재에 살고 (0) | 2015.10.13 |
---|---|
獨대통령 "한국은 사회적으로도 성공…北 핵무장 끔찍"( (0) | 2015.10.13 |
내년 초부터 한계기업 대대적 구조조정…범 정부 협의체 구성 (0) | 2015.10.13 |
10월의 가을 공원 (0) | 2015.10.13 |
성공한 경영자의 지우개 (0) | 201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