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가 미래다] "너도 힘드니? 나도 힘들다"

2015. 11. 23. 18:45C.E.O 경영 자료

[청년 일자리가 미래다] "너도 힘드니? 나도 힘들다"

 

세대별 실업 양상…포기하는 청년·버티는 중년·내려놓는 장년

이필상 교수 "일자리 창출 의지, 성장잠재력 떨어졌던 과거와 유사"


[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모두가 위기다. 청년세대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로 전락했다. 3040 남성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여성은 경력 단절에 각각 내몰렸다. 조기 은퇴 위기에 휩싸인 5060은 청년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은퇴 세대인 60~70대 이상은 일용직으로 내몰린 지 오래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화두로 떠오른 실업 문제가 청년세대도 모자라 중년과 장년, 노년까지 통째로 집어삼킨 셈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기업),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지 못하면 불안 사회 가속화가 빨라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대타협 기반의 노동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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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청년(15~29세)실업률은 올 들어 가장 낮은 7.4%를 기록했다./통계청


◆청년 실업률 '최저'…훈풍은 어디에?

"주변에 취업한 사람이 없는데…. 청년 실업률이 최저를 기록했다는 통계가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훈풍은 대체 어디에서 불고 있다는 겁니까?"

중소 광고회사에 취업했다가 최근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이른바 취준생으로 복귀한 남건호(29)씨가 통계청 결과에 의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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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제활동인구 중 구직단념자/통계청


22일 통계청의 '10월 고용동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청년(15~29세)실업률은 올 들어 가장 낮은 7.4%를 기록했다. 2013년 5월(7.4%) 이후 2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러나 실제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여전히 춥다. 15~19세, 25~29세 취업자는 전년 대비 각각 1000명, 3000명 줄었다. 20~24세 취업자가 늘긴 했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인 상태다. 이 연령대의 2007년 비정규직 근로 비율은 10%에서 올해 23%로 대폭 늘었다.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청년들이 취업자 수 상승에 기인한 셈이다.

취업 훈풍이라는 오해 속에서 취준생들의 구직 포기는 되레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구직 단념자는 47만1000명으로 지난해 10월보다 4만 명 이상 증가했다. 국회에서 인턴 비서로 일했던 이가원(28·가명)씨도 최근 구직을 포기했다. 국회에서조차 저임금 노동, 이른바 '열정페이'에 처했던 이씨였다. 쥐꼬리만한 월급이지만 취준생 탈피를 위해 중소기업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으로 이직을 몇 차례 반복한 끝에 결국 일자리 구하기를 단념했다.

이 씨처럼 일자리를 포기한 취준생 때문에 실업률은 더욱 낮아졌다.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은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청년 일부 연령대(20~24세)의 취업자수 증가와 맞물려 마치 일자리에 훈풍이 분 것처럼 보인 것이다. 실업도 취업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에 해당되는 취준생은 오히려 늘었다. 지난달 63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8만2000명(14.7%)이나 증가한 수치다. 청년들이 취업난 가속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비정규직을 택하거나 구직을 포기하는 악화일로에 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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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인파로 북적이는 2015 공공기관 채용정보박람회./ 연합뉴스


◆3040은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까지…늘어나는 '젊은 노인'

고용 불안은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3040도 위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결혼, 출산 등과 맞물려 일자리의 질이 떨어져도 버텨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세대다. 경제활동이 활발한 세대인 만큼 고용률은 74.5~80.1%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시기 저임금, 장시간 근로가 요구되는 제조업과 도매 및 소매업에 취업한 비율은 31.5%에 달한다. 이 시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면 평생 낙오자가 될 거란 불안감이 부른 현상이다. 3040은 더 이상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기대지 못한다. 사회는 그들의 아픔을 개인의 능력부족으로 치부한다. 전체 취업자 중 안정적 고용 형태인 '상용근로자'는 48.7%에 불과하다. 이 세대 남성 고용률이 91~92%라는 점을 감안하면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3040 여성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결혼과 출산, 육아로 경력 단절에 시달려 여성 고용률은 57~67.4%에 불과하다. 여성 10명 중 5~6명만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산전 후의 여성이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는 정부 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런 규정을 인정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행원인 조현영(37) 씨는 "임신 휴직 조항이 있지만 대부분 휴직이 아닌 사직을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원 300명 이상 대기업 420곳과 50명 이상인 공공기관 23곳에서 최근 5년간 육아휴직급여를 받아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조기 은퇴에 내몰린 5060은 '젊은 노인'이 됐다. 국민연금법은 60대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지만 100세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여전히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중년'이다. 결혼·출산 시기는 늦춰졌지만 노인에 대한 기준과 퇴직 연령은 변함이 없다. 정부가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 임금을 축소하는 대신 고용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청년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달라는 압박만 들려온다.

이미 은퇴한 60대는 양질의 일자리 욕심을 버린 지 오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 수는 60대에서 7.1%(1879명)로 크게 늘었다.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60대가 은퇴 직후, 양질을 가리지 않고 노동시장에 다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60대 이상의 가계부채 비율도 연간 버는 돈의 161%에 달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률도 49.6%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은퇴 세대가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를 내줄 수 없는 이유다.

◆세대 갈등이 전쟁으로…"일자리 창출 돼야"

삶의 질을 좌우하는 노동환경이 불안정하다보니 삶의 질도 덩달아 낮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발표한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에 따르면 34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인의 삶 만족도 순위는 27위에 그쳤다.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도 전 세대로 확대됐다. 세대 간 갈등이 세대 내 갈등과 더불어 세대 내 '전쟁'으로 까지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기업),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대타협에 실패해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빈곤 사회로 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겸임교수는 <메트로신문>과의 통화에서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과거처럼 일자리 창출을 하지 않는데다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기계화·정보화·자동화를 통해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고 지적한 뒤 "이 때문에 2030은 실업에, 3040은 고용 불안에, 5060은 빈곤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프레임과 관련,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모두 일자리를 갖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두 세대는 보완적 관계이지 세대 갈등이 아니다. 잘못된 접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경제 성장 동력을 찾는 정책을 펼쳐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대기업도 그에 부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연미란 기자 actor@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