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무 임대주택 축소하나요?

2016. 3. 12. 19:13부동산 정보 자료실

[뒤끝뉴스] 왜 의무 임대주택 축소하나요?

잇따른 의무 공공임대주택 축소 논란

정부 “돈 안 되는 임대주택 줄여 사업성 높여야 한다”

시민사회단체 “월세화 고통받는 서민주거안정에 역행이다”


“급격한 월세화로 서민 주거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데, 왜 기존 임대주택을 축소하는 정책을 내놓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거환경개선지구 내 임대주택 비율을 낮추는 내용의 국토교통부 행정예고에 대해 최승섭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이 내놓은 하소연입니다. 정비구역 내 임대주택이 대폭 축소될 게 뻔한데도 이런 정책을 펴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전월세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여느 시민사회단체의 꼼수로 치부하긴 힘듭니다.

세입자라면 누구나 2년 계약이 만료될 때마다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겪어봤을 겁니다. 최근에는 그 강도가 스트레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세매물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며 급격히 월세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낮은 금리에 부동산 가격 상승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라 집주인들이 기존 전세 물량을 월세로 돌리거나, 반전세화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도 빠릅니다. 통계를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통계청의 가계통향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의 실제 주거비(월세 기준)는 월평균 7만4,227원으로 1년 새 20.8% 증가했습니다. 2003년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주거비이자, 증가율 또한 역대 최고치입니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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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세 거래량(82만건)은 5.1% 줄어든 반면 월세 거래량(65만건)은 8.3% 늘어났습니다. 특히 인구밀집도가 높은 서울의 월세 거래량(21만5,000건)은 11.6%나 늘었습니다. 올해만 해도 5월까지 수도권에서만 전세 만료아파트가 6만여가구나 되니, 최악의 전세난을 겪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전셋값 상승으로 전세난 피할 수 없다”(함영진 부동신114리서치센터장) “월세로 가는 흐름이 형성됐다”(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 등의 의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당장 서민, 특히나 취약계층에겐 이 월세 폭탄은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직격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월세 지출을 늘리다 보면 어딘가 살림살이에 구멍이 뚫리는 법입니다. 이럴 때 ‘공공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하는 마음이 간절할 겁니다. 급격한 월세 상승을 걱정할 필요도, 2년마다 찾아오는 계약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죠. 강호인 국토부 장관조차 “주택시장 정상화와 서민주거 안정을 위해선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난해 11월 국회청문회에서 밝힐 정도로 급격한 월세화를 완화시킬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서민주거안정에 역행하는 정책을 이렇게 내놓은 것입니다. 지난달 입법예고 한 ‘정비사업의 임대주택 및 주택규모별 건설비율 개정안’시행규칙을 보면 기존에는 주거환경개선지구 내 전체 세대수의 20%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의무 공급키로 했으나 이젠 시ㆍ도지사가 30% 이내에서 결정하면 됩니다. 예컨대 주거정비지구에 1,000가구를 공급할 경우 현재는 200가구 이상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지만, 고시안이 변경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임대주택을 전혀 공급하지 않아도 사업승인이 날 수 있게 된 겁니다. 상당수 지자체가 임대주택 하한선이 이런 식으로 없어지면 임대주택 건립비율을 줄이려 든다는 건 기우가 아닙니다.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또 다른 정비사업인 ‘주택재개발사업’에서도 수도권 임대주택 의무공급 비율 하한을 시ㆍ도지사가 결정토록 하고, 상한은 5% 낮춰 15% 이하로 2014년 9월 바꾸자(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안) 인천시는 재빠르게 재개발 사업시 임대주택 의무공급 비율 하한을 0%로 내렸습니다. “서민의 입주 권리를 없애는 조치”라는 비난이 예상됐지만 지지부진한 재개발의 사업성을 높이려면 이런 기폭제가 필요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번 결정을 내린 정부의 변명은 더욱 궁색합니다. “돈 안 되는 임대주택을 줄이면 사업성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추진되는 사업지구에 임대수요가 높지 않아 이렇게 많은 물량이 필요 없습니다.” (국토부 관계자) 현재 개발계획 중인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5곳에 대한 사전 수요조사를 했는데 ▦인천 용마루 지구의 임대주택 수요는 13% ▦인천 십정2지구는 9.6% ▦영천 문외지구는 6% ▦홍성 오관지구 13% ▦부산문현2지구는 3% 등으로 의무비율 2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 지구에 수요자가 이렇게 부족할까요. 공공 임대주택 대상자인 세입자가 이렇게 없는 것일까요. 그 원인을 정부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경실련 자료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거환경개선지구(2014년 6월 공급한 목포대성 51㎡)내 공공 임대주택의 경우 보증금 3,100만원에, 월 임대료는 43만원입니다. 반면 무주택 서민(전년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70%이하)이 대상인 국민임대주택(지난해 9월 공급 목포 포미4지구 46㎡)은 보증금 2,000만원에, 월 임대료는 15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지역에 비슷한 규모의 임대주택이었는데도 월세가 3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낡은 주택이 몰려 있는 주거환경개선지구에 거주하는 세입자들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 누가 이런 고가의 공공 임대주택에 들어가려 할까요.

낡은 주택과 기반시설이 형편없는 지역의 주거환경 개선 사업은 꼭 시행돼야 할 사업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살고 있는 세입자는 이런 환경 개선으로 급격히 올라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터전을 잃고 더욱 외곽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습니다. 행정을 펼치는 자라면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감안한 정책을 내놨어야 합니다. “원주민 세입자를 내쫓게 되는 건 정비사업 취지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장 사업 시행에 급급해 이런 졸속 행정을 내놓는다면 심화되는 전월세난은 더욱 손댈 수도 없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최승섭 부장)는 조언을 새겨 들어야 할 것입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