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분양제도가 낳은 기형금융…집단대출이 불안하다

2016. 3. 29. 19:07부동산 정보 자료실

선분양제도가 낳은 기형금융…집단대출이 불안하다

대출총량 급증, 연체율도 동반 상승 움직임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주택 시장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집값을 둘러싼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상승과 하락을 두고 집값 전망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집단대출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집단대출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은 데다, 최근 연체율마저 오르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의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 시행 이후 기존 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는 확연히 줄어든 가운데, 집단 대출이 가계 부채의 증가세를 주도하는 양상이다. 금융 당국은 집단 대출에대해선 규제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밝힌 가운데, 집단 대출이 선분양 제도의 기형적 금융형태인 만큼 분양제도를 후분양 제도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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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대출은 선분양 제도에 따른 불가피한 금융 형태= 집단대출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우리나라가 운영 중인 선분양제도의 기형적 금융 형태다. 보통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는 완제품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분양 시장은 가짜 모형 집인 모델하우스를 보고 아직 짓지도 않은 집의 구매를 결정한다. 모형 집을 보고 구매계약을 하고 약 2년 뒤 지은 집에 들어가 살게 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구매자들은 통상 중도금과 잔금을 집단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은행으로부터 빌려 자금을 조달한다. 아직 소유권이 구매자에게 이전되지 않은 탓에 집단대출은 은행의 개별적인 심사 없이 시공사가 보증을 서고 아파트 계약자들에게 이뤄지게 된다.

건설사들은 선분양이라는 분양 형태를 통해 비교적 적은 초기 자금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또 준공 후 미분양의 리스크도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는 이점을 얻어 왔다. 하지만 이런 이점도 더이상 누리기 힘들어지는 추세다. 최근 주택 시장에 이상 기류가 감돌자 금융권에서는 집단대출에 대한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에서는 집단대출을 받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는 재개발ㆍ재건축구역이 나오고 서민들을 위해 공급되는 공공분양아파트의 중도금 대출 금리도 치솟는 등 과도한 집단대출 규제가 시장을 빠르게 냉각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며 불안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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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국은 왜 집단대출에는 규제를 하지 못했나=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집단대출을 규제한 바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은행들 역시 “사업성을 따져 보고 리스크 요인을 반영한 것일 뿐 당국의 지시는 없었다”고 해명한다. 분양 시장의 호황기가 어느 정도 정점을 지나는 만큼 은행들도 이제 ‘묻지마 대출’에 나설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당국의 공식적 규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향후 발생할 부실 리스크 등을 위해 금융권에서 선제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로 바뀌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인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2월부터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원리금분할상환을 원칙으로 여신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방안을 시행 중이다. 이 시행에 집단대출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집단대출 규제의 파괴력 때문이다. 집단대출에 대한 규제는 곧 주택 소비자의 구매력을 현저히 감소시키는 조치여서, 신규 분양 시장의 급랭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신규 분양 시장이 붕괴될 경우, 이는 곧 기존 재고주택 시장에 영향을 미치며 연쇄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진다. 주택 시장 전반의 침체를 가져올 절대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집단대출을 규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 집단대출이 주택담보대출 급증 주도…연체율도 상승세, 가계 대출 부실 뇌관= 문제는 최근 집단대출 시장이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서 집단대출은 나홀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주택담보대출의 증가를 집단대출이 홀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집단대출이 우량 사업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자금이 공급되며 크게 늘고 있는 것. 지난달 기준 집단대출 잔액은 112조8000억원으로 1~2월중 2조5000억이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액(5조4000억원)의 46.6%를 차지한다. 사실상 집단대출이 주담대 증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호황기를 보낸 분양 시장에 대한 자금 공급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뒤늦게 증가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 스스로 분양가능성 등 사업타당성을 평가해 리스크를 관리하되, 전망이 밝은 사업장까지 대출기준을 경직적으로 적용하여 집단대출이 거절되는 경우가 없도록 합리적 심사를 당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집단대출 금리 움직임 등에 대해서는 은행이 건설사, 차주, 입주예정자 등에게 충분히 설명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집단대출의 증가와 함께 연체율도 동반 상승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집단대출의 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경기 부진 등의 여파로 중도금과 잔금을 미납하는 가계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집단대출의 금리는 오르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집단대출 금리는 지난해 10월 평균 2.77%에서 올해 1월에는 2.98%로 0.21%포인트 상승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통계에따르면 지난달 가계 대출 연체율이 소폭 상승한 가운데 집단대출의 연체율도 함께 올랐다. 지난달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은 0.38%로, 전월 말 대비 0.02%p 올랐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지난 달 0.29%를 기록해 전월 말 대비 0.01%p 상승했다. 집단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0.47%로 전월 말 대비 0.02%p 올랐다. 집단대출의 연체율이 주담대의 연체율 보다 높고, 연체율 상승폭 또한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의 주관으로 이뤄진 ‘주택금융 동향 관련 전문가 토론회’에서는 점진적으로 후분양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임일섭 우리금융연구원 실장은 “집단대출은 선분양제도와 결합된 일종의 사적 금융이므로, 장기적으로 후분양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통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