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한국형 슈퍼컴퓨터의 모든 것

2016. 4. 8. 20:27C.E.O 경영 자료

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한국형 슈퍼컴퓨터의 모든 것

문화일보 | 방승배 기자 | 입력 2016.04.08. 16:00

 

 

中 ‘톈허2’ 초당 3경3860조번 연산능력… 알파고의 150배

국산 아직 없어… 10년간 1000억 투자해야 겨우 中에 근접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가 한국 사회에 미친 ‘충격’은 ‘축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여전히 자동차와 중공업에 의지하고 있고, 정보기술(IT) 분야 역시 스마트폰이나 D램 중심이다. ‘미래 산업’에 대한 절실함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래 신기술의 가치와 잠재력을 경시하는 풍토가 정부와 기업, 국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다.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의 분투는 끝났지만 한국엔 알파고가 내준 숙제가 쌓여 있다. 최근 정부가 연간 100억 원을 투자해 2025년까지 슈퍼컴퓨터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도 숙제 중 하나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기상청에 설치된 슈퍼컴퓨터 ‘누리’ 모습. 기상청은 2001년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이래 지난해까지 3호기인 ‘해온’과 ‘해담’을 운영했다. 누리는 ‘우리’ ‘미리’와 함께 도입된 4호기로 지난해 하반기 시험가동을 시작했다.  기상청 제공
기상청에 설치된 슈퍼컴퓨터 ‘누리’ 모습. 기상청은 2001년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이래 지난해까지 3호기인 ‘해온’과 ‘해담’을 운영했다. 누리는 ‘우리’ ‘미리’와 함께 도입된 4호기로 지난해 하반기 시험가동을 시작했다. 기상청 제공

1 슈퍼컴퓨터란

슈퍼컴퓨터(supercomputer)는 과학기술연산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는 초고속·거대용량 컴퓨터다. 이 개념은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적인 것으로 당대 최상급 처리 능력(특히 연산 속도)을 보유한 고성능 컴퓨터를 가리키는 말이며, HPC(High-Performance Computer)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술적으로 초고성능 컴퓨터란 통상 국제 슈퍼컴퓨팅 콘퍼런스(Supercomputing Conference)에서 매년 11월 연산처리 속도 등의 성능을 종합해 발표하는 세계 500위 내 컴퓨터를 말한다. 세계 1위 성능을 자랑하는 중국의 슈퍼컴퓨터 ‘톈허(天河)2’는 초당 3경3860조 번의 연산처리가 가능하다.

2 국내 기술 수준은

국내에도 기상청의 ‘누리’를 비롯해 10대의 슈퍼컴퓨터가 있지만, 성능은 톈허2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마저도 모두 미국 제조업체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국내 초고성능 컴퓨터 시장 규모가 세계 시장의 2.5%에 불과해 기업이 개발에 나설 유인이 적다”면서 “정부가 직접 나서 한국만의 슈퍼컴퓨터를 키우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까지 한국에서 최고 성능을 가진 컴퓨터는 0.3페타플롭스(1PF = 소수점 아래 여러 자리가 있는 숫자들의 사칙연산을 초당 1000조 번 처리할 수 있는 속도)의 ‘우리’였으나, 2015년 기상청이 2.4PF의 기상예측 컴퓨터인 ‘누리’와 ‘미리’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들 컴퓨터 성능은 세계 1위인 중국의 톈허2(33.9PF)의 7.1% 수준이다.

3 국내 투자 규모

한국이 슈퍼컴퓨터 개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1980∼1990년대 정부와 민간 주도의 국산 서버 개발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도된 바 있으나 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 등으로 지속적인 투자로 연결되지 못했다. 이후 개발된 슈퍼컴퓨터는 2012년 완성된 ‘천둥’(이재진 서울대 교수팀), 2014년 완성된 ‘바람’(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2015년 완성된 ‘마하’(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국 아프로) 정도인데 각각 처리속도는 1PF의 5∼10%에 불과했다. 또 이들 사업에는 각각 적게는 약 20억 원에서 많게는 283억 원이 투입됐지만 프로젝트를 서로 연결하고 일관성 있게 장기 개발을 이끌 주체가 없어 단발성으로 그쳤다.

4 정부 투자 배경

정부는 슈퍼컴퓨터 자체 개발 사업의 본격적인 착수 배경을 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구현된 지능정보사회에 발맞추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국내 초고성능 컴퓨팅 시장의 95% 이상을 IBM, HP, 크레이 등 외국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 및 기술 경쟁력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대학에서 우수한 연구자원이 배출돼도 지속적으로 역량을 높여 나갈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전자·통신 분야를 비롯해 무인자동차, 로봇 등의 분야에서 나타난 국내 연구수준도 괄목할 만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도 정부가 개발에 착수한 배경이다.

5 얼마나 투자하나

원천기술에 속하는 슈퍼컴퓨터 개발은 단기간 집중적 투자보다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부는 슈퍼컴퓨터 분야의 안정적 R&D를 위해 사업단에 2025년까지 매년 100억 원 내외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미래부는 슈퍼컴퓨터 개발을 위해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초고성능 컴퓨팅(HPC) 사업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사업단은 국내외 개발 경험과 비법을 보유한 다양한 개발주체(산·학·연) 간 컨소시엄 형태로 꾸려지며 4월부터 시작된 공모를 통해 선정한다. 기업은 슈퍼컴퓨터 보드 제작, 패키지 양산 및 사후관리를 담당하고, 대학은 원천기술 개발, 전문인력 양성 및 인력 교류를 맡는다. 연구 단체는 슈퍼컴퓨터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 및 테스트 베드를 제공한다.

6 어떤 단계로 개발하나

미래부는 공공부문의 슈퍼컴퓨터 실수요 등 국내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발 프로젝트를 2단계로 나눠 올해부터 2020년까지 1PF 이상 슈퍼컴퓨터를 우선 개발할 예정이다. 2015년 재난·환경 분야 조사 결과, 9개 부처에서 해양예보, 산불·산사태 예측 등의 용도로 1PF 내외의 수요를 형성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정부는 2021∼2025년 30PF 이상인 슈퍼컴퓨터를 단계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7 알파고 vs 슈퍼컴퓨터

1PF는 알파고를 가동한 슈퍼컴퓨터(0.2∼0.3PF 추정)보다 3∼5배가량 빠른 수치다. 2025년 개발 완료 목표인 30PF는 알파고와 비교하면 90∼150배가량 빠른 셈이다.

그러나 최근 슈퍼컴퓨터의 성능 발전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이뤄지기 때문에 ‘알파고와 비교해 몇 배 빠르다’는 식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슈퍼컴퓨터가 개발 완료되는 2025년에 30PF는 개인이 보유한 PC 혹은 스마트폰의 성능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8 10년 뒤 경쟁력은

현재 최고로 평가받는 중국의 톈허2는 33.9PF로 1초에 3경3860조 번 연산하는 속도다. 10년 뒤에 개발에 성공해야 간신히 톈허2에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중국이 톈허2보다 약 1000배 빠른 ‘엑사급(Exascale)’ 슈퍼컴퓨터를 개발하는 등 기술 격차는 점차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연산속도가 몇십 배, 몇백 배 높은 시스템을 만들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는 최초의 슈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로서, 단순한 슈퍼컴퓨터 개발뿐만 아니라 시스템 아키텍처 설계가 가능한 최상급 인력의 양성, 기업과의 공동 연구 및 기술 이전 등을 통한 산업계의 활력을 제고하는 데도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9 시장 현황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14년 개방형 슈퍼컴퓨터 및 유관기술 시장규모는 322억 달러로 2018년 434억 달러(연평균 약 7.8% 성장)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에 국내의 경우 2014년 2억5700만 달러에서 2018년까지 2억6700만 달러(연평균 0.98% 성장)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글로벌 시장에 비해 성장 속도가 대단히 느리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계획을 통해 스토리지, 운영체제 등의 구성품 개발과 관련 중소기업의 참여를 보장해 국산 기술의 글로벌 진출도 도울 계획이다.

10 어디에 사용되나

슈퍼컴퓨터 기술은 일반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운 대용량의 정보를 초고속으로 저장·처리·활용하는 데 쓰인다. AI, 빅데이터, IoT 등으로 촉발된 지능정보사회를 구현하는 인프라라는 의미다. ‘4차 산업혁명은 슈퍼컴퓨터에 달려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일단 정부는 개발된 슈퍼컴퓨터를 기상·재해 등의 공공 분야에 보급할 계획이다.

이진규 미래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최근 알파고 등 AI의 발전은 대규모 데이터의 고속 처리가 가능한 슈퍼컴퓨터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이번 사업을 계기로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인적·기술적 역량을 구체적인 성과물로 입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승배·임정환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