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6. 20:26ㆍ지구촌 소식
에르도안 독재 맞선 군부의 ‘민주주의 쿠데타’?
[한겨레] 에르도안 13년 장기집권, 이슬람주의로 치우쳐
건국의 아버지 케말 정교분리 등 세속주의 위축
쿠데타군 “민주질서 보호” 내세워 전복 시도
15일 쿠데타를 일으킨 터키 군은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를 ‘민주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군부 쿠데타가 민주주의를 파괴해온 한국 등 대부분 나라에서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 군부 쿠데타를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터키에서는 이런 주장이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터키 군은 ‘세속주의’와 ‘민주주의’, ‘공화국’의 수호자 노릇을 해왔다. 그런 전통은 현대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서 비롯했다. 15~18세기까지 오스만 투르크는 중동과 유럽 세계의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대항해와 산업 혁명 등 유럽의 발전에 따라 위축되기 시작했고, 특히 1차 대전 때 독일 등 동맹국에 가담했다가 패전국이 됐다. 1차 대전 뒤 연합국은 오스만 투르크 영토의 대부분을 주변국의 지배에 두려고 시도했다. 그 때 무스타파 케말은 독립 전쟁을 일으켜 이런 시도를 물리치고 아나톨리아 반도를 대부분 차지한 터키 공화국을 세웠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독립 전쟁과 건국, 현대화의 지도자였다. 그의 영향으로 터키 군부는 정-교 분리(세속주의)와 민주주의의 수호자 노릇을 자처해왔다. 이번 쿠데타도 그런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
그리고 무스타파 케말은 터키를 발전시키기 위해 급진적인 현대화, 서구화 개혁을 관철시켰다. 칼리프제의 폐지와 정-교 분리(세속주의), 종교의 자유 보장, 남녀 평등 교육, 일부다처제 금지, 여성들의 히잡, 차도르, 부르카 금지, 여성에 선거권 줌, 아랍문자 폐지와 알파벳 사용, 이슬람력 폐지와 유럽력 도입,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의 수도 이전 등이 모두 포함된다. 중동의 이슬람 국가 가운데 정-교 분리(세속주의), 종교 자유 보장, 남녀 평등 정책을 실시하는 나라는 터키가 유일하다. 이런 업적에 대해 1934년 터키 의회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줬다.
무스타파 케말이 독립 전쟁과 건국, 현대화의 지도자였고, 그가 군인 출신으로 군부의 힘을 바탕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터키 군부는 오랫동안 ‘무스타파 케말 정신’의 수호자로 자처해왔다. 1938년 무스타파 케말이 죽고 1945년에 일당 독재가 끝난 뒤에도 군부는 민간 정부와 함께 터키를 지배해왔다. 1960년, 1971년, 1980년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들도 모두 세속주의나 민주주의, 공화국, 케말주의의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군부의 지배 전통은 2003년 이스탄불 시장 출신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총리가 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에르도안은 경제 발전과 친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3번이나 총리로 선출됐으며, 2014년에는 헌법까지 바꿔 그 전과 달리 실권을 가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현재 총리와 대통령으로 4번 선출돼 13년째 집권 중이다. 이에 따라 중동에서 유일한 정-교 분리 국가인 터키마저 이슬람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우려, 에르도안의 민간인 독재에 대한 우려가 군부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다.
터키 군부는 에르도안의 친이슬람주의적 태도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밝혀왔다. 크고 작은 쿠데타 움직임도 계속됐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대중적 인기와 정부 장악력을 바탕으로 이를 매번 깨뜨렸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했고, 이슬람 전통을 강조해 터키인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은 것이 원동력이었다. 이번에 터키 군부가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쿠데타를 일으켰음에도 수천수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이를 반대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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