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수신의 덫.. 당국 뒷짐에 '독버섯처럼'

2016. 10. 3. 18:47C.E.O 경영 자료

유사수신의 덫.. 당국 뒷짐에 '독버섯처럼'

한국일보 | 안아람 | 입력 2016.10.02. 20:03 | 수정 2016.10.02. 21

최근 5년간 1043건 신고 불구

수사 진행은 절반에도 못 미쳐

“조사ㆍ감독권 없어 한계” 강변만

수법 지능화ㆍ피해 금액도 급증

피해 발생 후 수사 ‘사후약방문’

“사전 관리 시스템 등 마련해야”

고수익과 원금 보장 등을 미끼로 서민들을 현혹하는 유사수신ㆍ투자사기 업체들로 인한 피해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갈수록 범행수법이 지능화해 선량한 피해자 발생을 막기 어렵고, 피해금액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투자자의 부주의만 탓하지 말고 좀더 적극적인 감시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이근수)는 IDS홀딩스 대표 김성훈(46)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김씨에게 속은 투자자 1만2,076명은 총 1조960억여원의 피해를 입었다. 2000년 중반 7만여명이 5조원대 피해를 입어 단군 이래 최대 사기극이라 불리는 ‘조희팔 사건’의 재연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된 유사수신업체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 이철(51)씨에게 속아 7,000여억원을 투자한 사람도 3만여명에 달했다. 어미돼지에 500만~600만원을 투자해 새끼돼지 20마리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금을 모은 혐의를 받고 있는 양돈업체 도나도나도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받았다.

유사수신 및 투자사기업체들이 돈을 끌어 모으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고수익 및 원금 보장으로 투자자를 유혹하는 한편 ▦시중 금리를 훨씬 웃도는 수익률을 의심하지 않도록 그럴듯한 투자상품을 꾸미고 ▦초기에는 일정한 수익을 되돌려줘 확신시킨다. IDS홀딩스의 경우 FX 마진거래(외환 거래서 생기는 환차익을 챙기는 파생 거래)나 셰일가스 사업 등에 투자한다고 주장하며 거래량을 조작하는 가짜 프로그램을 공개해 믿음을 샀다. 여의도 증권가에 대형 사무실을 차리고 투자 설명회도 열었다. VIK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소액을 모아 전도유망한 비상장 벤처회사에 투자해 목돈을 만드는 ‘크라우드 펀딩’ 등 선진 기법을 사용한다며 피해자들을 속였다.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0ㆍ구속기소)씨는 온라인커뮤니티에 고급 빌라나 슈퍼카 등 재력을 과시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소액을 투자한 사람들은 투자 초기에 약정한 수익을 받고 신뢰를 갖게 된 후 투자 금액을 늘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한다. 업체들은 소개료 명목으로 추가 이익을 제공해 이를 부추긴다. 정상적인 수익원이 없는 업체들은 신규 투자자들에게 받은 돈을 기존 투자자들에게 이자로 지급하는, 소위 ‘돌려막기’를 하게 된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 전까지 이런 식으로 피해를 키운다.

유사수신 피해가 늘고 있는데도 금융당국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043건의 유사수신 혐의업체 신고가 있었고 이중 47%(486건)에 대해서만 수사가 진행됐다. 금융당국은 미인가 업체들에 대한 조사ㆍ감독권이 없어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피해자가 발생한 뒤 수사에 착수했을 때는 이미 피해 규모가 최소 수백억원 이상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갑자기 투자액이 늘어난 업체들에 대해 금융감독원 등이 사전 관리감독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유사수신업체 신고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VIK 대표 이씨는 7,000억원의 피해를 유발하고도 4월 보석으로 풀려 나왔고, 그 뒤 또 2,000억원대 불법 투자유치를 한 혐의로 다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씨는 두번째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도 “적법한 거래”라고 주장했고, 지난달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유사수신업체를 수사했던 한 부장검사는 “투자자들을 속여 거액을 가로챈 뒤 이 돈으로 소위 잘나가는 변호사를 선임해 죄값에 비해 약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등 관련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