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소득 7년간 20% 오를때 빌딩 임대소득은 8배 뛰었다

2017. 1. 31. 19:16부동산 정보 자료실

근로소득 7년간 20% 오를때 빌딩 임대소득은 8배 뛰었다

이지용,서태욱,연규욱,유준호,황순민,양연호,임형준 입력 2017.01.31 18

가로수길 '금수저 빌딩' 70%는 강남3구 거주자가 보유
건물 지분 30억 가진 미성년자, 수백억대 여러채 '빌딩왕'도
자산격차, 교육 등 다중적 격차로 이어져..계층사다리 '붕괴'

◆ 위기의 계층사다리 ② / 부동산도 수저론…서울 가로수길 빌딩 134곳 전수조사 ◆

서울 강남에서 '알짜 중 알짜' 상권으로 통하는 신사동 가로수길. 이곳에서도 한가운데에 위치해 유명 브랜드, 의류매장, 병원, 카페 등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 지상 7층짜리 꼬마빌딩.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부근에서도 노른자로 꼽혀 건물시세가 300억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이 건물 지분 5%와 토지 지분 10%는 미성년자 A군(19)의 몫이다. A군은 만 13세였던 2013년 부모에게서 이 지분을 증여받았다. 시가로 20억~3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사실 A군 부모도 이 빌딩과 토지를 2005년 선대에게서 물려받았다. 인근 중개업자 K씨는 "건물 임대수익만 매달 1억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며 "대대손손 먹고 살 만한데도 걸핏하면 임차인을 바꾼다"고 혀를 찼다.

월 임대료 1억원 가운데 미성년자인 A군 몫은 5%인 5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267개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졸 정규직 신입사원의 세전 평균 연봉은 3855만원으로 월 321만원에 불과하다. 미성년자가 사회초년생들의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 임대수익을 올리며 금수저 대물림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금수저'들이 빌딩 증여를 어린 나이 때부터 받는 것은 나중에 가격이 올랐을 때보다 세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증여는 실거래가가 아니라 감정평가액이나 기준시가를 적용하므로 매매 때보다 통상 세금을 30~50% 절감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기준 개인이 보유 중인 전체 가로수길 빌딩 134곳 가운데 이런 형태의 상속 또는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등기부 등본상 확인된 곳만 35%인 47곳이었다. 이는 상속·증여로 소유권을 취득한 후 매매한 건물도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또한 이미 헐리고 재건축된 새 건물의 경우 등기부 등본으로는 상속이나 증여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어 이를 포함하면 실제 선대에게서 물려받은 건물이 절반을 웃돌 것이라는 게 이곳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얘기다.

가로수길에서 수십 년째 중개업을 해온 고 모씨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 30년 전부터 빌딩을 소유하면서 대대손손 물려받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건물 소유자가 강남3구에 거주하는 비율은 전체의 70%에 달했다. 건물 5곳 중 중 1곳은 강남 전통 부자촌으로 꼽히는 압구정동 구현대·미성·한양 등 3개 아파트 거주자들로 조사됐다. 수백억 원의 빌딩자산 외에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주택까지 '덤'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대물림되는 이런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이 땀 흘려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상승폭도 가파르다는 점이다.

가로수길에 인접한 건물들의 3.3㎡당 월 임대료는 2008년 15만~20만원에서 2013년 50만원 수준으로 올랐고, 2015년 이후 60만~1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한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가 조사한 가로수길 상권의 월 임대료는 3.3㎡당 129만6980원이었다. 2008년과 비교하면 6~9배나 껑충 뛰었다.

반면 고용노동부 집계 결과 전일제 상용근로자의 연간 임금은 2008년 평균 3083만원에서 2015년 3749만원으로 7년간 21.6% 상승하는 데 그쳤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물림되는 부의 구조는 결국 사회적 자원 배분을 지속적으로 왜곡시키는 원인이 되고 근로의욕을 감소시켜 경제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노동에 의해서 부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경제 전체가 활력이 넘치고 역동성이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중산층들을 상대적 박탈감으로 몰아넣는 것은 임대수입만이 아니다. 이곳의 10년 전 3.3㎡당 건물값은 5000만원 수준. 현재 건물값은 평균 3~5배 상승한 1억5000만~2억5000만원에 달한다. 2008년 35억2000만원에 매매된 건물은 2011년 58억원에, 2006년에 21억원이었던 건물은 2008년 37억원으로, 2013년에는 56억원에 거래됐다. 2010년 39억원에 거래된 또 다른 건물은 2015년 65억2000만원에 다시 팔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임대료 때문에 길게는 10년 이상 상권을 일궈온 상인들이 줄줄이 내쫓기고 있다.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대기업이 아닌 개인 자영업자들이 매달 1000만원씩 하는 임차료를 감당하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김 모씨(42)는 "장사가 안 되면 창업할 때 들었던 투자금이나 권리금을 손해 보게 되고, 잘되더라도 임차료가 올라 계약 갱신을 걱정하는 게 우리 임차인들의 현실"이라고 자조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불황이 길어지면서 점점 근로를 통한 소득격차는 큰 의미가 없어지고 자산격차는 교육격차, 주거격차 등 다중적인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며 "그렇다고 고율세금 등으로 환수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만큼 결국 사회적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계층 사다리를 복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이지용(팀장) / 서태욱 기자 / 연규욱 기자 / 유준호 기자 / 황순민 기자 / 양연호 기자 / 임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