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6. 20:37ㆍC.E.O 경영 자료
“일단 여러분께 경고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항상 유행어를 조심하라고 말씀드립니다. 핀테크도 요즘 유행어가 됐죠. 그래서 저는 요즘 핀테크라는 단어만 들으면 걱정이 먼저 듭니다.”
핀테크 기업의 대명사인 페이팔을 공동창업한 피터 틸은 핀테크 열풍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IT기술이 보수적인 금융산업을 혁신하는 일을 가리킨다. 2월25일 오후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인터넷기업협회, 한국경제신문이 서울 강남구 서울컨벤션에 함께 마련한 공개강연 자리였다.
먼저 피터 틸이 1시간 가량 저서 ‘제로투원’ 내용을 요약해 전하고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센터장이 40분 정도 대담을 이어갔다. 글 머리에 인용한 말은 “핀테크가 중요한 트렌드라고 보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피터 틸은 핀테크라는 단어가 너무 광범위하게 쓰인다고 꼬집었다.
“어떤 범주로 묶으면 실제보다 과장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사실 서로 다른 게 한 범주로 묶이는 거죠.”
금융이 규제 산업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핀테크는 전통적인 금융시장을 발판으로 삼는다. 그래서 핀테크 스타트업도 은행 같은 금융기관 같이 엄격한 규제 앞에 놓이기 십상이다. 피터 틸은 “규제와 감독 규정이 많은 분야에서는 작은 회사가 성공하기 쉽지 않다”라며 “일반적으로 보면 규제 분야에서는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이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터 틸은 핀테크를 마냥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는 금융과 IT가 본질적으로 상당히 비슷하다며 두 분야가 만나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핀테크라는 카테고리가 흥미로운 점은 금융과 IT가 본질적으로 연관성이 높다는 겁니다. 둘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 상품을 다룹니다. 금융도 인터넷도 0과 1로 이뤄지죠. 물론 혁신의 여지도 많습니다.”
성공하려면 독점하라
그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다른 회사가 모방하지 못하는 독점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거나 회사 규모가 누구보다 커서 규모의 경제를 누리는 독점일 수도 있고, 기술적으로 경쟁사보다 한참 앞선 기업일 수도 있다. 다른 이는 모르는 유통채널을 확보하는 일도 독점을 일구는 방법이 된다.
피터 틸은 직접 투자한 핀테크 스타트업 스트라이프를 예로 들었다. 스트라이프는 e쇼핑몰에 간편하게 결제수단을 붙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결제 모듈을 API로 묶은 덕에 웹사이트 개발자는 간단히 코드 몇 줄만 써넣으면 신용카드와 비트코인으로 물건값을 받을 수 있다. 피터 틸은 스트라이프가 유통채널을 차별화해 독점적인 지위를 얻었다고 풀이했다.
“스트라이프의 특징은 개발자 생태계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웹사이트를 개발하는 모든 개발자에게 자사 기술을 쓰도록 설득한 게 스트라이프의 강점이죠. 보통 우리 회사 기술을 쓰라고 설득하려면 회사 최고기술책임자(CTO)나 최고경영자(CEO)를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웹개발자에 접촉해야 하죠. 스트라이프는 웹개발자를 노렸습니다. 그들에게 지지를 얻은 덕에 독점적인 지위를 얻었죠. 그래서 요즘 들어 많은 스타트업이 지불결제 수단으로 스트라이프를 쓰는 겁니다.”
용 꼬리 말고 뱀 머리 되라
차별화된 발상을 재빨리 실현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피터 틸은 “범위를 좁히고 신속하게 이행하고 실천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라”라고 조언했다.
“핀테크 회사가 아무 것도 없는 백지부터 은행을 만들겠다고 할 수도 있어요. 아이디어는 좋더라도 실천에 너무 많이 걸립니다. 은행을 세울 때쯤이면 모방한 경쟁사도 많아질 거예요. 범위를 좁히더라도 신속하고 이행하고 실천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런던에 있는 중산층만 대상으로 하겠다고 좁히는 식으로, 바로 신속하게 사업화할 수 있는 좁은 범위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게 맞을 수도 있어요. 처음부터 큰 회사를 경쟁상대로 보지 말고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소외된 시장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스타트업은 규제에 적응하는 수밖에
한국은 핀테크 불모지다. 정부는 광범위하게 금융 관련 산업을 규제하고 보수적인 금융업계는 스타트업에 손내밀지 않는다. 임정욱 센터장은 이런 분위기를 타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피터 틸은 창업자는 규제 환경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어떤 규제 환경을 갖고 있는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창업자가 규제환경을 바꿀 수는 없으니 분위기를 파악해야 합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 산업 규제가 심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몇십만 달러만 있으면 새 회사를 차릴 수 있죠. 반면 생명공학 분야는 규제가 아무 심합니다. 신약을 하나 만드는 데 10억달러가 필요하죠.”
그는 창업자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인 규제환경을 놔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의학 분야가 규제가 심하기 때문에 의학 회사는 별로 없는 반면 규제가 덜한 비디오게임 회사는 많아지는 겁니다. 규제 환경은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신생기업 한 곳이 혼자 규제환경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적응하고 어떤 사업이 가능한지 파악해야 합니다. 규제가 완화되는 분위기라면 신생기업이 뛰어들 여지가 있을 겁니다. 아주 심하게 규제되는 산업이면 안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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