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몰고 올 ‘죽음의 계곡’, 새 분배 시스템으로 넘어라

2017. 2. 28. 20:09C.E.O 경영 자료

인공지능이 몰고 올 ‘죽음의 계곡’, 새 분배 시스템으로 넘어라

    

기사입력 2017.02.24 오전 4:43
최종수정 2017.02.24 오전 9:44

[한국일보-여시재 공동기획] 4차 산업혁명, 다 바꿔야 산다


<1>일자리의 위기, 분배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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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오는 4차 산업혁명은 먼 바다에서 서서히 몰려오는 물결 수준이 아니라 순식간에 몰아치는 거센 파도나 쓰나미 같은 혁명이 될 공산이 크다고들 한다. 사람들에게 이 파도가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다가오는 건 언제 내 일자리를 빼앗아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수많은 분석과 연구가 쏟아지지만,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지 않은 건 누구도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인공지능(AI) 때문에 인간의 모든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극단적 공포와 “컴퓨터에 사람의 상식이라는 것을 가르치기는 어렵다”(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긍정론이 맞선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 일자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슴푸레하지만 4가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봤다.


①일자리 늘어날까 줄어들까

기존 일자리들이 사라지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니 괜찮다는 주장은 허상에 가깝다.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산업분야에 미치는 영향과 쟁점’ 보고서에서 “실업의 당사자와 추후 새롭게 만들어지는 직업을 갖게 되는 이는 동일하지 않으며, 두 집단 사이에 최대 한 세대(30년)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는 단기 직업교육을 시켜 전직을 지원하는 형태로는 한계가 있으며, 어려서부터 배워서 몸에 익혀야 하는 만큼 한 세대 가량은 ‘죽음의 계곡’을 건너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각종 연구에서는 없어지는 일자리가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2배를 웃돌 거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2020년까지 15개 국가에서 일자리 716만개가 사라지고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202만개 정도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역시 현재 구현된 기술 만으로 전체 노동의 49%를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설령 일자리 양이 유지된다고 해도 일자리의 질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계에 드는 비용보다 낮은 임금을 감내하고 푼돈이라도 벌겠다는 식의 일자리가 많아져 일자리 질이 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미국의 아마존 등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못한 돈을 받고 개인 프로필 등 데이터 수집 등 (인공지능까지 투입할 필요 없는)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열악한 일자리가 상당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②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직종은

인공지능의 확산으로 어떤 직종이 가장 많이 사라질지를 두고 무수한 전망이 나온다. 주목되는 점은 오히려 육체노동자의 일자리 위협이 더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인공지능과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선망의 직업들인 변호사, 법무사, 회계사, 의사, 기자, 금융인 등 전문직이 사라진다는 것이 옥스포드 대학의 예측”이라며 “오히려 행동이 수반되는 로봇의 상용화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육체노동의 대체는 전문직보다 늦어질 것이라 한다”고 밝혔다.

목수 등 육체노동을 대체할 로봇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비용 대비 효율 측면에서 인간의 노동이 더 시장가치가 있는 직종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삼열 교수는 “예를 들어 전기배선, 목수 등의 기술은 자동화가 어려워 높은 부가가치를 가질 것이고 반대로 회계사, 의사 등은 자동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부분의 공상과학(SF) 영화에는 의사가 등장하지 않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전문화 시장의 몰락을 뜻한다. 나날이 성능이 향상되는 구글 번역서비스가 증명하듯 동일한 업체가 국경과 문화권을 넘어 일괄적으로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세상이 될 거라는 얘기다. 프랭크 레비 MIT대 교수는 “판례 분석 등 관련 정보를 찾는 법률 분야의 많은 일상업무들이 AI의 자연언어 습득으로 잠식당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 정해진 유형의 답이 없는 고도의 서비스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반대 의견도 물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청소원, 주방 보조원, 매표원과 복권 판매원 등 단순 노무직 종사자는 실직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회계사, 항공기 조종사, 투자ㆍ신용 분석가 등 전문직 종사자는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분석이 180도 엇갈리는 건, 뒤집어 보면 육체 노동자와 전문직 어느 쪽도 4차 산업혁명의 공세를 비껴가기 어렵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③선진국 vs 개도국, 대기업 vs 중소기업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공장은 낮은 임금을 찾아 개발도상국에 자리를 잡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기계가 생산한다면 소비자와 가까운 선진국에 공장을 짓는 편이 물류비용 등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이 같은 리쇼어링(국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자국 기업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현상)의 셈법이다. 그리고 리쇼어링은 선진국과 저개발국 간의 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 예로, 그간 중국 등 신흥국에 생산시설을 뒀던 세계 2위 스포츠용품 업체인 아디다스는 지난해 자국 독일에서 공장을 차렸다. 이 ‘스피드 팩토리’는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하면서도 100% 로봇 자동화 공정을 갖추고 있어 상주 인력은 10여명에 불과하다.

개발도상국은 새로운 직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아 산업구조의 변화에 노동시장이 적절히 반응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개발도상국은 젊은이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높은데도 이들에게 적절한 직업이 제공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저개발국의 대규모 실업은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나온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 있어서도 일단 인공지능, 자동화 등에 투자여력이 있는 대기업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인공지능이 전기와 같은 인프라 형태로 제공된다면 자유로운 인공지능 플랫폼 생태계에서 중소기업들의 혁신이 활발히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다양한 앱들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게 이삼열 교수의 진단이다.


④새로운 일자리 분배의 규칙은

4차 산업혁명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가정할 수 있는 미래는 노동자 없이, 기업과 소비자만 존재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근로자의 지위를 잃은 소비자는 인공지능 공장들이 만들어내는 물건을 살 돈이 없다. 이재웅 전 다음 대표가 “기본소득을 도입하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붕괴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전환기의 고통은 사회적 약자에게 훨씬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술 친화적이거나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에 익숙한 사람과 기술에서 소외된 계층 간의 양극화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중산층이 몰락해 민주주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4차 산업혁명에 새로운 분배의 규칙이 수반되어야 한다면, 연착륙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권재철 한국고용복지센터이사장(전 청와대 노동비서관)은 “기술을 독점한 소수의 기업 등 극소수에게만 혜택이 몰리지 않도록 노동 친화적인 혁명을 정부와 기업, 근로자가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의 개념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인진 교수는 “기술 발전은 인간의 잉여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면서 “지금처럼 경제적 이윤 창출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에 혜택을 줄 수 있는 공적인 활동까지 폭넓게 노동으로 인정하고 보상해준다면 잉여 노동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엔 재원이 필요한 만큼 로봇세 등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윤 교수는 덧붙였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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