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사다리차가 남긴 의문, "4년 전 오류가 반복됐다"

2017. 12. 27. 05:35이슈 뉴스스크랩

굴절사다리차가 남긴 의문, "4년 전 오류가 반복됐다"

[제천 화재] 2006년 제작 제천소방서에 첫 배치, 고장 혹은 조작 미숙?

17.12.26 20:27l최종 업데이트 17.12.26 20:54l

     

 21일 제천 화재 현장에서 제천소방서 굴절사다리차가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작동을 하고 있다
 21일 제천 화재 현장에서 제천소방서 굴절사다리차가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작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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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명이 숨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소방서 측이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러 의문 중 하나는 굴절사다리차의 늑장 작동이다. 굴절 사다리차는 이날 시민 한 명을 구조했지만, 제때 제대로 작동했다면 더 많은 인명을 구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굴절사다리차는 오후 4시 5분 현장에 도착했다. 첫 출동지령이 내려진 지 11분만이었다. 비교적 빠르게 출동한 셈이었다.

하지만 도착 후 건물 앞면에 1차 자리를 잡는 데만 8분(오후 4시 13분까지)이 걸렸다. 막상 자리를 잡았지만, 사다리를 올리는데 또 실패했다. 고압선이 있는 걸 미처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굴절사다리차가 구조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있는 위치보다 훨씬 낮은 곳에 멈췄다
 굴절사다리차가 구조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있는 위치보다 훨씬 낮은 곳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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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균형 잃은 구조 바구니(바스켓)... "중대 과실"

굴절사다리차는 고압선을 피해 제 위치를 잡기 위해 다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주차 차량 3대를 시민들의 도움으로 이동 조치한 후 2차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번엔 균형이 맞지 않아 제자리를 잡는데 애를 먹었다. 이러는 사이 또 시간이 흘렀다.

소방당국은 다시 위치를 잡고 사다리를 올리기 시작한 시간이 오후 4시 32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1차 자리를 잡는데 8분, 자리를 옮겨 잡고 사다리를 올리기까지 22분 등 모두 30분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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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제천소방서 측은 여러 언론에 "굴절 사다리차의 수평 유지 장치를 설치하는데 필요한 반경 7∼8m의 공간이 나오지 않은 때문"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복수의 전문업체 관계자의 얘기는 다르다. 한 소방특수차 전문업체 관계자는 "굴절사다리차는 비상시에는 여유 공간이 없어도 곧바로 아웃트리거(차체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는 일)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라며 "비상시에 왜 별도 공간마련이 필요 없는 수직 아웃트리거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단 그렇게 해서 어렵게 굴절사다리차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약 한 시간 가까이 8층 난간에 매달려 있던 한 시민이 구조의 손을 애타게 흔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37m  높이까지 올라가는 사다리가 약 6층 높이에서 멈췄다. 8층에 있던 시민은 난간을 타고, 바스켓(사람을 안전하게 구조하게 태우는 구조 바구니)이 멈춘 곳까지 기어내려 와야만 했다.

겨우 구조를 끝낸 시간은 오후 5시 18분이다. 출동에서부터 시민을 구조하기까지 모두 1시간 13분이 걸렸다. 굴절 사다리차가 설치가 지연되자, 그 사이 민간 사다리차가 달려와 3명을 구조했다. 민간사다리차가 3명을 구조하는 데 걸린 시간은 오후 4시 58분 부터 약 6분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방특수차 전문업체 관계자는 "처음부터 사다리를 너무 낮은 각으로 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럴 때에도 수동으로 전환해 각도를 올리면 된다"고 말했다.

 바스켓
 바스켓(구조 바구니)에 구조대원을 태운 굴절사다리차가 건물 위로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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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이 심하게 균형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구조 영상을 보면 바스켓이 기우뚱 기울어 있다.

영상을 본 같은 소방특수차 전문업체 관계자는 "바스켓이 균형을 잃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어떤 경우에도 수평을 유지해야 한다"며 "균형을 잡아주는 센서 밸브를 작동하지 않았거나 고장이 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문가는 거듭 "전체적으로 보면 굴절사다리차가 고장이거나 담당 소방관들의 작전 능력 또는 훈련 부족으로 인한 조작 미숙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현직소방관도 "바스켓이 균형을 잃는 것은 중대 과실 중 하나"라고 밝혔다.

4년 전 인근 고층아파트 화재 때는 소방수 안 나왔다
 지난 2013년 10월
 지난 2013년 10월, 이번 화재가 발생한 하소동 스포츠센터 부근에 있는 아파트 6층에서 있었던 화재 현장. 당시에도 이번 스포츠센터화재에 투입됐던 같은 굴절사다리차차가 불을 끄기 위해 출동했지만 정작 소방수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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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굴절사다리차는 지난 2013년 10월, 이번 화재가 발생한 하소동 스포츠센터 부근에 있는 아파트 6층에서 있었던 화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제천인터넷뉴스> 최태식 기자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굴절사다리차가 화재 현장에 도착해 사다리를 올렸지만 정작 소방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굴절사다리차는 제 구실을 못 하고, 대기해 있던 다른 소방차들이 지상에서 소방수를 쏘아 뒤늦게 불을 끄면서 오히려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 기자는 "비슷한 곳에서 있었던, 4년 전 오류가 반복됐다고 생각한다"며 "소방인력과 장비도 확충해야 하지만 동시에 화재진압과 구조과정에서의 오류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굴절 사다리차는 지난 2006년 제작돼 제천소방서에 첫 배치됐다.

이와 관련 소방청 합동조사단은 각 분야 24명의 전문가로 '소방합동조사단'을 구성, 내달 10일까지 제천소방서를 상대로 화재진압과 구조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의문에 대한 조사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