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묵은 간장 이야기​

2018. 1. 13. 22:33생활의 지혜



60년 묵은 간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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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 1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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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묵은 간장 이야기​

오래 전의 일이다. 해월(海月) 선생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오래 묵은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이 몸에 좋다는 얘기를 했다. 30년 묵은 간장으로 간암을 고친 이야기, 오래 묵은 고추장으로 위장병을 고친 이야기를 들려 주었더니 매우 재미있어 했다.

 

해월 선생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기인이다. 그는 사람을 사귀는데 천재다. 그한테는 수 천인지 수 만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친구가 있다. 장관, 국회의원, 재벌 총수, , 목사, 교수, 교주, 도사, 의사, 군인, 시골 농부, 건달, 거지, 학자, 장사꾼, 점장이, 학생... 지위고하(地位高下) 빈부귀천(貧富貴賤) 남녀구별(男女區別)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나기만 하면 5분 안에 그에게 홀딱 반해 버린다. 특히 도사, 교주, 대사(大師)라고 하는 나부랭이들이 그한테는 제일 좋은 밥이다. 혹세무민에 도통한 시이비 교주과에 속한 인간들이 진짜 도사님의 한 마디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한 번 만나기만 하면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상대방의 외모, 직업, 관심사, 고향, 족보, 습관, 가족사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싹 알아내어 머릿속에 외워 두고는 평생 잊지 않는다. 놀라운 기억력이다. 언젠가 33년 전에 한 번 잠깐 만났을 뿐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33년 전 몇 월, 몇 일, 몇 시에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이며 고향은 어디이고 아버지 이름은 무엇이며 본향은 어디이고 어떤 말을 어디까지 했는지를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해월 선생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면 책을 몇 권 써야 될 판이니 그 애기는 나중에 하는 것이 좋겠다.


 

해월선생이 말했다.

 

오래 된 간장이 간에 좋다고 했지요? 나한테 60년 묵은 간장이 많이 있어요. 6.25 전쟁 때 담근 것이라고 하니까 60년도 넘었을 거요. 내가 지난 해 충청도 공주 부근에 있는 어느 마을에 살았는데, 그 마을이 참 묘한 곳이오. 무언가 성인이 날 만한 자리가 틀림 없어요. 옛 비결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어요. 내가 살던 집에, 지금도 내 짐들의 일부가 거기 있어요. 그 집 뒤에 장독대가 있는데 큰 항아리에 간장이 하나 가득 들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60년이 넘은 것이오. 6.25 전쟁 때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간장을 담가 놓고 이사를 가 버린 거지. 그리고 그 집이 한 십 년 비어 있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살고, 또 그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그 뒤로는 몇 십년 동안 비어 있던 집인데 내가 방 하나를 약간 수리를 해서 살았던 것이오. 그런데 다른 것들은 다 없어져도 간장 항아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오.”

 

그래요? 놀랍군요. 그 간장을 갖고 옵시다.”

 

며칠 뒤에 날을 잡아 간장을 가지러 갔다. 공주 유구 부근의 어느 산 속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에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골짜기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더니 막다른 곳 안 쪽에 마을이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몇 채 있었다. 과연 산도 아니고 평야도 아니며 햇볕이 잘 들고 비슷한 높이의 야트막한 산들에 둘러사여 있어서 숨어살기에 좋은 복지라고 할 만했다. 우리 조상들이 이른바 흔히 말하는 십승지의 하나로 손꼽았던 곳이다.

 

간장독은 허물어져 가는 외딴 집 뒤 해묵은 신갈나무 그늘에 있었다. 열 개쯤 되는 항아리의 뚜껑을 차례대로 하나씩 열어 보았다. 오래 전에 말라붙은 된장, 썩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곡식, 소금.... 그리고 간장이 들어 있는 독이 두 개 있었다. 두 개가 모두 열 말쯤 들어가는 큰 항아리였는데 간장이 사분지 일쯤 들어 있었다. 바가지로 휘저어 보니 바닥에 있는 장석이 버걱거렸다. 한 모금 떠서 맛을 보았다. 빛깔은 검고 맛은 짜고 꿀처럼 진득거렸다. 뒷맛은 달고 특유의 쉰 듯한 향기가 났다. 찾았다. 이것이 진짜 오래 된 간장이다.

 

“60년 묵은 간장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 간장으로 죽어가는 사람 여러 명을 살릴 수 있겠는데요.”

 

그럼 이것을 갖고 가서 한 홉에 한 천만원씩 받고 팔까요?”

 

파는 건 나중에 하고 해월 선생님이 요즘 간이 나빠진 것 같으니 가져가서 좀 드시지요.”

 

그래야겠소. 요즈음 술을 많이 마셨더니 몸이 좀 피로하고 가끔 설사를 해요. 간이 퉁퉁 부었다고 하는데 죽을 병에 걸렸다고 할까 봐서 병원에는 안 가봤소. 멀쩡한 사람이 병원에 가서 죽거나 병신이 되어 나오니 병원이 병 고치는 데가 아니라 병을 만드는 곳이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모두 암에 걸려서 병원에 갈 때는 멀쩡하게 걸어서 들어가더니 나올 때는 전부 죽어서 나옵디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먹지요?”

 

조금씩 물에 타서 수시로 마시면 됩니다. 반 종지씩 그냥 마셔도 되구요.”

 

나는 간장을 한 말 짜리 물통에 모두 퍼담았다. 모두 두 말쯤 되었다. 본래 항아리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르고 졸아들어서 사분지 일쯤으로 줄어든 것이리라.

 

이렇게 해서 나는 60년 묵은 간장 두 말을 갖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한 달쯤 뒤에 해월 선생을 만났다. 그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아흔아홉칸 짜리 큰 한옥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 간장 말이오. 무언가 묘하고 기이한 효력이 있는 것이 틀림 없어요. 집안 정리를 좀 열심히 했더니, 무거운 돌도 좀 나르고 장작도 좀 패고... 그랬더니 몹시 피곤해요. 그래서 방에 들어가 누워서 좀 잤어요. 한 두어 시간 달게 자고 나니까 배가 고팠어요. 나가서 밥을 차려 먹을까 하다가 마침 그 간장 생각이 나서 그래 이것을 마시면 좀 기운이 나겠지 하고는 맥주잔으로 한 잔을 따라서 마셔버렸어요.”

 

네에? 소줏잔이 아니고 맥주잔이요?”

 

내 말을 마저 들어봐요. 한 잔을 마시고 나니까 열이 약간 오르면서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와 일을 했어요. 그 때가 저녁 열 시쯤 되었을 거요. 하늘에 달이 훤하더라구. 그런데 배도 고프지 않고 뭔가 술에 약간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틀림없이 그 간장을 마신 덕분인 것 같아서 이게 좋은 것이면 확실하게 체험을 해 보자 하고서는 방에 들어가서 맥주잔으로 한 잔을 더 마셔버렸어요.”


 

그럴 수가! 그 짠 것을. 그래도 괜찮았나요?”

 

괜찮다니! 죽을 뻔 했소. 열이 확 오르면서 독한 술을 한 항아리 퍼 마신 것처럼 취하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야지. 가슴이 답답해서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마루 밑에 쓰러졌어요. 그리곤 의식을 잃었는데 참 묘한 꿈을 꾸었어요. 오색 구름이 나를 둘러싸고 있고 주변에 금빛 찬란한 옷을 입은 여러 사람이 보이는데 그 중에는 운림선생도 있었어요. 아무튼 상서로운 꿈이었소. 기이한 꿈에서 깨어나니 마당에 있는 소나무 밑이었는데 지금이 아침인가 하고 시간을 보니 오후 여섯 시였소. 거의 스무 시간을 간장에 취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잠을 잤던 것이오. 그런데 말이오. 사타구니 밑이 묵직해서 보니 세상에 똥이 바지 안에 가득해요. 내가 시커먼 똥을 한 양동이나 쌌던 거요. 장 속에 있던 몇 십년 묵은 숙변이 한 번에 싹 빠져 나온 것이라. 마침 그 집에 온 종일 나 혼자 있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오기라도 했더라면 큰 망신을 당할 뻔 했어요.”

 

굉장하군요. 과연 묵은 간장이 효과가 좋지요?”

 

그런데 그 명현반응이랄까 어질어질한 취기가 한 사흘은 가더라구요. 몸은 가벼워지고 개운해진 것 같은데 약간 열이 올랐다가 오슬오슬 춥고 그러다가 다시 어지럽고... 숙변이 확 빠지니까 보다시피 배가 홀쩍해졌고 몸무게가 8킬로그램이 줄어버렸어요. 사흘이 지나니까 정신이 말똥말똥해졌어요. 그 뒤로는 밥맛이 꿀맛이고 그 전보다 일을 서너 배를 더 많이 해도 전혀 피곤하지를 않아요. 전에 내가 산삼을 여러 뿌리 먹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산삼보다 열 배는 나은 것 같소.”

 

그런데 몇 년 뒤에 그 60년 묵은 간장이 5년 전에 약재를 보관하던 창고에 불이 나서 모두 타서 없어져 버렸다. 다른 50억 원어치가 넘는 희귀 약재들과 함께. 아내는 다른 약재들이 타서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 간장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만 한 시간을 목 놓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