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27. 18:40ㆍ건축 정보 자료실
[중국인 장악한 건설인력시장] '오야지' 90%가 중국동포.. 중국인 거느리며 군림
이형민 조민아 기자 입력 2018.03.27. 05:06 수정 2018.03.27. 10:15
글 싣는 순서
<상> 건설현장 불법 무풍지대
<하> ‘남구로역 인력시장’ 르포
국내서 기반 다진 중국동포 대부분 불법 인력업체 운영… 中서 싼값에 조달, 현장 투입
신분증 도용 합법 체류 위장, 팀 이뤄가며 다수의 횡포… 한국인 폭행 등 공권력 무시
지난해 5월 인천 송도의 대형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하도급 업체 직원 A씨(41)는 조선족 ‘오야지’(공사현장 인력공급업자)가 이끄는 중국인들이 한국인 목수를 집단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국인 목수가 작업을 하는 곳 바로 위층에서 중국인 철근팀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목수가 “왜 이렇게 쾅쾅대며 시끄럽게 작업을 하느냐”고 따지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철근팀 중국인 노동자 스무 명이 우르르 몰려가 한국인 목수를 폭행했다. A씨는 “10여년 여러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이 정도 다툼은 비일비재하게 목격했다”며 “타지에 온 이들이 더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외동포 포용정책의 일환으로 중국 조선족의 방문취업이 허가된 2006년 7월 이후 조선족의 국내 정착이 본격화됐다. 12년이 지난 현재 건설현장 인력시장은 사실상 이들이 장악했다. 이들은 조선족만 아니라 한족 불법체류자들을 관리하면서 건설현장을 불법천지로 만들고 있다.
한국에서 경험을 쌓은 조선족들은 더 이상 직접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의 일에 나서지 않는다. 오야지라고 불리는 중간관리자로 변신해 국내에 들어온 중국인들을 건설현장에 보내는 인력 공급업자 역할을 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인 오야지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오야지의 90%는 조선족들”이라고 설명했다.
오야지들은 이른 새벽 서울 구로구의 남구로 인력시장에서 값싼 중국인 인부들을 봉고차에 실어 건설현장에 배치한다. 업계관계자들은 이를 ‘뿌린다’고 표현한다. 대부분 불법체류자들이다. 중국인 커뮤니티 안에서 알음알음 소개로 고향사람들을 건설현장 일자리에 ‘꽂아’ 주는 일도 잦다.
불법체류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문취업 비자를 받은 합법적인 조선족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 사이에 임금 격차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인 인부의 일당이 20만원이면 숙련된 조선족 인부는 18만∼20만원이다. 오야지 입장에선 가격경쟁력이 없는 셈이다. 반면 불법체류 신분인 한족 인부는 8만∼10만원의 일당에도 기꺼이 일을 하러 나선다.
한국어도 모르고 한국 물정에도 생소한 한족 불법체류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이들이 조선족 오야지다. 조선족 오야지들은 중국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통하고 현장상황에 익숙하다는 강점을 내세워 인력시장을 장악했다. 조선족들 입장에서도 현장잡부로 직접 일하는 것보다 오야지가 되는 게 훨씬 이익이다. 취업비자를 받은 합법체류자라 해도 비자에 허용된 업종에서만 일할 수 있는데 오야지들은 이 같은 규제를 가볍게 무시한다.
17년 오야지 경력을 지닌 조선족 B씨(48)는 “함께 일하는 이들은 보통 10∼20년 손발을 맞춰온 사람들”이라며 “고향인 지린성 출신 사람들에게서 소개받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B씨는 “세금 때문에 오야지들은 사업자등록을 꺼린다”며 “오야지 100명 중 99명은 사업자등록 없이 불법으로 인력 공급업체를 운영한다”고 털어놨다.
조선족 오야지들은 같은 조선족 출신 노동자보다 한족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건설 일자리가 없어 쉬고 있다는 조선족 노동자 변모(54)씨는 “오야지들이 합법적인 조선족 노동자들을 하루 써서 동포 신분증을 확보하면 그 다음 날은 이들의 신분증을 도용해 불법 노동자들을 합법 신분으로 위장한다”며 “숫자와 이름만 맞추면 되니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족 출신 목수 박모(57)씨는 “오야지들 가방을 보면 건설회사와 고용노동부에 낼 등록증이 한 뭉치씩 나온다”며 “오야지가 중국 한족들을 불러놓고 ‘오늘은 조선족 누구로 일해’라는 식으로 이름을 정해준다”고 말했다.
불법으로 한국에 들어온 중국 노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조선족 오야지와 한 팀이 돼 공사현장을 전전한다. 현장에서는 이들이 다수가 되다보니 오히려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텃세를 부리기도 하고 공권력을 우습게 여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10년간 직업소개소를 운영한 성모(56)씨는 “한 오야지와 오랫동안 함께 일한 불법체류 중국인이 현장반장까지 하는 경우도 봤다”며 “겉보기에는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처럼 보이지만 신분증을 위조한 것일 뿐이고 이들의 뒤를 오야지가 봐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회사 직원 김모(30)씨는 지난해 말 경기도 고양의 한 건설현장에서 흉기까지 동원된 사건을 목격했다. 불법체류 중국인 노동자들끼리 작업 중 싸움이 붙어 작업용 함석가위로 상대를 찔렀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건설회사 입장에선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과태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조선족 오야지가 대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는 선에서 무마했다. 건설노동자 전모(55)씨는 “폭행 신고를 받고 경찰이 공사장에 출동해도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도망쳐버리면 잡을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경찰에 체포돼 강제추방되는 일도 크게 겁내지 않는다. 추방된 이들이 불법적인 수단으로 국내에 다시 들어오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형민 조민아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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