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읽다]①구멍뚫린 빌딩의 비밀

2018. 4. 26. 22:26C.E.O 경영 자료



[과학을 읽다]①구멍뚫린 빌딩의 비밀

최종수정 2018.04.23 08:06 기사입력 2018.04.19 06:30


중국 상하이 세계금융센터(오른쪽)는 최고층부에 커다란 바람구멍을 만들어 빌딩풍을 줄였고, 일본 도쿄의 NEC 슈퍼타워(왼쪽)는 건물 중간에 구멍을 뚫어 바람이 통하도록 만들었습니다.[사진=NEC홈페이지 및 유튜브 화면캡처]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높은 빌딩을 건설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바람입니다. 높이 250m 이상,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은 지진보다 바람의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약 5층 건물 높이인 지상 20m에서 초속 5m의 바람이 분다면, 지상 250m에서는 초속 12m의 바람이 붑니다. 이 바람은 위로 올라 갈수록 더 세져서 100층 높이인 지상 500m에서는 태풍급 이상의 강풍이 분다고 합니다.

이 바람은 빌딩에 바람이 부딪히면서 지상이나 빌딩의 주변에 아주 강한 바람을 일으킵니다. 바람이 빌딩에 부딪히면 위로 솟구치거나 아래로 강하게 내려 꽂히는데 이 바람이 아주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두 빌딩 사이의 좁은 통로로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풍속이 엄청나게 빨라지는데 이를 '벤츄리효과(Venturi Effect)'라고 합니다. 

벤츄리 효과에 의해 강하게 부는 바람을 '빌딩풍(Building Wind)'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빌딩풍을 '먼로풍(Monroe Wind)'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의 스커트가 바람에 날리는 장면에서 따온 명칭입니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빌딩풍으로 인한 자동차 전복이나 행인 사망 사고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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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에서는 초고층 건물을 짓기 전에 빌딩풍 환경영향 평가를 받습니다. 빌딩풍으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면 건물의 높이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초고층 건물이 바람에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고, 빌딩풍의 영향을 덜 받도록 하는 과제를 하나 더 안고 설계를 해야 합니다. 

건축가들이 바람을 다스리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설계법은 초고층 건물에 바람구멍을 뚫거나 스파이럴(나선형) 형태로 설계하는 것입니다. 또 사각 건물의 경우 상층부에서 지하로 연결한 중심축에 커다란 추(댐퍼)를 매달아 건물의 흔들림을 추의 무게가 흡수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건물 모서리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어 바람이 잘 비껴가게 하거나 높이 올라 갈수록 건물의 단면이 줄어들도록 하는 방식은 고전적이지만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유선형의 물고기나 잠수함이 물의 저항을 덜 받는 것처럼 건물의 모서리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면 바람으로 인한 진동을 10~2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는 탑을 쌓듯 올라갈수록 면적이 점점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뾰족탑만 남은 형태고, 국내 최고층빌딩인 롯데월드타워는 원뿔형 건물입니다. 이런 모양의 건물들이 바람의 저항을 가장 잘 이겨내기 때문에 초고층 건물 설계에 많이 적용됩니다.[사진=롯데건설 홈페이지 및 유튜브 화면캡처]


초고층 빌딩일수록 원뿔 모양이 많고 건물이 높아질수록 건물의 단면이 줄어드는 것은 '테이퍼링 효과(Taperring Effect)'를 응용한 것입니다. 테이퍼링 효과는 위로 올라 갈수록 바람이 심해지는 만큼 바람의 영향을 받는 건물의 단면을 줄여 바람에 덜 흔들리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국내 최고층 아파트 중 하나인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위에서 보면 단면이 세잎 클로버처럼 보입니다. 위로 올라가면서 이 잎이 하나씩 떨어져 최고층부에서는 잎이 하나만 남게 되는데 이로 인해 바람에 의한 진동이 20~50% 정도 줄었다고 합니다. 

162층에 높이 828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인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는 타워팰리스보다 잎 사귀가 더 많은 형태입니다. 탑을 쌓듯 올라갈수록 면적이 점점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뾰족탑만 남게 됩니다. 국내 최고층빌딩인 123층 555m의 롯데월드타워도 올라갈수록 뾰족탑 형태로 변합니다. 이런 모양의 건물들이 바람의 저항을 가장 잘 이겨내기 때문에 건축가들이 설계에 많이 적용합니다. 

추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초고층 빌딩은 101층 508m 규모의 대만 타이페이101 입니다. 이 건물에는 직경 6m에 660톤(t)짜리 강철공이 4개의 로프에 매달려 87~88층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장치는 건물의 최대 진동치를 3분의 1 정도 감소시킵니다. 

동양권에서는 '복이 흐른다'거나 '재물이 빠져 나간다'는 등 풍수지리적 이유로 건물에 구멍을 뚫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으나 이제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하기 위해 바람구멍을 뚫습니다. 

중국 상하이 세계금융센터는 101층 492m의 높이인데 최고층부에 커다란 바람통로를 만들어 빌딩풍을 줄였습니다. 일본 도쿄의 NEC 슈퍼타워빌딩은 빌딩풍을 막기 위해 최적화된 건물입니다. 이 빌딩은 건물 중간에 3층 높이의 전 층에 구멍을 뚫어 바람이 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강하는 강한 빌딩풍을 이 바람통로로 유도해 강력한 빌딩풍이 지상에 도달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 건물들은 단순히 빌딩풍을 없애기 위해 대형 건물에 바람구멍을 뚫었지만 최근에는 빌딩풍을 건물의 에너지로 이용하기 위해서 바람구멍을 뚫기도 합니다. 빌딩풍도 잡고, 자연 에너지로도 활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