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통이 전한 北·中 밀무역 실태
몇 해 전 겨울 양강도 혜산이 마주 보이는 지린성 창바이(長白)를 가본 적이 있다. 20~30m 남짓한 압록강 상류 건너로 혜산시 주택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북·중 밀무역의 중심지라는 말이 실감 났다. 북·중 접경의 대북 소식통은 최근 서울에 있는 기자에게 "이 일대가 밤이면 밀무역 천국으로 변한다"고 전했다. 올 초만 해도 '못 하나 못 들어간다'고 하던 중국의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면서 밀무역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북 건국 70년인 9·9절을 앞두고 물동량이 더 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기자가 서울에서 국경의 대북 소식통, 밀무역꾼과 접촉하는 탈북자 등에게 올해 밀무역 실태를 물어봤다.
◇어떻게 접촉하고 운반하나
운반은 주로 뗏목(배)을 이용한다. 트럭 타이어 튜브를 세 개쯤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올리면 '밀수 뗏목'이 된다. 식량처럼 부피와 무게가 많이 나가면 튜브를 더 연결하거나 뗏목을 서너 척 붙이는 방법을 쓴다.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쌀 5t까지 나를 수 있다. 5~6명이 얕은 곳을 따라 뗏목을 밀면서 건넌다. 강폭이 확 좁아지는 지역에선 양쪽에 밧줄을 걸어 옮기기도 한다. 오토바이를 장대에 통돼지처럼 꿰어 두 사람이 메고 건너는 경우도 있다. 젖은 부품은 분해해서 말린다고 한다. 겨울에는 썰매를 쓴다. 뇌물만 주면 강변 철길을 달리는 열차도 세울 수 있다. 잠시 정차하는 동안 밀수품을 싣고 내리는 업자도 있다.
자동차 자체도 밀수한다. 두만강 상류인 대홍단군에 삼장이란 지역이 있는데 평소 수심이 무릎 정도다. 차를 몰고 건널 수 있다. 건너면 곧바로 북한 도로와 연결된다. 북·중 자동차 밀수의 대부분이 여기서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차량 밀수는 북한 당국이 직접 개입한다. 북 경비대가 상부 지시에 따라 차량을 받는다고 한다. 대홍단군과 인접한 함북 연사군 일대도 차량 밀수가 가능하다.
◇무엇을 거래하나
북이 파는 물품 중에는 금·은·동이나 규석·몰리브덴 같은 희귀 금속류가 많이 남는다. 혜산에는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금붙이를 산소 용접기로 녹여 금괴를 만드는 업자들도 있다. 잣·들쭉 같은 산열매나 약초, 담배도 주요 수출품이다. 중국 사람들이 북 농산품을 무공해라고 좋아한다. 북한 쌀이 중국 쌀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아편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특수한 배경이 있어야 한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품목은 남한 시장에서 파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TV·쌀·속옷·지우개…. 북이 자체 소비재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다양한 시장 수요를 맞추기에는 어림도 없다. 만성적 전력 부족 때문에 태양광 전기판도 인기다. 낮에 충전해 밤에 쓴다. 김정은이 과시용 건설을 많이 하면서 건축 자재와 마감재도 많이 들어온다. 예전에는 시멘트·철근·목재만 있으면 건물을 올렸지만 요즘은 요구 수준이 올라가 타일·욕조·조명·대리석 등이 필요하다. 북이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품목일수록 돈이 된다.
특히 식량·비료 같은 전략 물자는 당국이 직접 밀수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족하면 국경 지역의 각 도(道)·군(郡)에 할당량을 내리거나 민간 밀수를 단속하지 않는 방법으로 메운다. 북 당국 차원에서 밀수하는 유류(油類)와 별개로 민간에서 쓰는 석유는 중국 측에 주문만 하면 20L짜리 플라스틱 통에 담겨 곧바로 들어온다. 북은 평양·원산·청진 정도를 제외하면 주유소가 없다. 개인 집에서 비공식적으로 파는데 판검사도 여기서 석유를 구한다고 한다.
◇결제와 유통은 어떻게 하나
대부분 중국 돈(위안화)으로 결제한다. 북한 돈은 사용되지 않는다. 소규모 보따리상을 제외하고 물물교환도 거의 없다. 신용이 쌓이면 물건을 먼저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밀무역 특성상 '현금 대 물건'으로 거래된다. 북한 물건을 넘기고 현금을 받은 뒤 중국 쪽에서 사야 할 물건이 있으면 다시 돈을 주고 구매를 요구한다. 거래는 최소 3배가 남아야 한다. 뇌물, 운송비 등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중국 쪽도 마찬가지다. 북에서 중국으로 넘길 때 3배, 그 돈으로 중국 물건을 사서 들여오면 다시 3배가 남는다고 한다. 밀무역으로 '돈주'가 된 사람이 적지 않다. 혜산에는 자가용은 물론 와인 냉장고까지 갖추고 사는 업자까지 있다고 한다.
개인 밀수업자의 경우 트럭은 있지만 창고까지 갖추지는 못한다고 한다. 언제 압수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은 기업형 밀수가 생계형 소규모 밀수업자를 압박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국에 팔 물건을 전문으로 모으는 '데꼬(중개인)'와 들어온 밀수품을 품목별로 분류해 북 전역의 시장으로 나르는 '데꼬'가 유통을 책임진다.
◇밀무역이 북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줬나
북 시장 공급은 공식 무역과 북 자체 생산, 밀무역 세 가지가 결정한다. 최근 북·중 공식 무역이 반 토막이 났고 북 자체 생산량은 큰 변화가 없는데 가격이 안정됐다면 밀무역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안보리 제재로 북 경제가 위축되면서 수요가 줄어 가격이 오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북한 밀무역에 관한 통계가 없어 정확한 추론은 어렵다. 북·중 정보 당국자는 "밀무역 규모를 공식 무역의 절반(연 30억달러) 정도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밀무역으로 북 경제가 성장할 수는 없다. 최근 북 선전 기관은 '자력갱생'과 '붉은 기 사상'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北·中 국경 1400㎞… 두만강선 아예 밀수할 자동차 몰고 횡단
육상 밀무역은 혜산 등 양강도, 해상은 평북 철산 앞바다 중심
북·중 간 육상 밀무역은 혜산 등 양강도 일대, 해상은 평북 철산군 앞바다(단둥 남쪽)가 중심이다. 양강도와 함북 일대는 일반 주민의 소규모 밀무역이 빈번하고 중국산 생필품이 북한 시장으로 유입되는 주요 통로다. 선박을 이용한 해상 밀무역은 당·군 등 국가 기관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배떼기'로 이뤄지기 때문에 규모도 크다. 식량·수산물·광물 등 부피와 무게가 나가는 품목이 주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해 쪽은 중국 항구가 없어 해상 밀무역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육로를 통한 수산물 밀무역이 늘면서 일본 근해까지 불법 조업을 나가는 북한 배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최근 전했다.
지난 6월 김정은 3차 방중 때 시진핑 주석이 "북한 인민에 대한 우호는 불변"이라고 했다. 일반 주민의 생존은 보장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지지부진한 이유를 중국이 '뒷문'을 열어준 탓으로 돌리면서 밀무역 단속이 강화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국 쪽 밀수꾼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있다. 그러나 대북 소식통은 "국경 밀무역을 완전히 막으려면 병력 100만명을 투입해도 모자랄 것"이라며 "지난 수백년 동안 밀무역이 차단된 적이 있느냐"고 했다.
北·中 공식무역 중심은 철도교와 인도교 15곳
3곳은 공식 수상운송 가능, 무역액 작년보다 56% 급감
북·중 공식 무역은 철도교와 인도교로 연결된 지점에 설치된 세관을 통해 이뤄진다. 1400㎞에 달하는 국경에는 3곳의 철도교, 12곳의 인도교가 있다. 수상 운송이 공식적으로 가능한 지점도 3곳이다. 랴오닝성 단둥이 북·중 공식 무역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유는 철도교·인도교·부두를 모두 갖춘 유일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단둥~신의주를 잇는 신(新)압록강 대교가 조만간 차
량 운행을 시작할 것이란 소문도 있다. 지린성 훈춘의 취안허 세관은 북한 나선 특구로 가는 길목이다. 북·중·러 3국 국경이 맞닿는 지점이다. 무산~난핑(중국)을 연결한 다리는 북한산 철광석이 넘어가는 통로로 사용된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 1~7월 북·중 공식 무역액은 12억9915만달러(약 1조4583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6.2%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