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日인터뷰서 "북미 2차회담 성사 불확실..北제재 완화 안돼"

2018. 11. 29. 13:45C.E.O 경영 자료



반기문, 日인터뷰서 "북미 2차회담 성사 불확실..北제재 완화 안돼"

정다슬 입력 2018.11.29. 10:31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없어..北에 잘못된 시그널 보낼 수도"
"일본답지 않은 과민반응..양국수장 비공식 대화채널 구축해야"
"시리아 사태 책임지고 아사드 대통령 퇴임해야"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23일 오전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과학기술 ODA 국제 콘퍼런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방일을 앞둔 반기문 전 유엔(국제연합·UN) 사무총장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했으나 구체적인 조치가 이뤄진 것이 없다며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제재 완화는 “잘못된 시그널”을 북한에 줄 수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 전 총장은 내달 2일부터 5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장관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장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 등 정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 의견을 나눈다.

반 전 총장은 23일 일본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기초적인 조치인 핵무기나 핵시설 리스트도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이대로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20~60개 정도 추정되는 핵무기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등을 유지하면서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는 선에서 미국과 거래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북한은 6회 이상 핵실험을 마쳤고 더 이상 핵실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어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며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섭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도중에 고삐를 느슨하게 쥐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나도 동포에 대한 제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적인 룰을 지속적으로 위반하면서 10회 이상의 제재가 가해진 것인 만큼 이제 와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은 향후 교섭에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사무총장 역임 시절 방북이 번번이 무산됐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2010년 방북을 추진하던 당시에는 날짜까지 정해졌고 수행원의 목록까지 통지했지만 천안함 사태가 일어나며 남북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되면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중지했다. 2015년에는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로 하고 언론에까지 공표했으나 중지됐다. 2016년에는 북한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박근혜정부에게 이해를 구한 후 추진했지만 역시 방북 일주일을 앞두고 무산됐다.

반 전 총장은 “한국 언론이 방북 직전 인권문제나 비핵화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나는 남북관계 개선을 주 목적으로 두고 방북을 추진했는데 (이런 문제가 불거지니) 북한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최근 일제시대 강제노동자 배상판결로 급격하게 냉각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일본이 성급하게 과민반응을 보였다”며 “일본 답지 않은 태도”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인은 피해자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에 과거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며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장은 “한국정부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한국의 행동에 대해 ‘폭거’라고 언급하는 것은 국가관계를 복잡하게 하고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이어 한일 양국 수장의 비공식적인 대화 창구를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시리아를 둘러싸고 국제적인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퇴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 전 총장은 “35만명의 시리아 국민이 사망했고 인구 절반이 피난민이 된 책임을 (아사드 정권이) 져야 한다”며 “아사드 대통령과 몇 번이고 대화했지만 거짓말만 늘어놓았다”고 비난했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 미국·러시아 등 주요국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느냐는 질문에는 ‘상선여수’(上善如水)라는 말을 소개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로 고(故) 김종필 전 총리의 좌우명으로도 유명하다. 반 전 총리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도 이 말이 담긴 책을 선물로 보냈다”며 “서양의 주요국 수장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압력을 가해오는 상황에서 동양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중동의 리더십(靜かなリ-ダ-シップ)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지도자도 만나지도 않고 비난하는 것은 자제했다”고 강조했다.

반 전 총리는 독재자들을 실제 만나서 설득에 나섰다며 대표적인 성과로 미얀마 군정의 탄 슈웨 전 총리, 이란의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등을 들었다. 그는 “오바마 정권은 (내가 만난 이후에) 대화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정다슬 (yamye@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