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한·미 군(軍) 당국이 3일 발표한 주요 연합훈련 폐지 방침에는 훈련 조정이나 비용 절감 차원을 뛰어넘는 중차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직후에 발표된 시의성 자체도 심각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된 사안으로서 안보 동맹의 근간을 흔들 요소들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우선, 하노이 회담 결렬로 북핵·미사일 억지력 강화 필요성이 더 커졌다. 정상적 동맹이라면 연합훈련을 확대하고, 한국을 핵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방안 마련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심지어 북핵 억지 및 반격 체제 등 핵 대비 전략도 보완해야 한다. 전시작전권 문제와 미국 재정 사정을 고려해 연합훈련 조정이 장기 과제로 논의됐다고 하더라도 지금 발표·시행해선 안 된다.
더 기막힌 일은, 북핵 협상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발표한 것이다. 정경두 국방장관과 패트릭 새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이 2일 밤 약 45분 통화한 뒤 결정했다는데,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응 조치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면서 하노이 회담을 ‘나쁜 협상’보다 ‘결렬’로 마무리한 사실과 앞뒤도 맞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에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요한 연합훈련 중단을 합의·발표한 것은 한국 방어 의지의 약화를 의미한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군사적 차원에서 키리졸브·독수리 연습의 핵심은 대규모 미군 증원이다. 이 훈련의 폐지는 유사시 미 증원군 및 전략자산 투입 계획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미 주한미군의 지상군 전투부대는 순환배치로 전환된 지 오래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에 이어 3일에도 “비용을 아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돈’이라는 천박한 인식을 가졌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든 설득해 동맹의 균열을 막아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움직인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주한미군은 평화유지군이나 일반전초(GOP) 수준으로 전락한다. 미국의 아시아 주(主)방어선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물러서는 ‘트럼프 독트린’의 징후가 짙어간다. 북핵 못지않은, 근원적 안보 위기가 닥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