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조국 장관의 총리 행세

2019. 9. 19. 23:28이슈 뉴스스크랩

[김광일의 입] 조국 장관의 총리 행세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19.09.19. 18:30 


조국 법무장관이 총리 행세를 하고 있다. 어제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가 당정 협의를 했다.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골자는 상가 임차인에게만 주어지던 ‘계약 갱신 청구권’을 앞으로는 주택 전월세 세입자에게도 주자는 것이다. 또 재산에 따라 벌금 액수를 정하는 ‘재산비례 벌금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발표는 조국 법무장관이 맡았고, 오른쪽에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왼쪽에 박주민 최고위원이 앉았다. 당 지도부를 좌우에 거느린 채 조국 장관이 선거 공약을 발표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먼저 ‘전월세 계약 갱신 청구권’부터 보자. 입법화가 된다면, 주택 세입자들이 2년 계약이 끝난 뒤에도 다시 계약을 요구할 수 있고, 집 주인은 불가피한 이유가 없다면 응해야 한다. 그런데 주택 정책은 국토교통부가 주무부처다. 어제 법무장관은 국토부와 구체적인 논의 없이 당정 협의에서 발표를 했다. 전 국민의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여러 부처와 관련된 정책은 국민총리가 해당 장관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당 지도부와 함께 발표하는 게 자연스럽다. 어제는 조국 장관이 당 지도부를 배석시키고 총리 행세를 하는 모양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덜컥’ 발표한 정책, 더구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부르지도 않고 발표한 정책, ‘민간 택지 분양 상한제’를 발표한지 한 달 만에 내놓은 민감한 정책, 더구나 지난달 국토부가 예고한 ‘전월세 신고제’로 뒤숭숭한 상황을 뒤덮는 정책, 그것이 어제 조국 법무장관이 발표한 전월세 갱신 청구권이다.

갱신 청구권을 몇 차례나 인정할 것인지, 계약 갱신 때 임대료 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은 모든 게 뒤죽박죽 상태다. 게다가 집주인이 제도 시행 전에 임대료를 미리 올리면서 단기적으로 가격이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 1990년 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제도가 도입됐을 때 그런 일이 벌어졌다. 1989년 서울 전세금 상승률이 23.68%, 1990년엔 16.17%를 기록했다. 게다가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 혹은 반전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매물이 실종되는 ‘전세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서민과 약자를 보호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목을 조르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2011년에는 이명박 정부가, 2013년 박근혜 정부 때는 야당이 이 정책을 검토했다가 부작용을 우려해 덮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조국 장관의 도덕성 논란으로 청년과 서민층이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그것을 반전시키려는 정치적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다음은 ‘재산비례 벌금제’를 보자. 이 제도는 벌금 일수를 먼저 정하고, 여기에 피고인의 재산 정도를 고려해 하루치 벌금액을 정한 뒤, 벌금 일수와 하루치 벌금액을 곱해서 전체 벌금액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속도위반으로 ‘과속 딱지’를 끊어 벌금을 내더라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하루 100만원씩 10일치 벌금 1000만원을 내게 하고, 골목길 트럭 행상을 하는 김씨는 하루 5000원씩 10일치 벌금 5만원만 내게 하자는 취지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같은 유럽 나라들이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그 제도를 도입하려면 유럽 나라들만큼 개인의 소득과 재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데이터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실질 소득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소득 파악률이 형편없는 이 제도가 유리지갑인 봉급생활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적용돼 더 많은 사회적 분쟁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조국 장관은 후보자 시절 이런 말을 했다. "현 제도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부유층에게는 형벌 효과가 미약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인 조국 장관은 한 마디 말 속에 ‘서민’과 ‘부유층’ 두 단어를 함께 섞어 놓은 다음 부유층을 후려치는 정책을 내놓으면서 어떻게든 여론을 뒤집으려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5월4일 "고소득자에게도 상대적으로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조국 장관이 문 대통령의 후계자인 척 대선 공약을 이어받는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아찔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검찰 수사팀이 사방에서 옥죄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조국 장관이 언제까지 자리를 지킬지 모르겠으나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